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용주 목사(봉헤치로 제일교회 담임)
자유!
뚜삐남바 족과의 교역 확대를 위하여 오늘날의 히오 지 쟈네이로 시 일부인 니떼로이(Niteroi)에 정박한 이 프랑스 사략선의 선원들은 그리 멀지 않은 인디오 마을에 유럽인 한 명이 수개월간 포로로 잡혀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략선 까뜨린 드 베뜨빌(Catherine de Vetteville) 호의 선장 기욤 드 모네르(Guillaume de Moner)는 일차적으로 무역교섭을 위하여, 그리고 또한 인디오 마을의 유럽인 포로의 소식을 확인하고, 만일 그것이 사실이면 그를 구하기 위하여, 선원 두 명을 한스 슈타덴이 있는 마을로 파견한 것이었습니다.
인디오 마을에서 그를 발견한 프랑스 선원들은 헐벗은 것이나 다름없는 그를 불쌍히 여겨 자신들의 옷가지 몇 개를 주어 그를 입히고, 그가 인디오들의 포로가 된 경위를 물었습니다. 거의 아홉 달 만에 유럽인을 만난 한스 슈타덴은 그들에게 그간의 일들을 간략하게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자기들은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그를 배로 데려오라는 선장의 명령을 받아 마을에 온 사람들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한 한스 슈타덴은 순간적으로 기지를 발휘하여, 추장에게 이 선원들은 자기 친구들인데, 그들이 타고 온 배에 자기 형제들도 함께 와 있어서 자기를 만나고자 하니, 그들과 함께 배로 갈 수 있도록 허락해달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듣고, 추장은 마을의 인디오 몇 명을 붙여줄 테니 함께 갔다 오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배에 오르자, 모든 선원들은 그의 모습을 보고 불쌍히 여겨 친절히 대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출항 준비가 끝나기까지, 그들은 인디오들 몰래, 한스 슈타덴의 생각에 따라 그를 구출하기 위한 작전을 짰습니다. 우선 모네르 선장은 그와 닮은 선원 열 명을 선발하고 그들이 그의 형제들이라고 연기하도록 하여, 그를 자기들과 함께 유럽으로 데려가야 한다는 것을 인디오들에게 강력하게 주장하도록 하였습니다. 동시에 선장은, 자기는 혼자이고 한스 슈타덴의 형제는 여럿이니,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연기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면 한스 슈타덴은 인디오들에게, 자기는 이곳에 머물고 싶지만, 형제들이 자기 말을 듣지 않으니 할 수 없이 그들과 함께 떠나야 한다고 말하기로 하였습니다. 마침내 출항 준비가 완료되자, 선장과 선원들, 그리고 한스 슈타덴은 인디오들 앞에서 미리 정한대로 움직였습니다. 그러자 인디오들은 마침내 납득하여, 그들의 관습에 따라 큰 소리로 일장연설을 하고 또 작별의 애곡을 하였습니다. 이 관습을 잘 아는 한스 슈타덴 또한 그들과 함께 애곡하였습니다. 애곡이 그치자, 선장은 그동안 그를 죽이지 않고 잘 돌보아주어 감사하다면서 5 두카토 상당의 다양한 물품을 인디오들에게 선물로 주었고, 그들은 사례하고 배에서 내려 마을로 돌아갔습니다. 한스 슈타덴은 드디어 자유의 몸이 된 것입니다! 이 감격적인 순간에 대해, 그는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여 전능하신 주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께서는 나를 저들의 잔인한 압제로부터 해방하셨다. 그분께, 사랑하시는 아들이자 우리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찬송과 영광과 존귀를 돌린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