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 목사(한마음사랑의교회 원로)
찬송가 116장 가사에 <동방박사 세 사람, 귀한 예물 가지고,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별 따라 왔도다!> 성탄절 카드에 흔히 등장하는 그림처럼 낙타에 몸을 싣고 산을 넘고 물을 건너 길을 재촉하는 동방 박사들의 모습이 연상되어 집니다. 본문의 <동방>이란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요? 이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확실한 것이 없습니다. 학자들의 의견도 분분합니다. 아라비아라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는 인도라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쨌든 동쪽의 대단히 먼 곳인 것은 확실합니다. 박사들은 그 먼 곳에서 왔습니다.
1. 동방 박사들이 온 목적이 무엇일까요?
하늘의 이상한 별을 보고 왕이 탄생하셨음을 알았기에 온 것입니다. 그러나 좀 더 구체적으로 그들이 찾아온 목적을 본문에는 박사들 스스로가 밝히고 있습니다. 헤롯왕의 궁궐을 찾아온 박사들이 물었습니다. 2절에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경배하러 왔다!>, 이게 바로 그들이 온 목적이었습니다. 경배(敬拜)가 무엇입니까? 한자어로 보면 <경>은 <공경할 경>이요, <배>는 <절 배>입니다. 즉 공경하는 마음으로 절하는 것입니다. 이 단어를 그리스어로는 <프로스퀴네오>(προσκυνεω)라고 하는데, 존경의 표시로써 손에 입맞춤을 하거나, 무릎을 꿇고 땅에 이마를 대는 것을 말합니다. 이 단어는 극도의 존경심을 표시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성경은 <박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박사란 오늘의 개념과는 다릅니다. 당시 박사란 지식이 많은 사람이라는 뜻 외에도 종교 지도자, 통치자를 말합니다. 이들은 왕이면서도, 지식인이고, 종교적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이들은 당시 최고의 지위에 있는 인물들입니다. 그렇다면 이토록 대단한 신분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이마를 땅에 대고 드리는 절을 받을 자격이 있는 분이 누구이겠습니까? 이런 경배를 받을 자격이 있는 분은 오직 한 분, 우리 주님뿐입니다. 주님은 당연히 경배를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주님은 모든 왕들의 왕이시므로 경배를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주님은 지혜의 근본이시므로, 학자와 박사들의 경배를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의 경배는 단순한 절이 아니라, 사람이 주님을 향해 올리는 경배, 즉 <예배>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영어성경의 번역이 매우 적당합니다. 영어 성경들은 이 단어를 worship, 즉 예배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박사들이 찾아온 목적은 <예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박사들은 첫 번 성탄절을 예배로 맞이했습니다. 성탄절을 예배로 맞이한 것은 박사들만이 아닙니다. 목자들도 그러했습니다. 누가복음 2장 20절에 <목자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한다, 이게 목자들의 예배였습니다. 또 경건한 노인 <시므온>은 어떻습니까? <안나>라는 여선지자는 어떻습니까? 이들은 모두 성전에서 탄생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성전에서 주님을 만나는 것, 그게 바로 예배입니다. 누가복음 2장 28절은 예수님을 만난 시므온의 모습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이것 역시 예배의 모습입니다. 첫 번 성탄절에 주님을 만난 사람들은 모두 경배하고, 찬송하고, 영광을 돌렸습니다.
2. 성탄절 예배는 축하 예배이어야 합니다.
구약 시대에도 하나님께 경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의 경배는 예배가 아니라 <제사>입니다. 제사란 제물을 가지고 와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죄를 지은 사람이 제물을 가지고 제사장에게 와서 죄를 고백합니다. 제사장은 그를 위해 기도하고 제물을 드립니다. 그러나 그가 돌아가서 또 죄를 지으면 다시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더 이상 제사를 드리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 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속죄제물이 되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해결하셨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죄를 고백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그가 어떤 죄가 있든지 모두 용서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안에서 우리 죄는 해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약의 사람들이 했던 것처럼 소나 양을 끌고 와서 속죄의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 대신 우리는 예배를 드리게 된 것입니다. <제사와 예배의 차이>가 여기 있습니다. 제사란 깊은 죄책감에서 고통을 받으면서 행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나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죄의 용서를 받은 사람들이 기쁨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제사는 미래가 보장되지 않은 사람들이 불안한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는 또 죄를 지으면 어떻게 할까 하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배란 우리의 모든 죄가 이미 사라졌고,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빛나는 삶이 있고, 장차 영광스러운 천국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음을 확신하면서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탄절은 주님의 탄생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감격 속에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3. 성탄절 예배를 통하여 참으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우리는 예배하는 목적을 하나님을 만나는 데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데 두어야 합니다. 그것 외에 다른 목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본문에는 가짜 예배가 등장합니다. 8절에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헤롯왕은 말했습니다. <나도 가서 경배하게 하라!> 여러분, 헤롯왕이 진정한 예배자입니까? 그는 예수님을 죽이려는 사람입니다. 그는 예배자가 아닙니다. 그러나 <경배>란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건 위장된 예배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겉으로는 예배하는 듯이 보이나 엉터리 예배가 많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냥 예배하는 자를 찾는다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고 하신 것입니다. 시므온도 예수님을 만난 후 몹시 기뻐하였습니다. 목자들도 기뻐서 찬송하면서 돌아갔습니다. 박사들도 별을 보고 기뻐하고 또 기뻐했습니다. 이런 기쁨은 하나님을 만나는 데서 오는 것입니다.
결론
동방의 박사들은 그 먼 길을 왔지만, 너무도 힘들었지만, 그들의 소원을 이루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사모하던 주님을 만나 경배하였습니다.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돌아가는 박사들의 어깨는 가벼웠고, 몸놀림은 힘이 있었습니다. 기쁨과 감격이 그들을 사로잡았습니다. 매년 돌아오는 성탄절이 올 해도 돌아왔습니다. 이번 성탄절에는 참으로 이런 예배의 회복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