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성복 목사(시온성장로교회 담임)
나는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목사님들이 있습니다. 선교사님들이 있습니다. 교회의 중직을 맡아서 열심히 섬기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간신히 간신히 교회에 나오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사회에서 만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참 다양합니다. 어떤 사람은 기쁨이 가득하여 미소를 지으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얼굴이 한참 굳어 있는 것을 봅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기쁨이 가득한 사람이나 찡그리고 있는 사람이나 상황과 여건은 거의 비슷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겉으로 나타나는 그 얼굴의 표정이 다르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봅니다. “왜 이 사람들의 얼굴의 표정이 다를까? 무엇 때문일까?” 이 사람들과 대화하다 보면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 나름대로 자기에게 다가와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은 거의 비슷한데 각자가 대처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문제들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요즈음 사람들이 맞이하는 사건이나 여건이나 상황들은 거의 비슷하다는 것을 압니다. 너도나도 힘든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어떻게 그 사건과 상황을 바라보고 대처하고 있는가? 어떻게 해석을 하고 있는가? 이것이 많은 차이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저는 6월에 들어 담임하고 있는 교회의 성도들 가정을 처음으로 심방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숫자만큼 기도 제목도 다양하고 문제들도 다양하며 이것을 대하는 마음도 다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들을 바라보면서 두 종류의 사람으로 나눌 수 있었습니다. 한 종류의 사람은 그 어떤 문제가 있다고 해도 항상 감사하며 살아가는 분이 있고, 어떤 분들은 어딘지 모르게 답답하고 얼굴을 찡그리고 화가 난 듯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보면 위에서 말한 대로의 대처방법이 다르기 때문이었습니다. 해석하는 자체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문제를 안고 혼자 끙끙거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그 믿음으로 하나님께 맡기면서 감사하며 행복한 가운데 자유롭게 살아가는 분들이 있음을 발견하였습니다. 바로 어떤 마음과 눈으로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상황들을 바라보는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던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슈레시 파드마나반이 쓴 “돈에 관한 완벽한 사용설명서 - I Love Money”에 삶의 고난으로 불평하던 한 여인과 그녀 어머니와의 대화가 나옵니다. 딸은 자신의 인생이 얼마나 힘든지 불평하며 늘어놓았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어머니는 딸을 주방으로 데려간 뒤 3개의 냄비에 물을 채웠습니다. 냄비에 당근, 계란, 커피를 각각 넣고 말없이 끓였습니다. 시간이 흘러 어머니는 당근, 계란, 커피를 그릇에 담아 딸에게 보이며 물었습니다. “뭐가 보이니?” “당근, 계란, 커피요.” 어머니는 다시 물었습니다. “그런데 이것들이 지금 어떻게 되었지?” 딸은 대답했습니다. “당근은 물렁해졌고, 계란은 단단하게 삶은 계란이 되었고, 커피는 깊은 커피 향을 내고 있어요.”
어머니는 말했습니다. “당근, 계란, 커피가 뜨거운 물이라는 똑같은 고난을 통과했을 때 당근은 무르고 약해졌고, 달걀은 단단해지는 변화를 겪었고 커피는 뜨거운 물 자체를 향기롭게 변화시켰잖니? 딸아, 고난이 찾아왔을 때 너의 반응은 약해지는 것이니? 단단하게 굳어지는 것이니? 커피처럼 역경과 더불어 너 자신만의 아름다운 향기가 나는 커피로 변화시키는 것이니?” 그때서야 딸은 어머니가 하는 말의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딸은 불평하던 모든 것을 거두었으며 자기 자신이 변화될 미래를 바라보게 되면서 감사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맞이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성도님들의 가정을 심방하면서 나타난 문제들을 보면 “자녀가 결혼하였는데 몇 년 동안 아이가 없습니다. 가게를 잘 운영해야 하는데 만이 힘듭니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늘 걱정입니다. 등등….” 이런 것으로 인하여 원망과 불평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똑같은 뜨거운 물로 인하여 당근이 물렁물렁하게 된 것처럼 물렁물렁하게 되기도 하고, 때로는 똑같은 물로 인하여 계란처럼 단단하게도 되고, 때로는 똑같은 물로 인하여 커피처럼 아주 향기로운 맛과 냄새를 풍기기도합니다.
저는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우리는 똑같은 어려움과 일과 사건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아니 지금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일이 나를 어떻게 만들고 있는지를 자세히 살펴보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에 필요한 존재로 변화하고 있는가? 아니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그런 존재로 변하고 있는가? 목적하는 바대로 변화되어 쓸만한 존재가 된다는 것, 바로 당근은 당근대로, 계란은 계란대로, 커피는 커피대로 나름대로의 목적하는 바대로 변화되어 쓰임 받는 존재가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제 다시 그 문제와 어려운 일들에 눈을 돌려 봅시다. “나는 그것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아니 어떻게 해석해 낼 것인가?” 나의 대처와 해석 따라 나에게 다가오는 것은 엄청난 차이를 보이면서 다가오게 됩니다. 원망과 불평을 할 것인가? 아름답고 멋있게 변화되어 있을 그 날을 바라보면서 이겨 나갈 것인가? 이왕 동일한 상황과 동일한 문제들을 가지고 씨름 할 때 원망과 불평의 마음으로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너를 통해 반드시 승리하여 멋진 미래를 이루어 낼 것이다. 이것은 나에게 주어진 기회다. 하나님의 은총이다.”라고 외치면서 아름다운 변화를 일구어내기를 소망합니다.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이나 제가 담당하고 있는 성도들이나 동일하게 현재의 자신만 바라보지 말고 앞으로 변화되어 있을 자신을 믿음으로 바라보면서 진지하게 질문을 해 볼 수 있기 바랍니다. “나는 무엇인가? 당근인가? 계란인가? 커피인가?” 그 무엇이라도 좋습니다. 그 무엇이라도 뜨거운 물속을 거쳐 나오면 또 다른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지금의 그 고난이라는 뜨거운 물에 들어갔다가 시간 되어 나왔을 때는 우리가 아름답게 목적에 맞도록 변화되어 멋있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나다.”라고 외치면서 뜨거운 물 속을 거치는 사람만이 아름답게 목적에 맞도록 변화될 것입니다. 이 아름다운 변화를 꿈꾼다면 원망과 불평이 아니라 감사하면서 그 뜨거운 물 속으로 풍덩 뛰어들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아주 멋있는 사람으로 변화시켜 순금같이 나오도록 역사하여 주시리라 믿고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