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동순 권사(배우리한글학교장, 연합교회)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오늘이 끝이 아니고 살아 호흡하고 있다면 고민할 필요없이 내일이 온다. 내일, 무슨 일이 닥칠지 알 수는 없지만 짐작하고 사는 것은 늘 일상의 일이 똑 같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움직이고 있는 것이 계획대로 움직이는 것 같아도 사실은 똑 같은 일이 일어 나는 것은 아닌데 우리는 착각을 하면서 매일매일이 똑 같다고 말한다.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이런 물음에 응답은 “뭐 매일 똑같지요” 보통 이런 말이다. 아침에 일어나 하루의 일을 시작하는 시간은 대부분 같은 시간이고 하는 일이 거의 똑 같고 그날, 그날에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는다면 일의 반복이 똑같다고 생각한다. 물론 틀린 말도 아니다. 하루를 단위로 보지 않고 일주일을 생각해도 마찬가지다. 월요일은 별일 없고 수요일과 목요일은 약속한 수업을 하고 규칙적으로 훼라를 가야하고 금요일은 대청소에 토요일은 평생을 해 온 가르치는 일에 올인하고......
무료한 일상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다양하다. 어떤 이는 자기 만의 회복의 장소 혹은 시간을 갖는 여행으로 퀘렌시아(안전하고 평화로은 나만의 작은 영역)를 찾는다.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했던 낡은 짐들을 정리하고 작정하고 지인을 만나 밥도 먹는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뻔한 머리 모양새를 정리하려고 전화로 예약을 하는 그 순간 이미 나의 퀘렌시아는 찾은 거나 다름없다.
하루에 잠시 벗어난 두어 시간의 이탈은 작은 행복이 될 수도 있다.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주위의 환경보다 일상의 순간에 대한 집중도에 달려 있다고 봐도 될 것 같다. 말이 많은 사람들의 특징은 많은 말을 하기 위해 끊임없이 말거리를 찾는다. 사람들을 만나고 책을 읽거나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하기야 요즘은 핸드폰이 유일한 얘깃거리를 제공하지만.
눈에 피로감으로 책을 읽는 작업이 예전 같지 않다. 문제는 한 번 잡으면 끝장을 봐야 하는 쓸데없는 습관이 문제다. 그래도 오랜만에 글을 접하니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 나의 오늘의 변화는 잠깐의 이탈이지만 매일 똑 같은 일의 반복이 아니라는 것이 또한 힐링이 된다. 회상, 회고, 나아가 추억이라는 말은 모두 지나간 것에 대한 미련이나 아쉬움, 그리움에서 시작된다. ‘추억을 먹고 산다’라는 말이 있다. 좋은 의미의 회고는 그 힘을 발휘하고 현재의 나의 불편함과 무력감을 해소시켜주는 좋은 생각이다. 그러나 현재의 삶에서도 충분히 찾을 수 있는 행복을 자꾸만 과거 속에서만 찾으려고 하니 생동감이 없다. 손자 놈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며 함께 웃는다. 소녀 시절에 깔깔대며 웃던 재미있던 옛 일과 비교해도 조금의 손색이 없다. 그래서 행복은 현실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삶의 지혜는 나의 현재의 불행을 탓하거나 멈추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다시 솟아날 건강한 씨앗을 심는 데 있는 것이다. 새는 날면서 절대로 뒤를 보지 않는다. 외부의 힘이나 무력이 아닌 스스로 깬 알의 생명은 건강하다. 모든 행복의 시작은 내부로부터 온다. 새가 나무 위에 앉아 있다고 나무를 의지하는 것은 아니다. 새는 언제든지 날 수 있는 자신의 날개를 믿는다. 자신의 힘과 생각만이 안전한 행복을 만들 수 있다. 작은 행복을 만들려고 안간 힘을 쓰거나 노력할 필요가 없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일을 무사히 잘 마친 이 저녁은 욕심 없는 작은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