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남철 목사(그레이스성결교회 담임)
글쎄요. 꿈이 아닌가 싶어요. 고향 가서 살아보았거든요. 그런데 세월이 지날수록 점점 꿈에 그리던 고향이 아니었어요. 아마 그렇게 경험하신 분들 많을 거에요.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 꽃 살구 꽃 아기 진달래”. 얼마나 낭만적이고 가슴 설레요. 그러나 산천도 많이 변해 있었고요, 저가 살았던 동네도 너무 달라져 있었어요. 저가 태어난 집도 초가집이 아니라 커다란 양옥집이 들어섰고요. 집을 찾지 못할 뻔 했어요. 나는 너무 흥분되어서 “내가 태어난 집!” 그랬는데 그 집은 별로 반가워하지 않는 것 같았어요. 너무나 달라진 모습에 필링이 묘해요. 친구들도 옛날 친구들이 아니에요. 옛날 소꿉친구들, 그 시절만 생각했거든요. 같은 한국 말을 쓰는데도 통하지 않아요. 문화 차이가 많은가 봐요. 그리고 주민 등록 번호가 없기 때문에 너무 불편했어요. 거소증이란 것이 있었지만 전화, 전기, 수도, TV 신청도 절차가 복잡해요. 심지어 인터넷 쇼핑도 어려웠어요. 고향이 외국처럼 느껴졌어요. “아, 이거 아니구나”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멀어졌어요. 더구나 자식들 식구, 손자가 여기 있어서 더 안 되는 거에요. 짐 싸 가지고 고향에 갔는데 3년 만에 다시 짐 몽땅 실고 미국으로 돌아 왔거든요. 토마스 울프가 쓴 “돌아 갈 수 없는 고향“ 생각이 났어요. 정말 돌아 갈 수 없는 고향이었어요. 갈 때는 환상을 갖고 갔는데 올 때는 착잡한 기분이었어요. 몇 주 전에 아는 사람이 저에게 “한국 가서 살까 해요“ 그랬어요. 저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아마 그 분도 저처럼 짐 싸가지고 갔다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생각이 드네요.
세광 명가 350 곡 집 상하 권에 보면 고향에 대한 노래가 많이 있었어요. “내 고향으로 날 보내 주”, “딕실랜드”, ”추억“, ”고향의 옛집“, ”오 수재너“, “스와니 강”, “망향”, ”나의 고향“, ”고향 그리워“. 그 외 많은 곡들이 고향 가고 싶은데 못가고 그리워 한다는 내용들이었어요. 고향은 노년에 돌아가 살고 싶은 곳이지만 실제로는 다시 돌아오는 그런 곳이었어요. 그런데요. 요새 자식들한테 “네 고향이 어디지?” 한번 물어보세요. 금방 대답하는 자식들 드물걸요. “Well, let me see”, 서울? 했다가 “어디지?”하고 오히려 물어 볼 거에요. 그 동안 이사를 너무 많이 다녔잖아요. 태어나자마자 부모 따라 이사 다닌 세대거든요. 고향이 어딘지 잘 몰라요. 아니 고향이란 말 자체를 잘 모르는 것 같아요. 고향 없는 세대들이라고 할까요. 고향에 대한 이미지가 1세와 달라요. 우리 자식들도 다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한 살, 두 살 되어서 부모 따라 양평으로 이사 했거든요. 아빠가 군목 제대해서 서울로 왔다가 다시 미국으로 왔거든요. 고향을 어디라고 해야 좋을까요. 너 고향 어디지? 물으면 “제주도?” 했다가 “글쎄요” 하더라고요. 부모 고향이 저들의 고향일까요?
늘그막에 고향 가서 사신다고요? 꿈 깨세요. 고향은 환상 속에나 있을까. 실제로는 마음에 그리는 그런 고향이 아니에요. 모든 것이 너무나 달라졌으니까요. 미국도, 한국도 1년에 20%의 인구 이동이 있다고 하잖아요. 옛날처럼 태어나서 거기서 살다 죽는 그런 시대가 아니잖아요. 고향이란 컨셉도 세대 따라 차차 달라지는 것 같아요. 고향 가서 노년을 산다? “고향이 그리워도 못가는 신세” 아닐까요. 가능하다면 늘그막에 고향 자주 다녀오는 것이 최선인 것 같아요. 가끔 가니까 좋은 곳이지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요. 그리고 지금 내가 사는 이 땅을 긍정적으로 내 고향으로 만드는 거에요. 내가 사는 곳이 한국이든 미주이든, 하나님이 허락하신 땅 곧 이 땅이 나의 고향이 아닐까요?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평화롭고, 아늑하고, 따뜻하고, 넉넉하고, 행복한 고향에서 살기를 원하고 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