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복 목사
얼마전 가수 나훈아 씨가 코로나 19로 인해 비대면 콘서트를 KBS2에서 “내한민국 어게인 나훈아”라는 제목의 프로그램을 방영 하면서 방구석을 들었나 놓았다 했다. 작년과 올해를 강타한 트로트 신드롬으로 전국민이 트로트에 친숙한 분위기에서, 나훈아의 엄청난 목소리와 퍼포먼스로 비교적 젊은 2030세대의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특히 이때 불러서 주목받고 있는 그의 신곡은 “테스 형!”이 난리다. 익살스럽고 재치있는 표현으로 2030세대에서 큰 화제가 되었음에도, 테스형의 가사 속 숨겨진 속뜻은 마냥 우습지 않다. 왜냐하면 이 노래는 그가 11년 동안 무대 밖 세상을 떠돌면서, 아주 힘들고 아플 때면 찾아가는 아버지 산소에서 쓴 글을 작곡해 부른 노래라고 한다. 가사는 이렇게 된다. “어쩌다가 한바탕 턱 빠지게 웃는다. 그리고는 아픔을 그 웃음에 묻는다. 그저 와준 오늘이 고맙기는 하여도 죽어도 오고 마는 또 내일이 두렵다.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아 테스형, 소크라테스형, 사랑은 또 왜 이래. 너 자신을 알라며 툭 내뱉고 간 말을 내가 어찌 알겠소 모르겠소 테스형....”
이 노래를 들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힘들고 어려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울림을 주는 노래임에 틀림이 없다. 지금의 정치, 경제, 코로나 19, 가정, 기업, 학교, 교회 등등. 그 어느 것이든 곳이든 힘들지 않은 곳이 없고 평안 한 곳이 없다. 가사 속에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리 힘들어” 는 나훈아씨도 느꼈던 세상이 힘든 것이 지금 우리 모두가 느끼는 그런 힘든 일일 것이다. 그래서 외쳐 본다.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리 힘들어.” 그렇다. 우리는 모두 이런 말을 외치면서 지금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코로나 19로 말미암아 다가온 고통과 고난이 있지만 요즈음 정치권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눈을 가리고 싶고 귀를 닫고 싶은 심정이다. 아니 어디 멀리 떠나가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하게 살고 싶은 것이 우리의 심정이다.
테스형이라는 노래에서 소크라테스에게 “세상이 왜 이리 힘들어”라고 하소연 하면서 질문을 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가수 나훈아씨는 개인의 힘들고 어려운 내용도 있겠지만 지금의 상황과 모습 때문에 이런 가사를 쓰지 않았나 생각도 해본다. 그리고 이 세상에 그 누구에게 이 모든 일들이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어보고 싶지만 어느 누구하나 똑부러지게 대답 해 줄 사람이 없다. 그래서 나훈아씨는 소크라테스형을 부르면서 자기의 상황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형이 우리의 상황을 반전시키거나 해결을 해 줄 수 없다. 그렇다. 세상에 그 누가 우리의 답답함과 문제에 대하여 대답을 줄 수 있겠는가? 없다.
사람들은 이 노래를 부르면서 대리 만족이랄까? 누군가에게 외치고 싶은데 테스형을 부르면서 자기의 모든 마음을 토로할 수 있으니 시원할 것이다. 국감장에서도 테스형이 울려퍼지는 상황이니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면 이런 일까지 벌어졌을까하는 것이다. 또 이것이 다양하게 패러디하여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테스형 OO가 왜 이래.”하면서 OO에 자기가 집어넣고 싶은 단어를 넣어서 풍자해 내는 것이다.
이유가 무엇인가? “테스 형”은 첫 소절에서 “어쩌다가 한바탕 턱 빠지게 웃는다. 그리고는 아픔을 그 웃음에 묻는다”고 출발한다. 웃으면서 살다가 찾아온 아픔이 있으면 그 웃음에 아픔을 묻는다고 한다. 그런가하면 “그저 와준 오늘이 고맙기는 하여도 죽어도 오고 마는 또 내일이 두렵다.”고한다. 새 날을 맞이한 것이 좋지만 마냥 고마운 것은 아니다. 오늘로 모든 것이 끝이 나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하니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렵다. 독자 여러분은 어떤가? 모든 것이 잘 되고 있어서 테스형이 공감이 안되는가? 그렇다면 참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분들이 더 많은 것을 알기에 마음이 아픈 것이다.
성경에도 이런 외침은 수도 없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출애굽기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노릇 할 때의 고통으로 인한 부르짖음이 있다. 다윗왕이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을 향하여 외치는 소리가 있다. 바울이 감옥에 갇혀서 부르던 찬양과 기도가 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당하는 고난과 고통으로 인하여 하나님에게 부르짖어 외치던 일들이 많이 있다. 또한 형제자매들을 위하여,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환자들을 위하여 옆에서 외치던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테스형을 찾지 않았다. 이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을 찾았다. 하나님에게 호소하였다. 하나님에게 부르짖었다.
여러분, 왜 그런가? 예레미야 33:2-3절을 보라.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그렇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찾고 부르고 외치는 자에게 응답하고 길을 보여 주신다. 그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일들을 행하신다.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는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이시다.
세상 사람들이“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탄식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을 찾자. 하나님에게 외치자. 왜 그렇게 해야 하는가? 모든 것에 정답은 하나님이시기 떄문이다. 그 하나님에게 가까이 다가가 부르짖고 외치자. 그리하면 하나님이 귀 기울여 주시고 해결하여 주신다. 예레미야 29:12-13을 읽어보자.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아멘! 할렐루야!
(YouTube : 강성복목사 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