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명 목사(대한교회 담임)
우리 삶에 돌아오지 않는 것 네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첫 번째가 화살입니다. 내 손을 떠난 화살은 과녁을 맞추던 못 맞추던 돌아오지 않습니다. 두 번째는 내 입에서 뱉은 말입니다. 말은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세 번째는 지나간 과거의 시간입니다. 좋은 추억이던 나쁜 추억이던 지나간 과거입니다. 그리고 네 번째는 기회입니다. 어떤 사람은 기회는 앞 머리카락은 있지만 뒷 머리카락은 없다고 했습니다. 지나가면 못 잡으니 올 때 잡으라는 뜻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본 사무엘하 2장부터 4장까지에는 기회가 왔는데 그 기회를 악의 기회로 이용해 생명을 잃게 되는 결과를 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믿음의 사람은 기회를 하나님과이웃을 위해 삼도록 해야합니다.
1. 기회는 성공과 실패 두 가지를 줍니다.
삼하 2:8~9 “사울의 군장 넬의 아들 아브넬이 이미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데리고 마하나임으로 건너가서 길르앗과 아술과 이스르엘과 에브라임과 베냐민과 온 이스라엘의 왕을 삼았더라”
사울 왕이 죽고 나서 다윗은 유다의 왕이 되었는데 아직 온 이스라엘의 12지파의 왕이 되지 않았을 때, 사울 왕의 숙부의 아들인 아브넬이 다윗에게 항복하지 않고 사울 왕의 네 번째 아들인 이스보셋을 이스라엘 왕으로 삼고 자기가 권력을 누렸습니다. 자기가 왕이 되고 싶었지만 포기하고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허수아비 왕으로 삼은 것입니다. 결국 이들은 나중에 둘 다 죽게 됩니다. 삼하 3장 27절에 보면 아브넬은 다윗의 군대장관 요압의 칼에 맞고 죽습니다. 그리고 이스보셋 왕은 삼하 4장 7절에 레갑이라는 사람이 침상에 누워있는 그를 죽여 머리를 잘라 다윗 왕에게 가져왔습니다. 레갑은 이스보셋 이스라엘 왕의 머리를 가져 다윗 왕에게 바치면 큰 상급이 있을 것을 바라고 좋은 기회로 알고 다윗 왕에게 가져왔는데, 다윗이 한 마디로, “이 악한 레갑아, 네가 어찌 너의 왕을 죽여 내게로 가져왔느냐”하며 그를 죽이라고 하고 이스보셋 이스라엘 왕의 머리를 아브넬의 무덤에 매장시켜주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기회 속에 삽니다. 그러나 이 기회를 내가 좋은 기회로 삼을 수도 있고 나쁜 기회로 삼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만약 이스보셋 왕이나 아브넬 군대 장관이 다윗에게 항복하였다면 그들의 남은 여생은 대접받고 평안했을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정말 좋은 기회를 만났는데 아주 나쁜 기회로 만든 사람이 있었습니다. 누구입니까? 가롯 유다입니다. 예수님이 직접 택하신 제자 아닙니까? 그런데 그만 사단의 유혹을 받아 죽음의 기회로 만들었습니다. 만일 그가 자기에게 온 기회를 잘 감당했다면 천국에서 예수님 옆에 12지파 대열에 있을 것 아닙니까? 그런데 정말 나쁜 기회를 만나 버림받았던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이 마지막 십자가를 지시기 전 자기의 아끼던 향유 옥합을 깨어 예수님께 부어드렸을 때, 예수님께서 감동하시고 “앞으로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 이 여인이 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여 주리라” 하셨습니다. 기회가 오는가 안 오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기회를 좋은 기회로 만들어야 합니다.
2. 믿음의 사람은 항상 어떤 문제든 좋은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여러분들! 이 세상에 문제 없는 사람이 있습니까? 문제가 없는 가정이 있습니까? 문제가 없는 교회가 있습니까? 문제가 없는 곳은 공동묘지입니다. 죽으면 문제가 없습니다. 살아있는 곳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 대한교회는 문제가 없습니까? 문제가 있지요. 목사인 저부터 문제가 많지요.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평안한 교회로 지내고 있습니까? 여러분들이 문제를 좋은 기회로 만드시기 때문입니다. 서로 덮어주고 이해해주고 참아주기 때문입니다. 정말 내 몸같이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따르지는 못해도 아직도 미움이 있어도 용서가 되지 않아도 교회의 평안을 위해서 참고 또 참는 것 아닙니까. 저는 요셉을 참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창세기 45장에서 형들이 살아있는 요셉을 보자 이제 죽었구나 하며 두려워할 때, 이렇게 형들을 위로합니다.
창 45:5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창 45: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
이 장면이 클라이막스입니다. 요셉의 위대함입니다. 지금 요셉의 이 말이 평생 가슴에 후회와 아픔으로 살았던 형들에게 새 생명을 주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용서하는 사람은 정말 위대한 사람입니다. 갈 6장 10절 말씀대로 우리에게 모든 문제가 생길 때, 언제나 착한 마음으로 해결하십시오. 특히 믿음의 가정들에게 하라고 하십니다. 믿음의 가정은 교회를 말씀하십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문제를 이렇게 풀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롬 8장 28절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살고 나를 택해주신 하나님의 자녀가 된 나 아닙니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어떤 기회를 만나던지 좋은 기회, 나쁜 기회, 내가 지은 모든 죄로 생긴 모든 결과들까지 다 모두 합하여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아멘. 언제 누구와도 어떤 문제를 만나도 좋은 기회로 만드시기를 축복합니다.
3.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를 잡아야 합니다.
삼하 5:4 “다윗이 삼십 세에 위에 나아가서 사십 년을 다스렸으되”
삼하 5:5 “헤브론에서 칠 년 육 개월 동안 유다를 다스렸고 예루살렘에서 삼십삼 년 동안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렸더라”
이 말씀에 담긴 내용이 무엇입니까? 다윗 왕이 평생 하나님을 만날 기회를 준비하며 살았다는 뜻입니다. 그럼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기회는 무엇입니까?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재림의 기회입니다. 이 재림의 기회는 모든 사람에게 다 주신 기회입니다. 또한 재림 신앙은 말세 신앙입니다. 우리는 말세, 그 말세가 언제입니까? 아마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안 올 거야. 오지도 않는 주님을 기다리는 거 아닌가” 합니다. 그런데 말세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세상의 말세이고 또 하나는 나의 말세입니다. 세상의 말세는 주님이 천사들을 데리고 영광 가운데 오시는 것입니다. 나의 말세는 나의 죽음입니다. 죽음은 그것으로 끝입니까? 아니지요. 주님을 만나는 기회가 있느냐 주님을 못 만나는 것이냐 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예수님을 믿게 해주셔서 구원시켜 주셨습니다. 이제 죽으면 주님 만나십니다. 그러니 주님 만날 때 주님이 주시는 상을 받으셔야 됩니다. 무슨 상입니까? 영혼 구원시킨 상입니다. 이 상을 받는 일을 금년에 하시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오는 기회를 성령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이웃에게는 복을 주는 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