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시냇가)복이 있나니(마5:1-12)
2014/02/28 02:52 입력  |  조회수 : 3,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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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목사(새소망교회)

“복”이란 말은 누구나 좋아하는 말입니다. 아마 “복 받으라”는 말에 화 낼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성경에도 “복”이라는 단어가 참 많이 나옵니다. 마태복음 5-7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첫 번째 설교인 산상설교에도 “복”에 관한 말씀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 산상설교에서 말씀하고 있는 복은 우리가 통념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복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복”은 부유하고, 창대하고, 행복하고, 건강하고, 명예도 있는 것이어야 하는데, 산상설교에는 “가난한 사람” “애통하는 사람”, “주리고 목마른 사람”, “핍박을 당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산상설교를 통해 말씀하시는 진정한 복이란 무엇이겠습니까?
 첫째,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3절)”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영적인 가난함”, “영적으로 결핍된 상태”를 말합니다. 이것이 왜 복일까요? 이런 사람들은 철저한 자신들의 무능을 알기 때문에 이 세상을 스스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 깨달음은 영이신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게 만들고 그 인식은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의지와 믿음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따라서 심령의 가난, 영적인 갈급함은 결국 하나님을 찾게 만들고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게 만들기 때문에 복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둘째,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4절)” 여기서 말하는 애통은 심령의 가난함을 깨닫고 난 후 자신을 보았을 때 아무것도 없는 본인을 발견하고 갖는 애통함을 말합니다. 로마서 7장 24절에서 사도 바울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라”라고 고백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입니다. 결국 애통은 자기 자신에 대한 회개입니다. 단지 잘못에 대한 회개가 아니라 영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멀어졌던 모습에 대한 애통입니다. 이러한 애통의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은 위로를 받는 복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 위로는 5절로  넘어 갑니다.
 셋째,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5절)” 애통함의 다음 단계는 온유함입니다. 이 온유함은 마태복음 11장 29절에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매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마음을 말합니다. 이 같은 온유함을 가진 사람이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땅은 우리가 죽어서 가는 천국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안에서 지금, 여기,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에서도 하나님 나라, 천국을 누리며 살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의”로 다스려지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6절로 이어집니다.
 넷째,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6절)” “의에 주리고 목마르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맞추기 위하여 자신의 삶의 방향을 하나님께로 끊임없이 향하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때로 우리들은 “배부르게 되면 의롭게 살겠습니다.”, “ 물질 주시면 남에게 베풀면서 살겠습니다.”, “건강 주시면 봉사하고, 능력 주시면 사명감당하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반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복은, “복을 받으면 의롭게 살겠습니다.”가 아닙니다. 먼저, 의에 대하여 주리고 목말라 할 때 하나님으로부터 채워지는 만족함의 복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섯째,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이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7절)”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 7절에 와서는 긍휼히 여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의에 대한 갈증이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3절과 비교하면 놀라운 변화입니다. “영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긍휼히 여기는 사람”으로 바뀌었다는 겁니다. 영적인 면에서 볼 때 하나님과의 관계 결핍으로 인해 자신의 모습을 살피기에도 빠듯했던 가난한 심령의 소유자가 이제는 다른 사람을 살필 수 있는 풍성한 심령이 되었습니다. 비록 누군가가 자신을 괴롭게 하더라도 그 사람을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고 그 영혼에 대한 자비심을 갖게 되는 단계를 말합니다. 이런 긍휼의 마음이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긍휼함과 자비하심이 임하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섯째,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8절)” 많은 사람들이 의에 목말라하며 하나님의 의를 이루고자 애쓰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의를 행하는 것이 다른 이에게 보여주는 “의”가 되고 맙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들이 바로 서기관, 바리새인, 제사장, 유대의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그 율법을 철저히 지켰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마음에 하나님의 의에 대한 목마름은 없어지고 그저 눈에 보이는 행위만 남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모습은 없는지 항상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깨끗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복되며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일곱째,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9절)” 화평케 하는 자란 평화를 만들어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어, 구원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신분의 변화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그 신분에 맞게 화평케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화평을 이루는 삶이 결코 쉽지는 않습니다.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바로 영혼에 대한 긍휼함과 자신을 살필 수 있는 마음의 청결함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들의 것임이라(10절)” 사람들은 왜 서로 핍박 할까요? 그것은 스스로 “정의”라 일컫기는 하지만  저마다 그 ‘의의 잣대’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개인과 개인, 나라와 나라간의 갈등과 핍박 역시 모두 자신의 의가 절대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11-12절은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선지자들도 이 같이 핍박하였느니라.”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여기에 나오는 핍박은 자신이 생각하는 의의 기준에서 당하는 핍박이 아닌 예수님 때문에 당하는 핍박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먼저 분별하는 눈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상”을 누가 얻습니까? 우리는 본문 속의 인칭의 변화를 살펴봐야 합니다. 10절까지는 복이 “저희”의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11-12절의 복은 “너희”의 것입니다. “저희”는 1절에서 말하는 무리들입니다. 말씀을 듣지만 아직 따르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1절 하반절에 나오는 그 무리에서 예수님의 말씀 앞으로 나와 예수님 때문에 핍박을 받아도 끝까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통해 나 자신은 “저희들”에 속하는지 “너희들”속하는지 점검해 보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때로 우리들은 핍박이 두렵고, 온유하지 못하며, 긍휼하지 못합니다. 어떤 순간 아니, 매 순간 뒤로 물러 설 때 있습니다. 그러나, 내 심령의 위치를 깨닫고 그 다음으로 넘어가기 위해, 신앙의 정진을 위해 애써야 합니다. 애통함이 없다면 애통하기 위해, 애통함에 눈물 흘리고 있다면 예수님의 온유함을 닮기 위해, 온유함을 얻었다면 그 온유함으로 하나님의 의를 찾아야 합니다. 그 하나님의 의를 행하고 있다면 그 행함과 더불어 마음의 청결함에 대한 점검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마음으로 이제 다른 이들과의 평화를 이루어 가야합니다. 그러다가 주님 때문에 핍박을 받는다 할지라도 두려워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진정한 하나님의 복을 기억하며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성경 속에 나오는 “복”은 부담스럽습니다. 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복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친히 말씀해 주신 “복”입니다. 이 복은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복과는 차원이 다른 복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복은 우리 마음 안에서부터 시작되어 삶 전반에 임하는 복중에 복입니다. 이제부터 우리가 구할 복은 잠시 있다 사라질 세상 복이 아니라 예수님이 주시는 영원한 복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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