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호영 목사(워커스미니스트리 대표)
예전 한국 집회를 다니던 중 ‘사랑스런 주님 음성’이란 곡을 많이 불렀는데, 팀원 한 명이 자기 교회에서 그 찬양을 부르다 영상 가사 오타가 나서 ‘주님 음성’을 ‘누님 음성’으로 올린 적이 있다하여 모두가 재밌게 웃었다. 그런데 문제는 집회 때 그 찬양을 부를 때마다 ‘주님’이 아닌 ‘누님’이 떠올라 웃음 참느나 고개를 못들고 불렀던 적이 있다. 또 어느 교회에서 대표기도하시던 분은 히브리서 구절을 읊으시다.. 이 구절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였는데, 너무 긴장을 하셨는지 ‘골수’를 ‘골반’으로 읊으시는 바람에 그 날 온 성도들이 예배 중‘골반을 쪼개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자꾸 생각나 허파가 아플 지경으로 웃음을 참느라 고생하셨다 한다.
말을 조심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말은 이미지가 되고, 그 이미지는 우리의 상상을 자극하며 하나의 의식으로 자리잡기 때문이다. 말로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이다. 신뢰, 또는 반대로 부정도 단어들의 이미지가 심겨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에 대한 악담을 조심해야 한다. 한 번 말로 내뱉으면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인식으로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자, 그렇다면 이렇게 말만으로도 상상의 이미지가 작동하여 영향을 끼치는데 직접적인 겉모습, 형상, 외모는 어떤지 우린 이미 잘 알고 있다. 왜 그렇게 많은 분들이 성형에 열광하시겠는가?(언젠가 한국을 다녀오실 때마다 자꾸 예뻐(?)지시는 분들을 보면서 그것이 오직 주님 은혜 때문이라 생각했던 시절도 있었다. 순진하기도..) 그 뿐 아니다. 우리는 외모, 이미지를 보는 것만으로도 심경이 동요되기도 한다. 운전 중에 개념상실한 운전자를 맞딱뜨리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것이 얼굴 확인인데, 혹 확인에 성공했는데 잘생겼으면 “멀쩡하게 생긴 놈이..”, 아니면 “생긴대로 놀아요..”하고 나서는 조금 일이 해결된 기분을 느낀다.
얼마 전 서울 강서구 PC방 살인 사건 때도 온 한국이 사건에 집중했었다. 어떻게 인간이 이렇게 잔인하게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 그런데 곧 범인의 신상과 얼굴이 공개되고 난 뒤 한동안 ‘평범하게 생겨서 더 소름끼친다’는 둥 웅성하더니만 지금은 모두 그 사건을 잊은 듯하다. 해결이 다 된 것은 아니지만 얼굴을 확인했으니 궁금증이 풀린 심리인가보다. 하나님은 이런 외모, 형상, 이미지에 집착하는 우리들의 본능을 아신다. 그래서 둘째 계명에 ‘우상을 만들지도 또 그것에 절하지도 말라’는 경고를 하셨다.
요즘 외국의 영향을 받아서 새 형식의 예배들이 현지 교회에도 반영된다. 하지만 우리가 이미지에 대한 연약함을 주의하지 않으면 좋은 시도도 원치 않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교회가 세상을 향해 더 문을 열어 새로운 문화, 방식을 받아들이기 원한다면 그만큼 더 말씀에 의거한 회개와 순종으로 거룩한 삶과 변화를 지향하고 추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행사이든 사역이든 예배이든 주는 이나 받는 이 모두가 속아 넘어질 수 있다. 특히 나도 주의하며 되세기는 말이다.
세련된 외모, 이미지, 무대들은 또 다른 우상을 세울 수 있다. 부디 모두가 새로운 것들을 많이 시도하여 다음 세대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데 힘쓰자. 그러나 제발 그저 이미지 완성으로 승부하려 하진 말자. 어설픈 흉내 좀 내지말자.
그것은 또 다른 알맹이없는 후배 사역자들만 양성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