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시냇가)시작도 아름답게, 끝은 더 아름답게(대하26:1-5)
2014/06/13 20:15 입력  |  조회수 : 2,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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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목사(사랑의교회).jpg
김영수 목사(사랑의교회 담임)

 매사에는 시작이 있고 끝이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사시사철과 연한을 주셨다고 합니다. 하루에도 시작이 있고 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매 하루마다 계획하신 대로 된 것입니다. 하루는 저녁과 아침이 있고 밤과 낮이 있습니다. 한 달은 초하루와 그믐이 있습니다. 일 년은 4계절과 열두 달이 있습니다. 한 사람의 생애는 태어날 때와 죽을 때가 있습니다. 전 3:1-8에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시킬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찢을 때가 있고 꿰멜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모든 일에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우연이란 없습니다. 하나님의 섭리 속에 궤적과 목적을 따라 움직이는 세상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누가 천하 만물을 목적대로 이끄십니까? 시간과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이십니다.(전 3: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므로 시간의 흐름을 보면서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시간과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루실 마지막 날의 아름다운 완성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도들이 가져야 할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입니다(전 3:11).
여러분! ‘시작이 중요합니까? 끝이 중요합니까?’ 대부분은 ‘시작도 중요하고 끝도 중요하다!’고 대답하실 것입니다. 지혜로운 대답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전 7:8)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다!’고 말씀합니다. 시작도 중요하지만 끝마무리가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작은 좀 엉성하게 했어도 마지막을 잘 장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을 일컬어 ‘유종의미’라고 합니다. (마 21:28-32)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두 아들의 비유. 아들 둘을 둔 아버지가 두 아들에게 같은 일을 시켰습니다.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큰 아들은 ‘가겠습니다’고 대답했지만 일하러 가지 않았습니다! 둘째는 ‘싫습니다’고 대답했지만 나중에는 마음을 고쳐먹고 가서 일했습니다. 이 비유의 말씀하신 다음에 예수님께서 질문하셨습니다.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한 아들인가?” 우리는 끝이 아름다운 사람 되어야 합니다.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 되어야 합니다. 물론 가장 좋기는 시작도 잘 하고 끝도 잘 마무리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을 충성된 사람이라고 합니다. 신실한 사람, 믿을만한 사람, 정말 이 시대에 필요한 사람, 하나님에게도 필요한 사람입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사람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을 좋아하십니까? 자기를 닮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성품 가운데 아주 두드러진 속성은 신실하심입니다. 구약성경에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바위와 같다”고 표현했습니다. 신약에서는 아예 예수님의 이름을 충성이라고 붙이셨습니다. 주님 재림하실 때, 하늘에서 백마를 타고 오시는 데 바로 그 예수님의 이름이 ‘충신과 진실’(계 19:11)이십니다. 그 이름 그대로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맡기신 일에 끝까지(죽기까지) 충성하셨습니다(히 2:17, 3:2, 3:6). 그렇게 충성하신 예수님께서 자기의 제자들에게도 꼭 같이 충성을 명령하십니다. “끝까지 (죽도록) 충성하라! 작은 일에 충성하라!”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고 그 이름이 충성이신 주께서 끝마무리를 잘 한 충성된 종들을 칭찬하십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일을 잘 벌이기는 하는데 마치는 것을 허지부지하는 사람 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뒤에서 따라가며 수습해주어야 할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일을 한 번 맡으면 끝을 말끔하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니 자기 일은 물론 다른 사람까지 도와서 유종의미를 거두게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오늘은  웃시야 왕을 집중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웃시야 왕의 시작과 과정은 참 좋았습니다.
 웃시야는 16세에 왕이 되어 52년간 유다를 치리 했습니다. 그의 시작은 참으로 훌륭했습니다. 4절에 보면 그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정치하고 정직하게 살았습니다. 5절에는 스승 스가랴의 조언을 듣고 하나님께 기도했던 겸손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하나님께서 형통케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얼마나 형통케 하셨는가 하는 것이 이어지는 구절들의 내용입니다.(6-15절). 웃시야 왕은 군사적으로, 행정적으로, 건축과 토목공사에 있어서, 농업정책에 있어서, 국가의 전반적인 부분에 있어서 큰 역량을 발휘했습니다. 그래서 나라를 부강하게 했습니다. 국제적인 명성까지 얻었습니다. 15절 하반절에 “그 이름이 원방에 퍼짐은 기이한 도우심을 얻어 강성하여짐이더라.” 모든 부분에 있어서 부강한 나라가 된 것은 하나님의 기이하신 도움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큰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웃시아 왕의 마지막은 비참했습니다.
 16절을 보면 『저가 강성하여지매 그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  강성해진 웃시야 왕의 마음에 교만이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모든 것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한 행동은 하나님의 율법에 제사장만이 하도록 되어 있는 분향을 자신이 직접 하려고 했습니다. 분향하지 못하게 말리는 제사장의 직언을 듣고도 중지하지 않았습니다. 화까지 냈습니다. 교만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아 완고한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18-19절). 결국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율법에 명시된 대로 왕궁에서 살지 못하고 별궁으로 격리 수용되었습니다(21절). 죽어서도 왕의 묘실에 묻힐 수가 없었습니다(23절). 비참한 종말입니다.
 실패의 원인은 교만입니다.
 성경은 항상 교만을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는 죄로 경고합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앞잡이)입니다. 교만하면 망할 때가 곧 다가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웃시야가 왜 교만해졌는가 하는 것입니다. 웃시야가 어디서부터 그렇게 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찾아야 할 과제입니다. 오늘 본문 5절에서 그가 교만하게 된 원인, 실패의 근본 원인 두 가지를 찾을 수 있습니다.
 1)멘토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 멘토는 양육적인 용어로 지혜와 신뢰를 바탕으로 하여 그 사람의 인생을 이끌어주는 말로 멘토란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믿고 따르며 본받을 만한 인물을 말합니다. 본문에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의 사는 날에 하나님을 구하였다”는 말씀은 스가랴의 말을 듣는 동안에는 웃시야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하였다는 것입니다. 스가랴는 웃시야 왕의 스승이자 하나님의 뜻을 직언하는 충신이었습니다. 그러나 사가랴가 죽은 다음에는 웃시야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전해주는 사람이 가까이에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웃시야는 점점 하나님과 멀어졌습니다.
 2)기도 생활에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 5절을 다시 보세요. “스가랴의 사는 날에 하나님을 구하였고 저가 여호와를 구할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케 하셨더라”는 말씀은 스가랴가 죽은 후로 웃시야 왕은 점점 기도하지 않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충신이요 스승이었던 스가랴가 죽었기에 웃시야 왕은 정신 차리고 더욱 기도했어야 하는데 스가랴의 죽음과 더불어 그의 기도도 죽어버렸습니다. 물론 웃시야 왕은 여전히 종교의식에 참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지하게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과 대화하지 않았습니다. 이전에는 스가랴 선생님과 함께 매사에 기도하며 하나님께 나아갔는데 이제 그는 국사를 상식으로 경험으로 처리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할 때도 그저 의식을 치르기 위해서지 하나님의 뜻을 묻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를 사랑하십니다. 기도하는 자에게 자기를 나타내십니다. 지혜를 주십니다. 자기의 뜻을 가르쳐 보이십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도록 힘을 주십니다. 바르게 살도록 힘을 공급하십니다. 기도하는 자를 통해 하나님은 당신의 나라와 의를 이루어가십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자의 마지막이 아름답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이사야 6장을 보면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때가 바로 웃시야 왕의 죽던 해였습니다(6:1). 우리가 오늘 본 대로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여 자기 맘대로 분향하려고 했던 웃시야는 결국 문둥병자가 되어 별궁으로 내침을 받고 거기서 쓸쓸히 죽어갔지만 바로 그때 이사야는 하나님의 성전에 올라가 하나님의 얼굴을 구했습니다. 그때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뵈옵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이사야는 자신과 민족의 죄가 얼마나 큰 지 깨닫고 회개했습니다. 회개하는 이사야에게 하나님은 사죄의 은총을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거기다가 하나님을 위하여 일하는 선지자의 소명까지 받게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자가 되고 싶습니까? 웃시야 같은 사람입니까? 이사야 같은 사람입니까? 어디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났습니까?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의 차이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란 하나님께로 겸손히 나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처음보다 나중이 더 아름답기를 바랍니다. 끝까지 주님을 사랑하십시오! 끝까지 주님 앞에서 겸손하시고 끝까지 주님을 말씀을 사랑하시고 끝까지 기도하는 일을 계속하십시오! 그러면 좋은 날을 보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약속입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당부했던 권면의 말씀을 여러분에게 드립니다. “이 모든 일(네게 맡겨진 하나님의 사역)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딤전 4:15)” 이 세상을 사는 모는 인간은 두 가지 괘도 중 하나를 타고 인가생의 종착역을 향하여 달리고 있습니다. 육적 성공을 위한 궤도를 타고 달리는 자들입니다. 가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길도 넓습니다. 지원자도 많습니다. 그러나 목적을 이루었어도 별로 남는 것이 없습니다. 그 마지막은 허무입니다. 그러나 적은 무리이지만 사명의 괘도를 타고 달리는 자들이 있습니다. 가는 사람도 적고 길은 좁고 그러나 분명한 목적이 있고 보람과 가치가 있고 최후는 면류관이 예비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웃시야처럼 시작은 좋았지만 마지막에 가서 실패한 인물들을 많이 보여줍니다. 유명한 사사 기드온,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 예수님의 제자였던 가룟유다, 바울의 제자였던 데마(골 4:14, 딤후 4:10)도 같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사명의 괘도를 타고 달린 모세나 바울처럼 세상 학문에 능통했어도 사명을 위해서 살고 간 자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초심을 견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처음 겸손이 끝까지 가야 합니다. 처음 열정이 그대로 지속되어야 합니다. 처음 가졌던 순수함이 하나님 앞에 서는 날까지 그대로 지속되어야 합니다. 이것만이 면류관의 주인공이 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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