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 목사(한마음사랑의교회 원로)
우리는 부자가 행복할 것이라는 환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돈보다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믿음이 크면 큰 만큼 행복도 커집니다. 믿음은 삶의 의미와 가치를 깨닫게 해주고, 자신감을 주고, 삶의 위기를 잘 극복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주님이 제자들에게 한 마지막 유언 설교의 일부분인데, 이 말씀을 통해 행복을 간직하고 사는 비결을 배우겠습니다.
1. 약속을 바라보며 삽시다.
본문 7절 말씀을 보십시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이 말씀은 주님 안에 거하고 말씀 안에 거해야 행복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환경 중심적인 마음(circumstance-centered mind)을 갖고 환경에 행복의 근거를 두면 우리는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대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환경을 더 믿습니다. 그처럼 환경을 크게 보고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면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항상 원망과 불평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적적인 은혜로 그들을 출애굽 시켰는데 그들은 광야에서 물과 음식이 없다고 금방 불평하며 그 은혜를 너무 쉽게 잊어버렸습니다. 그런 하루살이 믿음을 가졌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신실하게 그들의 모든 필요를 공급해주셨습니다. 느헤미야 9장 21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십년 동안을 들에서 기르시되 결핍함이 없게 하시므로 그 옷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발이 부릍지 아니하였사오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염려했던 의식주 문제를 40년 동안 다 해결해주셨습니다. 결국 그들이 걱정하고 염려하고 불평했던 일들은 다 해결되었습니다. 그처럼 우리가 염려하는 일들은 대부분 다 해결됩니다. 그러므로 환경만 바라보고 기쁨과 행복을 빼앗기지 말아야 합니다. 환경이 큰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우리를 집어삼킬 것 같은 환경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환경보다 더 크고 위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문제를 바라보지 말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을 온전히 신뢰하며 그 약속을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
2. 무조건 사랑하며 삽시다.
본문 9-10절 말씀을 보십시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주님은 이 구절에서 두 번이나 “사랑 안에 거하라!”고 하셨습니다. 자기중심적인 마음(self-centered mind)을 가지고 살면 있는 행복도 사라지고, 사랑 안에 거하고 베풀며 살면 없는 행복도 찾아옵니다. 오늘날 사람들의 행복을 막는 제일 요소는 바로 요구하는 심령(demanding spirit)입니다. 요구하는 심령은 축복을 받는 것만 좋아하고 축복을 나누며 사명을 행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또한 요구하는 심령은 하나님을 나를 위해 무엇인가를 해주어야 하는 채무자처럼 생각하고, 자신에게 어떤 나쁜 일도 일어나면 안 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은 다 받아야 하는 이기적 기복주의 신앙을 가짐으로 매우 위험한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어떤 분은 기도할 때 공중으로 주먹을 휘두르면서 소리칩니다. “하나님! 저에게 이것을 반드시 주실 줄 믿습니다!” 그러면서 구체적으로 하나님께 자신의 요구조건을 상세하게 말하고 하나님께서 이뤄줘야 할 범위까지 지정합니다. 그처럼 하나님께 순종하기보다는 하나님께 요구하는 사람은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행복은 요구하는 심령에는 찾아오지 않고 순종하는 심령에 찾아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채무자로 몰면서 하나님께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신이 원하는 방법대로 해달라는 모습을 버려야 합니다. 요구하는 심령은 나중에 반드시 하나님께 불평하고 원망하는 자리까지 가게 됩니다. 특히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바라보면 이루어진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성경 말씀을 물질적인 축복과 연결시키면 ‘요구하는 심령’만 커지게 되고, 그런 심령을 가지면 불평과 원망이 끊이지 않게 됩니다. 왜냐하면 삶에서 항상 문제와 고통은 있기 마련이고, 기복주의적인 마음을 가지고 불평하면 문제와 고통은 더 커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요구하는 심령은 자꾸 남과 비교합니다. 어떤 사람은 쉽게 돈을 버는 것 같은데 자신은 힘들면 그것이 상처가 됩니다. 어떤 부부는 행복하게 사는 것 같은데 자신은 그렇지 않으면 그것도 상처가 됩니다. 또한 어떤 교회는 잘 크는 것 같은데 우리 교회는 그렇지 않으면 그것도 상처가 됩니다. 그러면서 점점 있는 사람, 즐겁게 사는 사람에 대해 분노를 느끼다가 결국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하나님! 왜 우리에게는 축복을 주시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 복된 존재가 되려면 요구하는 심령에서 사랑하는 심령으로 극적인 마음의 변화를 이루어내야 합니다. 요구하는 심령은 고난 중에 하나님을 보지 못하지만 사랑하는 심령은 고난 중에 오히려 자신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더욱 뚜렷하게 봅니다. 사실상 하나님께서는 번성할 때보다 고난 중에 더 함께 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예수님도 사람과 함께 고통을 체험하시기 위해서 고통의 현장으로 내려오셨고, 십자가를 지시고 사람의 고통을 가장 극한 상태에 이르기까지 체험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고난 중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잊으셨다는 생각은 절대적으로 버려야 합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음미하며 나보다 약한 이웃을 살피는 영유를 가지고 이웃을 사랑하여야 합니다. 히브리서 13장 5-6절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3.날마다 충만한 기쁨으로 삽시다.
본문 11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주님은 십자가의 낌새를 눈치 채고 우울한 분위기에 젖어있는 제자들에게 마지막 유언 설교를 하시면서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충만하게 있기를 바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장면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시기를 얼마나 원하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행복을 막는 가장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는 바로 ‘놀이의 부족(A lack of play)’입니다. 사람들이 너무 바쁘게 살기 때문에 놀 시간이 결코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운동할 시간도 없고 책을 읽을 시간도 없고, 생각할 시간도 없고, 웃을 시간도 없고, 장난할 시간도 없습니다. 그처럼 무엇인가 항상 일을 해야 삶의 의미를 느끼는 사람은 삶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는 중세의 위대한 수도사 겸 신학자였습니다. 언뜻 보면 그런 분에게 노는 얘기를 꺼내면 당장 날 벼락을 맞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노십니다. 하나님은 놀려고 이 세상과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면 반드시 놀 줄 알아야 합니다.” 그 말은 노는 일도 소중한 일이고, 하나님께서 놀이가 넘치는 그분의 삶으로 우리를 초청하셨다는 말입니다. 가끔 보면 어떤 분은 너무 심각하게 삽니다. 그래서 농담을 전혀 할 수 없고, 그런 분들 옆에 가면 기쁘고 즐겁게 사는 것이 마치 큰 죄를 짓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그 곁에 가는 것이 부담스럽습니다. 물론 그런 분들도 대개 보면 다 좋은 분들입니다. 속으로는 마음도 따뜻합니다. 그러나 가까이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성경을 보면 볼수록, 그리고 성경적인 이해와 신앙적인 이해의 폭이 넓어질수록 우리는 관계의 중요성을 깨닫게 됩니다. 관계는 신앙생활의 핵심 요소입니다. 인격 관계에서 승리해야 신앙생활에서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 심각하고 너무 바쁘게 살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열심히 일해야 하지만 그만큼 열심히 놀 줄도 알아야 합니다. 오직 바쁜 것에서만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고, 바쁘지 않는 것을 게으르게 생각하는 태도를 버려야 합니다. 사람이 항상 팽팽한 상태로는 살 수 없습니다. 활도 사용하지 않을 때는 그 줄을 풀어놓아야 활의 탄력을 잃지 않게 됩니다.
느헤미야 8장을 보면 에스라 선지자가 모세의 율법책을 읽었을 때, 백성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통곡했습니다. 그때 느헤미야는 느헤미야 8장 10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느헤미야가 또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예비치 못한 자에게는 너희가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결론
우리는 환경에 반응하며 살라고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환경을 창조하며 살라고 태어난 존재입니다. 행복은 많은 소유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한 가지라도 자기만이 할 수 있는 창조적이고, 선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것에 달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자기 모습대로 자기 일을 찾아 창조적으로 살면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사람은 욕심을 부릴 때 대개 ‘깊이에 대한 욕심’보다는 ‘넓이에 대한 욕심’을 부립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행복하게 살려면 ‘넓은 삶’보다는 ‘깊은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이제 가짜 행복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요사이처럼 살기가 힘들 때는 더욱 진짜 행복이 필요합니다. 행복은 고난을 이기는 최상의 힘입니다. ‘안네 프랑크의 일기’를 보면 그녀는 다락방에서 절망 속에 숨어 살면서도 매일 빠짐없이 가족들에게 “나는 행복해요”라고 말하면서 그 어려운 상황을 이겨냈습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행복이 필요합니다. 어떻게 행복할 수 있습니까? 첫째, 처지를 탓하지 말고 약속을 바라보며 살고, 둘째, 무조건 사랑하며 살고, 셋째, 과업 중심적인 마음(work-centered mind)을 버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충만한 기쁨 안에 거하여서 올 해도 행복한 나날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