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시냇가)무슨 소문이 났는가?(눅7:11-17)
2016/06/23 23:49 입력  |  조회수 : 2,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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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석현목사(샬롬교회).jpg
심석현 목사(샬롬교회 담임)
  I.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를 잊지 말고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매 순간 믿음으로 주님을 의지하며 승리하면서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누가복음 7장은 백부장의 믿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 이야기의 핵심은, 많은 사람들은 소문을 듣고 지나쳤지만 백부장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서 자신의 하인을 고쳐달라고 주님께 나왔습니다. 그랬더니, 그 소문이 소문으로 그치지 않고, 자신에게는 ‘기적’으로 일어났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서도 주님의 말씀이 소문으로 들려지지 않고, 여러분들에게 기적으로 일어나는 역사가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II. 본론
 1. 백부장의 종이 나은 사건과 백부장의 믿음에 대한 칭찬의 말씀 이후에, 예수님께서는 나인 성으로 들어가시게 되었습니다.
 나인 성으로 들어가실 때 제자와 많은 무리가 동행하였습니다. ‘나인’이라는 히브리어의 뜻은 ‘즐거움’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즐거움이 있어야 할 곳에 아이러니하게 ‘슬픔’의 사건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면 그 슬픔의 사건이 무엇일까요?
 2. 즐거움의 성인 나인 성에 들어가실 때 주님께서 장례행렬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장례행렬은 일상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가운데 슬픈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과 함께 나인 성에 들어갈 때 어떤 기대감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앞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나인이라는 뜻은 ‘즐거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제자들이 만나게 된 상황은 가장 슬픈 장례행렬이었습니다. 오늘 그 슬픈 일에 슬픔이 더해지는 이유가 있었데요, 그것은 장례의 주인공이 ‘독자’라는 것입니다. 또한 더욱 슬프게 하는 하나의 성경의 정보는 그 독자의 어머니가 ‘과부’라는 것입니다. 과부라는 것은 언젠가 자신의 남편을 먼저 보내고서 홀로 독자인 자식을 키웠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 여인은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남편을 대신해서 의지하면서 살아갔을 것입니다. 아들을 남편 삼아, 아들을 소망을 삼아서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 밖에 없는 자식이 아버지의 뒤를 따라 죽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니, 이 여인의 슬픔은 배가되었을 것입니다. 모든 장례가 슬프지만, 오늘 예수님이 만난 장례는 매우 비통한 장례였을 것입니다.
 그 비통한 심정을 성경은 예수님께서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라고 기록합니다. 예수님은 과부의 슬픔을 목격하고서, 속 내장까지 뒤틀리는 듯 한 비통함과 연민을 느끼셨습니다. 이렇게 비통함과 연민을 느끼신 예수님은 “울지 말라 하시고, 관에 손을 대고서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셨습니다. 그랬더니, 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니, 예수님께서 그를 어머니에게 주셨습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이 있는데요. 그것은 유대인들의 ‘정결’에 대한 개념입니다. 그들은 시신을 만지거나, 시신을 접한 관을 만지는 것은 자신을 부정하게 하는 개념이었습니다. 그래서 시신을 만진 자는 동네 밖으로 나갔다가 부정함의 기간이 끝나고서 들어와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 장례를 당했다고 하더라도 그를 만지는 것은 매우 불결한 것을 생각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당신의 종교적이고 문화적인 상식을 뛰어넘으셨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도 당시에 사셨고 문화에서 교육받으셨기에 그것을 모를 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들을 먼저 보낸 어머니의 슬픔을 보시고서 그러한 종교적이고 문화적인 정결 등은 하나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관에 손을 대시면서 그 독자 아들을 살리셔서 홀로된 어머니에게 주셨습니다.
 3. 슬픔 가운데서 주님께서 긍휼히 여기심을 통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 기적은 사람들에게 커다란 이슈가 될 만 한 일입니다. 이슈가 되기 위해서는 그에 따른 무슨 이야기가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의 입을 통해 들려지는 이야기가 무엇이었을까요?
 예수님께서 나인 성 과부의 독자를 살리신 사건을 그 자리에서 목격한 사람들의 반응에 대해서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두려워하며’라는 말은, 무섭다는 의미가 아니라, ‘놀라움으로 가득 차다’라는 뜻입니다. 즉,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그 자리에서 목격하고서 모두가 놀라움으로 할 말을 잃어버리고 멈춰버린 것입니다. 그리고서, 그들의 두 번째 반응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고 고백합니다.
 이 사건을 경험하고 있는 동네 사람들의 마음 또한 매우 비통한 심정이었었다는 것을 전제한 말씀입니다. 자신들도 이 홀로된 여인의 독자가 죽은 것을 보고서 어떤 말로 위로를 하고, 무엇을 해주고 싶었는데, 전혀 아무 것도 해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낯선 분이 오셔서 그 일을 해주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통해서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입술을 통해서 고백되어지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홀로된 여인과 그 동네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가득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자신의 가정에, 동네에 슬픈 일로 인하여 불신앙적인 모습으로 들어가려고 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독자를 살려주신 사건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과부를, 그리고 자기들을 버리지 않으셨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III.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볼보십니다’. 나 홀로 버려둠을 당하지 않도록 하십니다.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고통 속에, 슬픔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돌보셨던 것처럼’, 우리의 어렵고 힘든 삶에서 주님께서는 우리를 모른 채 하시지 않으십니다. 주님께서는 살아 계셔서 오늘도 우리의 상황과 처지를 아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돌보십니다. 주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돌보시고 계시다는 소문이 여러분들에게 일어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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