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목사(새소망교회)
신명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입성을 앞두고 모압 광야에서 진치고 있을 때 모세를 통해 전파된 3편의 설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특히 30장은 신명기의 결론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어떻게 해야 복을 받을지 가르치고 있습니다. 당시 가나안 땅에는 여러 민족들이 터를 잡고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그 곳에서 그들과 어떠한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꿈에 그리던 약속의 땅, 가나안이었지만 그곳에 들어가기만 하면 행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15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라”,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라고 말씀합니다. 가나안 땅에는 ‘생명과 복’ 그리고 ‘사망과 화’의 두 가지 길이 예비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이 두 가지 길 중에서 어떤 길을 선택하겠냐고 물으면 ‘사망과 화’를 선택할 어리석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이런 것을 물어본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질문하셨고 그들에게 선택을 요구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선택해야 할 “생명과 복”의 길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16절을 보면 그것은 첫째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은 세 가지로 드러나는 데 그것은 “예배생활”, “말씀생활”, “기도생활”입니다. 예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예배를 드리는 것과 보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예배를 보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지만 예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또, 말씀을 읽는 생활 역시 하나님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표현입니다. 사람들이 사랑을 하게 되면 상대의 말에 최선을 다해 귀를 기울입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은 하나님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기도생활을 통해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는 것도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구체적인 삶의 모습니다. 어려움이 있을 때,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신앙의 모습입니다.
두 번째는 “그 모든 길로 행하는 것”이 생명의 길이요, 복된 길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함께 모든 길로 행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알기 위해,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신앙생활의 연속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알고, 예배와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감으로 하나님과 모든 길로 행하는 삶이 될 때 생명과 복된 길로 가게 됩니다. 이어서,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그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는 삶을 살아갈 때, 우리의 삶은 생명과, 복으로 살아가게 됨을 말씀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어떤 길을 선택합니까? 사람들이 왜 ‘생명’과 ‘복’이 좋은 줄 알면서도 ‘사망’과 ‘화’의 길로 걸어가고 있을까요? “그러나 네가 만일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서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18절)이라고 말씀합니다. 사망과 화의 길로 가는 첫째 이유는 하나님께로 마음을 돌이키지 않는 죄성 때문입니다. 원어적으로 “죄”는 “과녁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창조자 되시는 하나님께 집중해서 가야되는데, 자꾸만 그 길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가만히 내버려두고 편안히 있다 보면 생명의 길로 가는 게 아니라, 점점 “죄로 인해 사망”의 길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유혹을 받아서’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고, 사망의 길, 화의 길로 가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길이 좋은 줄 알면서도, 이러한 유혹에 빠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죄가 주는 “즐거움” 이라는 유혹 때문입니다. 세 번째 이유는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불신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다른 신을’ 찾아 절하고 그를 섬김으로 사망과 화의 길로 간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이 다른 신을 찾을까요?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에 집착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절하고 섬긴 것 역시 같은 맥락의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 자체가 우리의 생명과 복이 되시지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 보다는 눈에 보이는 물질, 권력, 명예를 쫒아가고 그것을 숭배하는 것이 쉽고 편하기 때문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마7:13-14) 사망으로 가는 길에 있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고 들어가는 사람이 많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은 편안한 것을 찾습니다. “뛰면, 걷고 싶고, 걸으면, 서고 싶고,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편안한 삶이 아니라 생명의 삶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평탄한 길을 가고자 하면, 지금 당장은 좋은 것 같지만, 그 길은 사망의 길, 멸망의 길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넓은 길, 큰 것을 쫒다보면, 어느 순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게 됩니다. 넓은 길, 큰 것을 쫒다보면, 유혹에 넘어지기 쉽습니다. 오늘 우리를 즐겁게 하고, 편안하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다른 무엇인가가 우리의 즐거움이 된다면, 그것은 생명의 길로 가는 것이 아니라, 사망의 길로 가는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하면 바른 길을 선택할 수 있습니까? 20절에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또 그에게 부종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부종하라”는 말씀은 하나님께 달라붙어 지내라는 것입니다. 그 어느 누구도 그 사이에 끼어 들 수 없도록 하나님께 꼭 달라붙어 살 때 생명의 길을 선택하며 살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명의 길, 복된 길로 가야 하는 줄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생명의 길, 복된 길로 가기 보다는, 사망의 길, 화의 길로 가게 됩니다. 많은 이들이 편안함과 즐거움의 유혹이 끊임없이 손짓하는 그 길을 선택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사망으로 가는 길에는 큰 문이 있고 길도 넓어 보입니다. 그러기에 많은 사람들이 그 길로 갑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의 날이 장구치 못할 것이니라”(18절)
생명으로 가는 길은 문도 좁고 길도 협착합니다. 그래서 찾는 이가 적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길을 가야 합니다. 과정은 과정일 뿐 결코 끝이 아닙니다. 좁은 길, 협착한 길, 하나님께 부종하는 것이 힘들게 느껴진다 하더라도, 그 길이 바로 생명의 길이요, 복되게 사는 길임을 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