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시냇가)예수님이 우셨습니다(눅19:41-44)
2017/03/24 19:59 입력  |  조회수 : 3,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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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목사(사랑의교회 담임)
 
피와 땀과 눈물은 하나님이 인간의 몸속에 주신 가장 고귀한 3대 액체입니다. 피는 생명의 상징입니다. 피를 흘림으로 새 역사가 창조됩니다. 땀은 노력의 상징입니다. 땀을 흘리면 값진 성공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눈물은 정성과 사랑의 상징입니다. 눈물의 강이 흘러가는 곳에 감동이 있고 사랑과 나눔이 일어나게 됩니다. 인생의 모든 위대한 것들은 인간이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의 결정체들입니다. 피땀, 피눈물을 흘리지 않고는 절대로 위대한 일을 성취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께서 박장대소(拍掌大笑)하며 웃으셨다는 기록은 복음서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기뻐하셨다는 표현은 자주 나옵니다. 누가복음 10:21에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 또 요한복음 15:11에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은 언제나 기쁨으로 충만한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 당시의 상황이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위기와 파탄에 빠져 있었던 시기였기에 정말로 웃을 수 있는 여유가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예수께서 적어도 세 번 우셨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세 번  우셨던 곳이 모두 감람산을 중심으로 비슷한 시기에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1. 무덤 앞에서 우셨습니다.
 예수께서 제일 먼저 우신 곳은 베다니의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였습니다(요 11:35). 예수께서는 마리아의 우는 것과 또한 그녀와 함께 있었던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여기에서 예수께서 흘리신 눈물은 어떤 의미일까요? 질병 앞에서 힘없이 쓰러진 나약한 한 친구 나사로를 향한 연민의 정과 더불어 오빠를 잃은 두 자매의 억제할 수 없는 슬픔 앞에서 함께 그 고통을 나누는 예수의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야보고는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5:13)고 하였습니다. 고난당하는 욥을 찾아온 세 명의 친구들은 울며 각자의 겉옷을 찢고 하늘을 향하여 티끌을 날려 자기 머리에 뿌리고 칠일 칠야를 말도 없이 땅에 앉아 마주보고 지냈습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순교할 때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행8:2)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심한 통곡이 첫 그리스도인 순교자의 죽음에 뒤따른 것입니다. 죄로 인해 세상에 질병이 들어왔고 많은 사람들이 나사로처럼 병들어 죽어 가고 있습니다. 그 앞에 인간은 한없이 무기력합니다. 그러나 이 질병과 죽음 문제를 주님은 십자가를 통하여 해결해 주셨습니다.(사53:4-5)
 2. 조국의 멸망을 내다보며 우셨습니다.
 예수께서 우신 두 번째 경우는 예수께서는 나귀를 타시고 호산나를 외치는 많은 무리들의 환호소리를 들으시며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셨는데 함께 기뻐하며 즐거워하기 보다는 오히려 예루살렘 성을 내려다보시며 울기 시작하셨습니다. 비록 지금은 군중들이 ‘호산나’ 하고 외치지만 이제 며칠이 못가서 바로 그들이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하고 외쳐댈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바로 그들을 보시며 우신 것입니다.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예수께서 예루살렘의 멸망을 내다보시면서 우신 것입니다. 이 눈물은 자기의 동족인 이스라엘을 향한 눈물로서 자기 민족을 향한 뜨거운 애국심이 담겨있는 눈물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을 향하여 갈릴리를 출발하시면서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 하였도다”라고 한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성육신하심은 온 인류의 구원을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에 의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스라엘을 통하여 우리에게 오셨고 그 이스라엘은 예수님의 고국이요 사랑하는 동족이기에 예루살렘으로 대표되는 자신의 조국 이스라엘을 바라보며 흘리는 눈물 속에는 조국을 뜨겁게 사랑하는 애국심이 담겨 있었습니다. 애국심 자체가 신앙이 될 수 없어도 신앙 안에는 자신의 조국을 사랑하는 애국심이 포함되어 있어야 합니다. 나라와 나라의 국경을 정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므로(행 17:26). 신앙 안에서 하나님이 주신 자신의 조국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등장하는 위대한 인물들도 모두가 조국을 뜨겁게 사랑하는 분들이었습니다. 유명한 역사학자인 스펭글러(Oswald Spengler)는 ‘서구의 몰락’이라는 책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한 나라의 멸망은 외부의 적 때문이 아니라 내부에 있는 적 때문이다.’ 즉 그 나라 안의 도덕과 윤리가 무너지고 마음과 정신과 영혼이 타락하게 되면, 그 나라는 다른 나라가 굳이 침략하지 않아도 스스로 멸망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타국에 와서 이민자로 살고 있지만 우리의 조국 대한 민국을 생각하며 느헤미아와 같은 애국의 눈물을 흘려야 할것입니다.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느1:4-5)
 3. 십자가를 앞에 놓고 우셨습니다.
 예수께서 마지막으로 우신 곳은 겟세마네 동산에서였습니다. 복음서에서는 십자가를 앞에 놓고 기도하시는 예수의 모습을 이마에서 흐르는 땀방울이 핏방울처럼 변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에서는 같은 상황을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다”(히 5:7)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십자가를 앞에 둔 예수의 마지막 기도 속에는 심한 통곡과 눈물이 담겨 있습니다. 이 기도 속에서 예수가 보여준 눈물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아담 이후 죄악으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인류의 절망적인 운명 앞에서 흘린 눈물, 곧 깊은 신학적 의미가 담겨 있는 눈물이었습니다. 이 눈물 속에는 인류의 절망적 운명을 뒤바꾸어 놓게 될 십자가의 복음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그 눈물은 절망이기보다 오히려 인류 구원의 감격이 담겨 있는 눈물이라 하겠습니다. 눈물의 기도 속에서 예수께서 선택한 십자가는 온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놓는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결론
 크리스소톰(John Chrysostom)은 성도에게 눈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죄의 불꽃이 아무리 강렬하다 해도 눈물 앞에서는 맥을 못 춘다. 왜냐하면 눈물은 허무의 용광로를 끄며 죄의 상처를 깨끗하게 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지금이야 말로 구원받은 우리들은 예수님께서 우신 것처럼 울어야 할 때입니다. 병든 자들을 바라보며 죽어가는 자들을 바라보며 주님의 긍휼을 간구하며 울어야 합니다. 암담한 조국의 현실을 바라보며 평화적으로 조국이 통일되기를 바라면서 울어야 합니다. 말세의 징조들을 직감하며 주의 재림이 임박했음을 기억하고 지옥의 꺼지지 않는 불을 향해 질주하는 영혼들을 건져내기 위하여 울어야 합니다.
 시 126: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라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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