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목사(새소망교회)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스도인의 본분은 무엇일까” 믿음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 쯤 해봤음직한 질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을 예수님의 산상설교 속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의 산성설교 중 첫 번째 복에 관한 말씀에 이어서 하신 말씀으로 그 복을 받은 사람들의 역할과 영향력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팔복을 소유한 “너희”라 일컫는 제자들을 향하여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밝혀줌과 동시에 그리스도인의 사명이 무엇인지 밝혀주는 말씀입니다.
먼저 예수님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향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소금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잘 알다시피 소금은 짠 맛을 낼 뿐만 아니라 부패를 방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지금은 우리가 정제된 소금을 먹기 때문에 소금이 그 맛을 잃는 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씌여질 당시에는 정제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불순물의 함유량에 따라 그 가치가 정해지고 또 불순물 때문에 그 맛을 잃고 버려지는 소금이 있었던 것입니다.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13절) 이것은 당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 뿐만 아니라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경고의 메시지가 되고 있습니다. 세상에 맛을 내고 세상의 부패를 막아야 할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고 오히려 세상 속의 불순물들과 뒤엉켜 그 맛을 잃어가는 일이 절대로 없어야 함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아무리 좋은 소금이라 할지라도 그 맛을 내고 음식이 썩는 것을 막으려면 녹아져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자신을 녹이는 희생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아무리 세상을 향해 “나는 예수님 믿는 사람이다. 신앙인이다, 교회에 다닌다.”라고 외쳐도 그 안에 진정한 희생과 녹아짐이 없이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소금이 음식에 녹아지지만 소금이 사라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 음식의 맛을 변화시키고 음식이 썩는 것을 막아주는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세상 속에서 녹아지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 그리스도인들의 작은 희생 하나하나가 모일 때 세상은 더 이상 부패하지 않고 살맛나는 곳으로 변화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선한 행위를 통해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세상과 벗하여 적당히 타협하고 살면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은 “나는 참다운 천국 백성이 아닙니다.”라는 것을 드러내는 반증이 된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두 번째는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팔복을 소유한 사람들이 가져야할 정체성과 사명은 “세상의 빛”인 것입니다. 마태복음 4장 16절을 보면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빛은 예수님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빛으로 오셔서 흑암에 있는 자들에게 또한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을 비춰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빛이 되신 예수님께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을 향하여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빛은 무엇이며 무엇을 하는 것입니까? 빛은 말 그대로 사물을 보게 하고 에너지가 되며 광명, 희망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빛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물음에 대하여 먼저, 14절에는 “산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질 수 없는 것처럼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의 삶도 세상에 들어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살면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을 숨기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우리는 가끔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세상에서 숨기고 사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 때문에 하나님 영광 가릴까봐 그런다는 그럴싸한 이유를 대지만 실상은 그저 그리스도인으로 감내해야 할 수고로움과 희생을 피하고자 하는 핑계에 불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산위에 있는 동네와 같아야 합니다. 드러나야 합니다. 비록 그것 때문에 세상에서 불이익을 당하고 박해를 당한다 할지라도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다음으로 15-16절을 통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여기서 예수님은 등경위에 두는 등불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등불은 어둠을 밝히는 도구입니다. 빛은 어둠에 갇혀 있을 수 없습니다. 어둠을 몰아내고 세상을 밝히는 것이 빛의 할 일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어둠에 갇혀 있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오히려 어두움을 물리치고 세상을 밝히는 존재들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들의 정제성이며 곧 믿는 자들의 사명인 것입니다. 빛은 길을 잃은 사람들이 길을 찾도록 도와줍니다. 믿음의 사람들 역시 빛이 되어 세상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안내해 주는 길잡이가 됩니다. 어두운 세상에서 빛나는 그리스도인들, 그 빛을 바라보고 사람들이 구원의 문으로 따라오게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빛으로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의 생활에 본보기가 되어야 합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무엇이 옳은지 그런지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지 판단이 흐려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판단을 내려 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세상에 빛을 비치는 사람인 겁니다. 이 빛은 착한 행실을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참된 삶의 지표를 보여주는 역할을 함은 물론 더 나아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과거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싸움의 대상이나 상종하지 못할 죄악 된 곳으로 여겨 세상에 관심을 끊어 버리려고 할 때가 있었습니다. 물론 세상은 온갖 죄악이 들끓는 곳입니다. 하지만 그곳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이 있어야 할 곳이기도 합니다. 그토록 중요한 빛과 소금도 자신의 진가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대상이 있어야 하듯 믿음의 사람들이 그 진면목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세상입니다. 유명한 신학자 한스 큉은 “목회자들이 교회를 위하여 파송된 성직자라면 성도들은 세상을 향해서 파송된 성직자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을 통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을 향해 너희는 세상에 파송된 “빛”과 “소금”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본분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는 위로받고 은혜 받지만 세상 속에 들어가면 한쪽 눈 질끈 감고 적당해 타협해 버리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봐야 할 것은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이 아니라, 이 현실을 이겨내게 하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복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복을 받은 자들은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파송받은 자들이라는 사실입니다. ‘나는 과연 썩어져가는 세상에 소금으로 살고 있는가?’, ‘나는 과연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빛으로 살고 있는가“ 자문해 보며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사명을 다시 한 번 일깨우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