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명 목사(대한교회 담임)
사람들이 생활이 어려워지면 그 원인을 남에게서 찾습니다. ‘조선 왕조 500년’, ‘한명회’ 등을 써서 TV작가로 이름이 나있는 신봉승씨가 ‘남을 욕하는 손가락’이라는 시를 썼습니다. “자동차를 몰고 다니지 않을 때는 보행자였으므로 자동차 운전자를 욕하고 자동차를 몰고 다닐 때는 운전자였으므로 보행자를 욕하고 자동차가 많아져서 홍수일 때는 길이 뚫리지 않으므로 신호등을 욕하고 모든 날, 모든 때, 모든 것을 욕하면서 내게는 성한 곳이 없었다. 오늘 욥에 대해서 말씀을 듣습니다”
욥이 어떤 사람인가 욥기 1장 1절에서 “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욥의 생활을 하나님도 칭찬하였습니다. 욥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큰 부자였습니다. 그런데 욥이 하루 아침에 완전히 망했습니다. 10명의 자녀가 다 죽고 아내는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했습니다. 그리고 온 몸에 악창이 나서 기왓조각으로 몸을 긁으며 “하나님 어디 계십니까?”, “하나님, 내 이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십니까?”하며 불러도 하나님을 만나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욥의 입에서 놀라운 말이 터져 나옵니다. 무슨 말이 나옵니까? “내가 정금같이 될 것이다.”라고 합니다. 그럼 어떻게 정금같은 인생이 됩니까?
1. 내가 정금이 되려면 ‘말씀의 오뚝이’가 되라 하십니다.
욥 23:10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욥이 부르짖어도 외쳐도 아무 응답이 없었는데 갑자기 마음에 “욥아, 내가 너의 가는 길을 안다. 염려 말거라”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 때 욥은 “아! 하나님이 아신다. 내가 지금 어떤 형편에 있는지 하나님이 아신다”하며 마음에 평강이 찾아옵니다. 결국은 하나님이 아시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하나님이 아신다는 것을 믿으면 하나님이 인도하신다는 것을 믿게 됩니다. 우리가 새벽 기도회 끝날 때 부르는 복음송 “주님이 뜻하신 일 헤아리기 어렵더라도 언제나 주 뜻 안에 내가 있음을 아노라. 사랑의 말씀들이 나를 더욱 새롭게 하니 때로는 넘어져도 최후 승리는 믿노라. 이 믿음 더욱 굳세라 주가 지켜주신다. 어둔 밤에도 주의 밝은 빛 인도하여 주신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 마음 중심에 하나님의 말씀만 모시고 계시면 다시 일어서는 힘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이 오뚝이 믿음입니다. 오뚝이는 넘어뜨리는 재미로 하는 장난감입니다. 그런데 넘어뜨려도 다시 일어납니다. 왜냐하면 가운데 추가 붙어 있기 때문입니다. 내 삶의 중심에 말씀이 있는 사람이 오뚝이와 같습니다. 중심에 말씀이 있으면 아무리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으면 정금같은 인생이 됩니다.
2. 내가 정금이 되려면 ‘감사 자석’이 되라 하십니다.
욥 1:21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으로 그리로 돌아갈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우리가 다른 말은 잘 못해도 “감사합니다.”라는 말은 중독증에 걸릴 정도로 훈련해야 합니다. 오늘 욥의 고백이 무엇입니까? “주신 자도 여호와시며 가져가시는 자도 여호와시니 나는 감사할 뿐이다”하였습니다. 여러 성도님들! 아름다운 피부를 갖기 원하십니까? 스트레스를 물리치기 원하십니까? 건강한 몸을 원하십니까? 감사라는 약을 날마다 입에서 내시기 바랍니다. 이 약은 먹는 약이 아니라 입에서 내어뱉는 약입니다. 세 자녀에다 간암 수술을 받은 82세의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김은혜라는 분은 100일 감사하기로 작정하고 계속 “감사합니다.”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자꾸 이런 생각이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감사할 일도 없는데 왜 감사해야 하는가? 미운 사람에게도 감사해야 되는가? 지금 하는 일도 안 되고 어려움이 태산 같은데 감사를 꼭 해야 되는가? 이렇게 말로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가?’ 그러나 정말 지극 정성으로 달여 먹는 보약을 먹는 것처럼 “감사합니다”했습니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자 주위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화장품을 쓰세요. 너무 피부가 고와요. 윤기가 나고요”하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요새 좋은 일 있어요? 기분에 그렇게 느껴져요.”합니다. 예전 같으면 “좋은 일이 어디 있어요? 걱정이 태산 같은데”하며 대답한 자기였었는데 자기도 모르게 입에서 “좋은 일 많지요.”하는 것입니다. 자기도 놀라는 것입니다. 변하는 모습에 놀랐습니다. 그러고 보니 세수할 때 얼굴이 참 보드랍다는 감촉이 왔고 화장할 때는 “참 잘되는구나. 이제 보니 내가 참 이쁘네” 하는 것입니다. 계속 감사하니 주위가 변화됩니다. 삼수 끝에 이대에 들어간 딸이 현대 그룹 인재 육성 프로그램에 뽑혔습니다. 아들은 사범 대학을 나와 계속 교사 자격시험에 떨어졌는데 붙었습니다. 남편은 김 사업을 하는데 매년 받은 어음이 부도가 나서 앞으로 벌고 뒤로 밑지는 장사가 부도 수가 줄어들었습니다. 82세의 시어머니도 좋아지셨고 또 정성과 감사의 마음으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감사는 내 마음 밭에서 캐어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약은 내가 먹어서 병이 낫는데 감사약은 내 마음에서 캐내기 때문에 남에게 주어야 병이 낫게 되고 그 약을 받은 이웃과 세상이 치료가 되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여기 한 가지 비밀이 있습니다. 우리 마음은 밭인데 이 밭에는 두 가지 열매가 있습니다. 감사 열매와 불평 열매입니다. 그런데 내 마음 밭은 자석과 같습니다. 감사하며 열매를 캐내면 불평 열매도 감사 열매로 변하는 것입니다. 마치 자석에 쇠붙이를 오래 붙여 좋으면 그 쇠가 자석이 되듯이 감사는 모든 것을 감사로 바꾸는 힘이 있습니다. 모두 감사 자석이 되시기 바랍니다.
3. 내가 정금이 되려면 주님을 향해 믿음의 발걸을 걸으라 하십니다.
욥 23:14 “그런즉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 이런 일이 그에게 많이 있느니라”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 서울을 떠나 수원을 지나고 있다면 서울에 가까이 있는데 “이 기차가 어디갑니까?” 하고 물으면 “부산에 간다.”고 합니다. 이 말은 내가 지금 있는 위치가 중요한 게 아니고 지금 내가 향해 가고 있는 방향이 중요한 것입니다. 에서와 야곱 중에 누구의 죄가 더 많으냐고 한다면 당연히 야곱의 죄가 더 많습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야곱을 사랑하고 에서를 미워하셨다고 합니다. 이것이 이해가 됩니까? 바로 인간적인 눈으로 신앙을 파악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방향으로 파악하면 하나님의 뜻은 분명해집니다. 야곱에게는 항상 하나님을 향한 열망이 있었습니다. 들판에서 돌배게를 베고 자며 하나님을 바라보았고, 하나님의 복을 열망했습니다.얍복 강가에서 하나님의 복을 구하느라 생명을 걸고 씨름했습니다. 그의 마음은 항상 하나님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에서에게는 그 마음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의 가치를 모릅니다. 그에게 장자권이란 배고프면 얼마든지 팥죽 한 그릇에 팔아버릴 수 있는 하찮은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아니, 00는 신앙이 개떡 같은데 왜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그 이유는 지금 그의 신앙과 믿음은 아주 어린아이 같지만 그가 걷고 있는 쪽은 하나님을 향하기 때문입니다. 주 예수님을 바라보기 때문에 언젠가는 그의 신앙이 정금같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나는 오래 믿었으니, 초신자가 아니니, 그 말씀을 이미 다 들었으니 하면서 여러분들의 마음 밭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파내버리고 세상의 썩어갈 것들을 심으면 에서 같이 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가”입니다. 주님을 향해 가야 하는 것 아닙니까?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