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묵 목사(신광침례교회 담임)
어떤 소녀가 한 청년을 사랑했습니다. 하지만 그 청년도 자기를 사랑하는지 의구심이 들었던 소녀는 아카시아 잎을 땄습니다. 그리고는 근심 어린 얼굴로 그 아카시아 작은 잎을 하나씩 떼며 속으로 헤아리기 시작했습니다. “사랑한다”, “아니다”, “사랑한다”, “아니다”, 그렇게 헤아리다가 마지막 이파리가 “사랑한다”로 끝나자 얼굴이 환해지면서 기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소녀는 혹시 모르는 일이라며 다시 아카시아 잎을 따서 헤아리기 시작했습니다. “사랑한다”, “아니다”, “사랑한다”, “아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니다”로 마지막 잎이 끝나고 말았고 그 소녀는 마치 온 세상이 무너지기라도 한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좌절을 했습니다.
오래 전 처음 이민을 왔을 때 어린 시절에 한국에서 장난 반 진심 반으로 했던 놀이가 남미 땅에서도 똑같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사람의 마음은 다 똑같은가 보다 싶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me quer, não me quer”, “Me quer sim, Não, me quer não…” 제멋대로인 아카시아의 이파리의 수에 따라 달라지는 결과에 사랑에 대한 확신을 의지하려는 것은 그야말로 안타깝고도 어리석은 일입니다.
신앙생활의 가장 큰 문제도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의 근거를 우리 자신에 둡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것도 내게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고 여깁니다. 다행이 별 잘못을 저지르지 않은 날에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 하신다’ 싶다가도 음란한 생각을 했거나 이익과 입장에 따라 양심을 속이기라도 한 날에는 ‘하나님이 이런 나를 과연 사랑 하시겠나’ 싶은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수도 없이 내 행위에 따라 복을 주시기도 하고 안주기도 하시는 분으로 하나님을 단정 짓곤 하지만, 교회를 다니면서도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아는 것이 모든 신앙생활의 기본입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하나님 자신의 모습은 우리와 무조건적인 언약을 맺으시는 분이십니다. 무조건적이라는 것은 내 행위의 어떠함과는 상관이 없다는 말입니다. 또한 우리는 쌍방의 조건이 맞아야 계약이 성립이 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와 맺으신 언약은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하신 언약입니다. 우리의 순종이나 불순종과 상관없이 일방적이고 무조건적인 약속을 우리에게 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고자 하시는 하나님 자신의 진짜 모습입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피조물에 불과한 우리를 그렇게까지 무조건적이고 일방적으로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선뜻 믿고 받아들이기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러나 그것이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그 사랑을 확인하고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이틀 후 주일 예배에 참석하시는 것을 통해 얻게 되시기를 진심으로 권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