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목사(새소망교회)
지난 4월 20일, 우리는 부활절을 보냈습니다. 해마다 대부분의 교회들은 부활절을 즈음하여 매우 바쁘고 분주한 하루하루를 보내게 됩니다. 먼저는 사순절(부활절로부터 40일 전)을 시작으로 예수님의 고난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그리고 종려주일과 고난주간을 보내면서 예수님의 행적을 더 깊이 묵상하며 특별한 기도회를 갖기도 하고 금식과 전도에 힘쓰는 시간을 갖기도 합니다. 그리고 부활절 당일을 맞이하면 이른 새벽부터 여느 때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 속에서 기쁨과 설렘과 환희와 무어라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감격의 부활절을 보내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가 부활절에 집중하며 기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부활이야말로 모든 성경의 중심이며 기독교 신앙의 핵심 중에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질병, 외로움, 빈곤, 실패 등등 많은 문제들이 사람들을 위협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죽음입니다. 죽음을 두려워 하는 이유는 그 이후를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천하를 호령할 만한 권세를 가졌던 사람들도 이 죽음을 피해 보려고 갖은 노력을 다 했지만 결국 죽음 앞에서는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죽음은 원래 죄 때문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5:12)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모든 사람들의 가장 큰 두려운 문제이자, 결코 해결할 수 없는 죄와 죽음의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신 놀라운 사건입니다.
사람은 모두는 죽습니다.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도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참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부활 사건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두려움으로 맞이해야 할 죽음은 이제 결코 두려움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는 통과의례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이 부활의 은혜가 모든 이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요11:25-26)고 말씀하셨습니다. 부활의 은혜가 적용되는 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결코 이 부활의 은혜 속에 들어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부활의 은혜를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위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소유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믿는 자” 뿐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 자신의 부활에 대해 많은 사람들에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하신 부활의 말씀을 보면,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기워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심히 근심하더라”(마17:22-23) 또,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마26:32)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만 부활에 관하여 말씀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에게도 부활에 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마12:39-40), 그리고 “이방인에게 넘겨주어 그를 능욕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박게 하리니 제 삼일에 살아니리라”(마20:19)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이 부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그들의 반응은 과연 어떠했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가장 가까에서 많이 들었던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보고 슬퍼하며 모두 흩어져 버렸습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빌라도에게 “주여 저 유혹하던 자가 살았을 때에 말하되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 그러므로 분부하여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적질하여 가고 백성에게 말하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하면 후의 유혹이 전보다 더 될까 하나이다(마27:62-)“라고 말하고 예수님의 무덤을 돌로 막고 건장한 사람들로 지키게 하는 어리석은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부활에 대한 말씀을 아무리 많이 들어도 제자들처럼 정말 그 말씀이 필요할 때 기억하지 못하면 삶 속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또한 바리새인들이나 제사장들처럼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것 역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 마태복음 28장은 예수님의 부활의 현장을 보여줍니다. 부활의 새벽이 되었을 때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예수님의 시체에 향품을 바르기 위하여 예수님의 무덤을 찾게 됩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기대하고 그 자리에 간 것은 아니지만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자리에 갔습니다. 그러자 큰 지진이 나고 천사가 내려와서는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아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부활의 현장에는 그 여인들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본문 4절에 “수직하던 자들이 저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수직하던 자들이란 예수님의 시체를 제자들이 훔쳐 갈까봐 무덤을 지키던 건장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부활의 소식은 기쁨의 소식이 되지 못하고 두려워 죽은 시체같이 되었습니다.
반면에 5절에 보면, “천사가 여자들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는 무서워 말라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인들은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을 기쁨과 감격 속에서 전해 듣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부활의 소식은 어떻게 와 닿고 있습니까? 주님을 사랑했던 두 여인에게 전해 졌던 것처럼 우리 모두에게 이 부활의 소식이 기쁨의 소식이요, 평안의 소식이요, 힘이 되는 소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죄와 죽음을 이기고 승리의 소식이 울려 퍼진 부활절을 보낸 후, 우리들의 삶은 어떠해야 할까요? 부활절 절기가, 그저 부활절을 기념하기 위하여 분주하게 달려 온 40일의 행사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공연 준비에 한창이다가 공연을 잘 마친 연극배우들처럼 그저 아쉽고 때로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가 여느 때처럼 그저 그렇게, 그럭저럭 세상에 묻혀 살아다 내년 이맘 때 쯤이나 되어서 다시 뭔가 해보겠다고 마음먹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부활 그 이후”를 잘 보내야 합니다.
부활 그 이후, 우리는 무덤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갈릴리로 향해야 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10절)”말씀하셨습니다. 갈릴리는 제자들의 삶의 터전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부활하신 무덤가가 아닌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만나길 원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삶의 터전인 갈릴리가 어디입니까? 우리의 가정이 갈릴리입니다. 우리의 일터가 갈릴리입니다. 학생은 학교가 갈릴리 입니다. 부활절을 보낸 우리 모두는 이제 우리 각자의 갈릴리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리하여 늘 삶 속에서 주님과 동행하므로 부활절 절기에만 그치는 부활의 감격이 아니라 날마다 살아 역사하는 부활의 은혜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아울러 주님의 부활로 누리게 되는 영원한 생명이 우리에게 있음을 많은 이들에게 증거 하는 증인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