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숙자 선교사(베데스다교회)
그런데 피에 흠벅 젖은 손과 바닥에 흥건히 고인 피를 보는 순간 남편은 “큰일 났구나” 생각이 들면서 가슴이 철렁 내려 앉었단다. 뒤로 넘어져 뇌진탕이 왔으면 영영 온전치 못할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환자에 대해서는 좀 아는 터라 얼른 머리 뒤에 찢어져서 출혈이 되고 있는 부위를 살펴보았단다. 감사하게도 뒷머리 정 중앙이 아니고 중간에서 오른 쪽으로 3센치 가량 떨어진 부위가 2센치 정도 찢어져서 출혈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사실을 아는 순간 “아아 살았구나” “하나님이 위험부담을 피하게 하셨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고 했다. 사람이 넘어질 때 머리 뒤 정면으로 부딪히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는 것을 남편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유는 중요한 뇌가 앞면 이마 뒤에 있어 뒤로 넘어질 때 반대인 앞 뇌에 충격이 가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앰뷸런스가 도착하고 나의 몸이 들것에 들려 나가고 나는 앰블런스에 태우기 위해 간이침대에 옮겨지는데 통증은 심해지고 몸이 흔들릴 때마다 비명소리가 튀어 나왔다. 남편이 간호원과 함께 올라타고 병원으로 달려갔는데 차가 움직일 때마다 비명을 지르며 괴로워 하는 나를 어떻게 해야할찌 몰라했다.나의 몸은 침대에 꽁꽁 묶였지만 차가 요동할 때마다 어디하나 아푸지 않은 곳이 없어서 계속 소릴를 질러댔다. 머리가 어지러워 천길 만길 떨어지는 것 같았다. 몸이 위로 올라 붙었다 떨어지는 느낌이고 천정이 빙글빙글 도는데 어지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위급 환자가 앰브런스에 실려 요란한 싸이렌 소리를 내며 달리는 것은 테레비나 길거리에서 가끔 보았을 뿐인데 지금 내가 앰브런스 안에 누운 주인공이 될 줄이야..... 지금 생각하면 “세상에 남의 일이란 없다”라는 생각이다.보통 남의 일이라 그냥 지나쳐버렸지만 이제부터는 상대를 나 자신으로 보는 연습에 더욱 익숙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뇌 사진을 찍기 위해 나의 몸은 간호원들에게 맡겨진채로 이리저리 옮겨질 때마다 온 천지가 다 돌아가듯 어지러웠고 뇌 사진을 찍으려고 촬영실로 들어갔을 때는 두 다리가 허리까지 쥐가 났다. 아무리 쥐가 났다고 외치고 고통을 호소해도 그냥 가만히 있으라고만 하면서 속수무책이었다.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께 전화를 드리는 길 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참으면서 고통 속에 사진을 찍었는데 내가 움직여서 결국 사진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단다. 다시 사진을 찍을 때는 실패하지 않으려고 입술을 깨물고 쥐가난 두 다리를 죽었다 생각하고 움직이지 않으려 최고의 노력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사진이 잘 나왔다며 쥐가 난 발에 끈을 풀어 주었다. 촬영실 밖으로 나와서 쥐가 나서 견딜 수 없다고 호소하자 남편과 간호원이 주물러 주었지만 엉뚱한 곳만 만지고 있는데도 제대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드디어 입원실로 옮겨졌다. 침대로 옮겨질 때에 천길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것같이 어지러웠던 일! 다시 기억하기도 무서웠다. 다행히 뇌진탕은 아니라는 사진촬영 결과가 나왔고 하룻 밤을 지난 후에 의사는 며칠을 더 두고보자고 하였지만 의사에게 간절하게 부탁을 했더니 퇴원을 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나의 집까지 가려면 앰브란스에 실려 3시간을 흔들리며 주행을 해야하는데 이보다는 차라리 자가용이 낫다하여 온몸을 자동차 의자에 묶고 목띠를 해서 머리를 고정 시키고 몇 시간에 걸쳐 집에 도착했다. 그 후로부터 한 달이 넘게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