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수 목사(한마음사랑의교회 원로)
옛날 믿음의 선진들의 구호는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었습니다. “예수 믿고 천국 갑시다”가 기독교인의 구호였습니다. 나의 어린 시절 그 수진한 시골 할머니, 시골 아주머니들이 무슨 죄가 그리 많아서 한 주간 부흥집회 기간 동안 가슴을 치며 눈물을 흘리며 회개했는지 이젠 그 모습이 추억이 되었습니다. 세례요한과 예수님의 첫 설교가 똑같은 짧은 말씀이었는데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3:2, 마4:17)입니다. 제자들도 “회개하라”(막 6:12)라고 했고, “회개하라 그렇지 않으면 망하리라”(눅 13:5)라는 예수님의 경고도 있습니다. 회개란 마음을 바꾸고 돌아선다는 뜻입니다. 죄는 하나님의 법을 순종함에 부족한 것이나 또는 어기는 것입니다.(요 16:9, 롬 14:23,약 4:17,약 2:10, 요일 3:4 요일 5:17) 아름다운 본향 천국을 바라보며 사는 자들은 한 결 같이 통회하는 마음을 가지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오늘은 아브라함의 신앙을 통해 이민자 우리의 모습을 점검해 보겠습니다.
1. 안전하고 살기 편한 곳을 떠났습니다.(8절)
아브라함은 우리의 믿음의 조상입니다. 창세기 12장부터 25장까지 주로 기록된 아브라함의 일생을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는 어떤 사람이며,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노아의 큰 아들 셈의 후손으로 가족과 함께 “갈대아 우르”에서 살았습니다. 갈대아 우르는 지금의 이라크 남쪽인 페르시아만 해안과도 가깝고 유프라테스 강과도 가까이에 있는 대도시였습니다. 그 곳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중심지로 비옥한 토양을 토대로 하는 농업, 인도양 해안을 따라 이루어졌던 상업, 질 좋은 진흙과 역청으로 인해 발달된 건축술, 많은 우상을 섬기고 있던 종교의 도시, 문화의 꽃을 피운 화려한 도시였습니다. 살기에 좋고 편안한 곳이 갈대아 우르였습니다. 그러므로 갈대아 우르를 떠난다는 것은 세상의 좋은 것을 다 떠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떠나라 하니 아브라함은 자기의 본토, 친척, 아비집이 있는 그 곳을 떠났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이었습니다. 무조건적인 순종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목적지를 가르쳐주지 않고 떠나라 했음에도 떠났다는 사실입니다. 막연히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 12:1)고 하셨습니다. 본문에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다(8절)라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 같으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 라고 묻고 네비게이션에 입력하고 떠났을 터인데 그러나 아브라함은 전혀 묻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목적지를 물을 필요를 전혀 느끼지 않았습니다. 알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 목적지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누구와 함께 가느냐? 였기 때문입니다.(창12:1-2절)
2. 고향을 떠난 후 힘든 이민생활을 하였습니다.(9절)
아브라함의 나이 75세 때에, 그리고 그의 아내 사라의 나이 65세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민을 명령하셨습니다.(창12:1) 오늘날 이민이나 유학을 가는 분들은 대부분 자기가 가는 곳에 대해서 여러 가지 정보를 수집하고 답사도 해보지만 가야할 곳의 방향도 정확히 몰랐고, 이민 가는 곳의 정보도 전혀 없는 가운데 하나님이 가라 하면 가고 서라하면 서고 머무르라 하면 머무르겠다는 순종하는 마음으로 이민 생활의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인간적인 관점으로 보면 아브라함의 이민 생활은 아주 위험하고 무모한 출발이었습니다. 더구나 자신의 나이 75세 그리고 아내의 나이 65세에 정든 고향을 등지고 문화와 언어와 음식이 다르고 치안이 불안전한 외국 땅으로 이민 간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결단이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곳 브라질 땅에 살면서 우리는 가끔 고향을 그리워합니다. 두고 온 부모님이나 형제 친구들도 생각이 납니다. 더구나 외국 땅에서 현실적인 어려움을 겪다보면 “내가 이곳에 무엇 하려고 왔는가? 하는 생각을 한번쯤은 하게 됩니다. 아브라함도 외국 이민 생활을 하면서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이 이민을 가라고 해서 떠났고 이민 가면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창12:2)고 분명히 약속을 하셨는데 처음부터 복을 받기는커녕 기근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아브라함은 당장 먹고 사는 문제에 부딪치게 된 것입니다. 당황한 아브라함은 단을 쌓는 일도 잊어버리고 인간의 생각대로 더 좋은 환경을 찾아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애굽 땅으로 내려가고 말았습니다. 거기서 애굽의 바로 왕에게 아내를 빼앗길 뻔했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으로 애굽에서 나와 하나님이 원하시는 벧엘에 이르러 하나님께 단을 쌓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더욱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에게 문제는 계속 발생했습니다. 소유가 많아지다 보니 조카 롯과 한 땅에 동거할 수 없게 되어 해어져야 하는 아픔을 겪게 됩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힘든 이민 생활을 한 내용을 창12장-25장까지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자신의 나이 100세에, 그리고 아내의 나이 90세에 아들, 이삭을 낳게 됩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25년 만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가나안 땅으로 이민간지 62년이 되던 해에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12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도 이국땅에 사랑하는 아내 사라를 묻고 38년을 더 산 후 175세의 나이에 이국땅에서 죽어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렇게 해서 아브라함의 힘든 이민 생활은 100년 만에 마치게 됩니다.
3.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라보고 살았습니다.(10절)
아브라함은 일평생 나그네 인생을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가나안 땅 그 자체가 신앙생활의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목적은 땅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땅을 약속하신 하나님이 그의 목적이었고 그 땅을 통해서 자신과 자기 후손을 통해서 이루실 하나님의 큰 구원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이 그의 목적이었고 소원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궁극적으로 아브라함에게 주시려고 했던 것도 그 가나안 땅 그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이었습니다(10절). 이 땅 위에 있는 것들은 다 임시적인 것, 일시적인 것, 다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것은 영원한 것, 항상 좋은 것, 무너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좋은 집을 짓고 세상의 낙을 누리며 살지 않고 장막(텐트)에 거하였습니다. 돌아갈 집이 있는 사람은 장막(텐트)가 낭만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 야곱은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믿음으로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결론
우리는 매우 짧은 시간 동안 매우 한정된 장소에서 매우 제한된 일을 하면서 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불러 시키신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크신 뜻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많은 이들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고 구원을 받게 되는 일에 쓰임 받는 그것을 목적으로 삼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나의 본향집입니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고후5:1절)라고 하십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약속 중에서 우리가 돌아 갈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믿는 것입니다. 그곳에 들어 갈 것을 기뻐하며 이 땅에서 나그네처럼 사는 것입니다. 언제라도 떠날 준비를 하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사는 모습이 천국을 소망하는 사람의 삶이라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나그네라는 것을 고백하고 살아야 하고 모든 욕심을 버리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큰 기쁨은 우리가 죽어서 아름다운 본향,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의 삶이 부족하고 연약해도 항상 기뻐하며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처럼 이민 생활에 최후의 승리자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