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용주 목사(봉헤치로 제일교회 담임)
1. 메시야 에아렌딜
톨킨이 에아렌딜을 요정(엘프)와 인간 두 종족의 구세주로 설정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은, 그가 영문학자 퀴너울프(Cynewulf)의 시 “그리스도”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구절을 애송했기 때문이다. “Eala Earendel engla beorhtast/Ofer Middangeard monnum sended.” 중세 영어로 쓰인 이 구절은 이런 뜻이다. “아! 에아렌델, 가장 밝은 천사여/중간계로 인간을 위하여 보내지셨네.” 여기에 톨킨의 레젠다리움을 구성하는 두 핵심단어가 등장하는데, 바로 ‘에아렌델’과 ‘중간계’이다. ‘에아렌델’은 새벽별로, 이 시에서 ‘그리스도’, 즉 중보자인 구세주를 가리킨다. 이 이름을 톨킨은 ‘에아렌딜’로 바꾸고, 자신이 만든 ‘중간계’의 메시야가 되게 한 것이다.
에아렌딜은 엘윙과 결혼하였다. 엘윙은 서쪽으로 항해를 떠난 남편이 긴 세월동안 돌아오지 않자, 희망을 잃고 어느 바닷가의 높은 절벽에서 몸을 던졌다. 하지만 이를 딱히 여긴 바다의 아이누르인 울모가 그녀를 하얀 바다새로 변신시켜 항해중인 에아렌딜의 품으로 이끌었다. 이 설정을 통하여 톨킨은 노아와 방주, 그리고 비둘기를 각각 대입시키며 구세주의 이미지를 더욱 강화한다. 여기서 비둘기에 대입되는 하얀 바다새는 ‘중간계’ 서사 전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엘윙은 은색 배 빙길롯의 에아렌딜에게 실마릴 보석을 전해주었다. 그들은 이 보석을 뱃머리에 달고 항해하였기 때문에 안전하게 천사들의 땅 발리노르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의 중보가 받아들여진 대가로 실마릴을 단 은색 배는 하루 한 번 밤하늘을 항해하는 별이 되었는데, 요정(엘프)과 인간은 그 별을 ‘희망별’이라 불렀다. 이것이 오늘날 ‘금성’이라 불리는 새벽별로, 어둠의 땅 모르도르의 시커먼 구름 사이로 잠깐 나타나 반짝였을 때 샘이 바라보고 다시 힘을 얻었던 바로 그 별이다.
엘윙은 높은 곳을 무서워하였다. 그래서 이 항해는 에아렌딜만 하게 되었다. 하지만 인류의 근원지인 동쪽에서 항해를 시작하여 서쪽 하늘에 도착하면, 그녀는 바다새의 흰 날개로 하늘로 날아가 그를 맞이한다고 한다. 이 설정에서 톨킨은 그리스도와 그 신부인 교회의 이미지를 투영한다.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 오른편에 앉히사…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또 [너희를]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고(엡 1:17-2:7).” 에베소서에서 교회를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히시는 것은 성령이다. 성령은 그리스도가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올 때 그 위에 ‘비둘기’ 같이 내려왔다. 톨킨의 하얀 바다새에 비둘기가 대입되는 이유다. 엘윙은 하얀 바다새의 날개로 하늘로 날아올라 에아렌딜을 만난다. 교회는 성령을 받아 그 날개의 힘으로 하늘에 앉는다.
2. 에아렌딜의 아들들
에아렌딜과 엘윙은 두 아들을 낳았다. 바로 엘로스와 엘론드 형제였다. 그들은 요정(엘프)와 인간의 혼혈이라서, 자신이 속할 종족의 삶을 선택할 수 있었다. 엘론드는 영원한 지혜를 사랑하여 요정(엘프)의 삶을 선택하였고, 엘로스는 강인함을 사랑하여 인간의 삶을 선택하였다. 그러나 그와 그 일족이 ‘분노의 전쟁’에서 유일신의 편에 서서 악마 모르고스에 대항하였기 때문에, 긴 수명을 선물로 받게 되었다. 이들이 바로 누메노르 인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