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중 선교사(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박사)
교회에 왔다갔다하는 여자아이가 있다. 13살. 어느 날 자기 오빠랑 언니라면서 데리고 왔다. 근데 오빠는 약간 닮은 것 같은데 언니는 전혀 아니다. 피부도 얼굴도 말하는 것도 다르다. 이복 형제들이다. 오빠는 엄마 쪽 이복형제, 언니는 아빠 쪽 배다른 자식이다. 상파울로에 엄마 쪽 다른 이복 형제도 있단다. 엄마는 결혼 세번, 아빠도 세번째다. 이 아이는 마지막이라고 기대되는 결혼의 종착점이다. 방학을 맞이하여 그나마 형편이 나은 이 곳에 다 같이 모여 살기로 했단다. 방이 많은 것도 아닌데 어쩔 것인지. 머리가 아파온다. 이 아이의 부모는 아직도 교회의 문을 넘지 못하고 있다. 브라질 성도들을 보면 조심스럽게 하는 질문이 가족관계다. 결혼은 했는지 몇 번째인지 지금 데리고 있는 아이는 누구의 피인지 알다 보면 점점 복잡해진다. 내가 아는 가족의 모습과 너무 다르다. 재혼 가정이 많은데 내 아이, 네 아이, 그리고 우리 아이가 있다. 주말마다 아빠 쪽에 가느라 예배 빠지는 교회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어렵다. 아이의 양육비를 제때 받지 못할까 봐 전 남편과 전전 남편의 직장과 건강까지 걱정하는 홀엄마들을 보면 사랑이 뭔 지 부부가 뭔 지 자식이 뭔 지 세상 참 복잡하다.
브라질 가족구조가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2022년 국가지리통계연구소(IBGE)의 인구조사에 따르면 아이가 없는 가정의 수가 있는 가정을 앞섰다. 2000년 아이가 없는 부부는 12%였는데 24%로 두배가 뛰었다. 가장 역할을 하는 여성의 수도 놀랍다. 2000년에는 25%였는데 현재는 거의 50% 이상이다. 혼자 사는 가구의 비율은 20년 만에 3배가 되어서 1400만명에 이른다. 공식적으로 시에 등록되거나 가톨릭 교회에서 결혼하지 않는 비율도 절반 이상이다. 남편 없이 혼자 아이를 키우는 홀어미 가정수는 전체 가구의 13.4%에 달한다. 전통적인 가족의 개념이 바뀌고 있다. 혼인연령도 늦어지고 결혼과 자녀출산이라는 공식도 흐려지고 있다. 장성한 남자와 여자가 정규 교육을 받고 일을 하면서 만나 교회에서 결혼하고 시에 등록해서 아이를 낳고 양육하는 모습은 20년 뒤에는 매우 귀한 장면이 될 것 같다. 한부모 가정의 아이는 더 많아질 것이고 생물학적으로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동성결혼커플 가정과 혼자 사는 사람들의 수는 대도시를 중심으로 증가할 것이다. 삶의 방식, 사회 분위기가 그렇게 변하고 있다. 모든 것이 혼란스럽게 섞여 있는 브라질에서 가족 구조도 예외는 아니다. 다양한 모습의 가족이 나타나고 있고 핵가족이나 확대된 가족이 공존하고 있는 상태에서 개인의 성장과 발달에 긍정적인 요소들을 찾아낼 필요가 있다.
브라질 가족구조의 급격한 변화를 보면서 어디까지 가족으로 볼 것인가라는 고민이 생긴다. 같이 살면서 함께 경제생활을 하는 정서적이고 감정적 연대인지 아니면 법과 제도 안에 있는 혈연과 혼인으로 맺어진 사회 기본단위인지에 대한 논란은 계속 있어왔다. 요새는 명절마다 겨우 한 번 보는 부모와 친척보다 내리사랑(?)의 반려동물에 더 가족 같은 감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퍽퍽한 브라질 현실에서 피가 섞이지 않거나 법적인 계약이 없어도 함께 살고 있고 공유하고 있는 정서가 많으면 가족으로 불릴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인류가 지키고 지속해 온 가족의 원리와 가치는 쉽게 변하지도 변할 수도 없다. 가족의 기능(Function)과 관계(Relationship)도 중요하지만 그 밑을 받치는 것은 형태(Form)이다. 전혀 다른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이라는 형태에서 한 몸이 되어서 사회적으로 기능하며 관계를 지속하여 또 다른 생명을 낳는 일은 생존의 문제이자 인류의 지속적인 책임이고 창조주과 창조물 사이의 약속이다. 변주가 많아도 원곡을 따라갈 수는 없듯이 길에서 벗어나길 좋아하는 인간이 별의 별 모습을 만들어내도 전통적인 가족의 형태, 기능과 관계는 사회적 상상력에 스며들어 세대와 세대를 통해 연결되고 유지되고 있고 인류의 마지막 보루이자 따라야할 기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