김영수 목사(한마음사랑의교회 원로)
본문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주님의 좌우편에 함께 못 박힌 두 강도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두 강도 중 한 강도는 죽음 직전에 주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낙원을 허락받았습니다. 이제 십자가상에서 구원받은 강도는 어떤 믿음을 소유하였길래 극적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수 있었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믿음을 가졌습니다(눅23:39-40).
십자가에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눅23:40). 구원받은 강도는 예수님을 비방하는 상대편 강도에게 “동일한 정죄를 받고도 하나님을 왜 두려워 아니하느냐”고 꾸짖어 말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하나님의 정죄와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기에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이 강도가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된 동기는 그가 자기 죄로 인해 십자가에 달리게 되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그토록 하나님을 두려워했다면 그전에 그 흉악한 강도짓을 일삼았을 리 만무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쨌든 뒤늦게라도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깨닫고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게 된 이 믿음은 매우 소중한 믿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2. 죄를 꾸짖는 믿음을 가졌습니다(눅23:40).
모든 사람이 다 예수님을 비난하고 있을 때 유일하게 한 사람, 이 회개한 강도만이 예수님을 옹호하고 비난하는 동료를 꾸짖었습니다. 무엇이 죄입니까? 요한복음 16:8-9 말씀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 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그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가는 마당에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을 믿고 옹호한다는 것이 쉬워 보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토크 쇼 중에 필 도나휴 쇼가 있습니다. 이 쇼에 출연한 사람 중에 프락터 갬블(P&G)이라는 회사 사장이 출연했습니다. 이 사장은 사탄교회(Satan Church) 신봉자였습니다. 그가 “경영하는 회사 이익금 중 많은 액수가 사탄교회를 지원하기 위해 쓰여진다”고 말했습니다. 사회자가 물어보았습니다. “당신 회사의 이익금이 사탄 교회를 위해 쓰여진다고 공개적으로 발언을 하게 되면 불이익이 오지 않겠느냐?” 프락터 갬블사 사장은 이렇게 냉소적으로 말했습니다. “세상에는 우리 회사에 타격을 줄 만한 신실한 신자들이 많지 않습니다!” 그가 한 말 중엔 사실도 있습니다. “세상에는 사탄 숭배자들에게 타격을 줄 만한 신실한 신자들이 많지 않습니다.” 어떠십니까? 여러분은 세상에 영향을 끼치는 그리스도인입니까? 아니면 영향을 받고 있습니까? 사람들의 명백한 죄에 침묵하는 것은 동조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비방하는 무리들의 명백한 잘못을 알고도 그냥 있는 것은 비겁한 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행악 자는 용기를 보여주었습니다.
3.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믿음을 가졌습니다(눅23:41).
누가복음 23:41에서 회개한 강도는 말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하나님은 자신의 죄를 정직히 인정하는 자들을 기뻐하십니다. 행악 자는 자신의 죄와 그 죄로 말미암아 받을 벌을 인정했습니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벌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합니다.
4. 예수님께서 죄 없으신 분임을 확신하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예수는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니라 우리들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벧전 2:24).
5. 죽음 이후에는 기회가 없음을 인정하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눅23:42). 그는 주님의 나라, 영원한 나라에 대해 스스로의 힘으로는 갈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십자가에서 죽는 것도 괴로운데 그의 영원을 지옥 형벌 가운데서 산다는 것은 말할 수 없는 고통입니다. 지금 죽는다면 여러분의 영원을 어디서 보내시겠습니까? 천국입니까? 아니면 지옥입니까?
6. 예수 그리스도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는 믿음을 가졌습니다(눅23:42).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이 행악 자는 회개하고, 다른 동료를 책망하고, 예수께서 아무런 잘못이 없는 분임을 증거한 것으로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영혼을 그리스도에게 위탁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를 그리스도에게 부탁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았던 강도는 이제 자기의 불의한 모습으로는 도저히 구원을 받을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예수님을 의지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아무 죄도 없으신 거룩한 분으로 믿었으며, 또한 세상을 구원할 구주로 믿었습니다.
7. 큰 방해를 받았으나 잘 믿었습니다.
그의 믿음의 결단은 정말 훌륭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가 십자가에 달려 지켜 본 모든 상황은 믿음을 갖기에는 방해가 되는 일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 자신이 극도의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 자신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마다 비난하는 사람, 조롱하는 사람 밖에 없었습니다. 그의 제자들은 다 달아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믿었습니다. 그는 홀로 믿음의 결단을 내렸습니다.
8. 하나님 나라가 임할 것을 믿었습니다.
구원받은 강도는 예수님에게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라고 간구함으로써 죽음 너머에 있는 하나님 나라를 내다볼 줄 아는 믿음을 지녔습니다.
결론
성도 여러분! 구원받은 강도의 믿음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그런 믿음을 잃어버리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본문의 강도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졌고,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예수님이 죄 없으신 분임을 확신하고, 오직 예수님만 의지함으로, 그리고 주의 나라가 임할 것을 믿는 믿음으로 주님께 기억하는 자가 되었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그런 믿음을 소유하여 하나님 앞에 신실한 자로 기억되고 구원받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