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수 목사(사랑의교회 담임)
신정도 구정도 이제 다 지났다. 우리 모두 확실하게 한 살을 더 먹었다. 성경은 나이에 대해 많이 기록하는데 본문에도 야곱은 아들 요셉의 초청으로 애굽으로 내려와 애굽왕 바로와 첫 대면을 할 때인데 바로왕은 야곱더러 “네 나이가 얼마냐?” 하고 묻는다. 야곱은 이 질문에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라고 했다. 야곱은 이후에 애굽에서 17년간을 더 살다가 147세에 생을 마감한다. 공자(孔子)는 일생을 회고하며 자신의 학문수양의 발전과정에 대해 논어에서 15세를 지학(志學:학문에 뜻을 둠)이라 했고, 20세를 약관(弱冠:성인이 됨), 30세를 이입(而立:자립함), 40세를 불혹(不惑:미혹에 빠지지 않음), 50세를 지천명(知天命:하늘에 뜻을 앎), 60세를 이순(耳順:귀로 들으면 무슨 뜻인지 저절로 알게 됨), 70세를 종심(從心:마음이 하고자 하는대로 행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게 행함)이라고 하여 인생 70을 완성의 단계로 보았던 것이다. 본문에 바로가 야곱에게 묻되 “네 나이가 얼마냐?”하고 묻는 이 물음은 오늘 내가 내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할 질문이요. 하나님께서 오늘 내게 물어 오시는 말씀으로 받고 그 말씀의 의미를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느냐?
일찍이 야곱은 쌍둥이 형제 가운데 동생으로 태어났다. 옛 이스라엘의 풍습은 맏아들이 상속권과 축복권을 가지게 된다. 야곱은 둘째 아들로 태어났기 때문에 축복권도 상속권도 가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야곱은 형에게 팥죽 한 그릇을 팔아 장자의 명분을 얻었고 눈이 어두운 아버지를 속여 축복을 쟁취했다. 이 일로 인하여 그는 집을 떠나야 했고 평생 길고 긴 세월을 나그네로 살아가야만 했다. 아버지를 속이고 출발한 야곱은 아들들로부터 끔찍한 속임을 당했다. 그토록 사랑했던 아들 요셉이 사나운 짐승의 밥이 되어 죽었다는 거짓 소식을 듣고서 야곱은 피묻은 옷자락을 부둥켜안고 울고 또 울었다. 아버지를 속이는 시간은 잠시 잠깐이었고 금방 모든 것이 들통 났으나 자식들로부터 속임을 당한 시간은 무려 20년을 넘게 속아왔다. 멀쩡하게 살아있는 아들을 죽은 줄로만 알고 20년 세월을 눈물로 살아야 했다. 사랑하는 여인을 얻기 위해 7년 세월 고생하여 하룻밤을 자고나서 보니 신부가 바뀌었다. 삼촌으로부터 속았다. 그는 속이면서 출발했으나 사실은 평생 수없이 속으면서 살아왔다. 누구도 믿을 수 없는 고독한 인생을 살아왔다. 형과의 싸움을 선언한 야곱은 외삼촌짐으로 피신해 왔으나 삼촌 라반과의 괴로운 암투로 나날을 보내야 했다. 억지로 빼앗은 축복이 평안할 수가 없었다. 딸 디나의 수모를 목격해야 했다. 아들들이 살인하는 모습을 보아야 했다. 맏아들 르우벤의 서모 간통, 사랑하는 아내 라헬의 죽음등... 참으로 험하고 파란만장한 인생길을 걸어왔다. 그러던 어느 인생 말년, 죽은 줄로 알았던 요셉이 살아 있고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어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야곱은 서둘러 70인 권속을 거느리고 애굽 땅으로 달려갔다. 아들 요셉은 흉년 가운데 고생하며 백발이 된 아버지를 보고서 무릎에 매달려 통곡했고 아버지 야곱도 아들 요셉을 만난 감격에 흐느껴 울었다. 요셉은 아버지를 바로 왕 앞에 모셔 “이 분이 저의 부친이옵니다”라고 소개를 했다. 이때 아마 야곱의 얼굴에 산전수전을 겪어온 인생자국이 거칠게 자리 잡고 있었을 것이다. 대뜸 바로 왕이 야곱에게 묻기를 “그대의 나이가 얼마뇨”라고 물은 것이다. 그때 야곱이 대답하기를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130년, 나의 나이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들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내 나름대로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라고 했다. 하나님께서는 욕심쟁이 야곱을 그동안 험악한 세월 속에서 연단하심으로 욕심아래 있던 야곱이 하나님의 은혜 아래로 들어오게 하신 것이다. 이 사실은 노년의 야곱의 고백을 통하여 알 수 있다.그렇게 욕심 많은 야곱이 베냐민을 애굽으로 보내며 한 고백을 보아 알 수 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창43:14) 모든 것을 전능자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신앙인으로 변한 것이다.
그리스 한 도시에 조각가 뤼지푸스(Lysippus)가 만들었다고 하는 동상이 하나 서 있다고 한다. 이 동상은 발밑에 날렵한 날개가 달려 있었으며 앞머리는 풍성한데 뒤는 말쑥한 대머리다. 이 동상 밑에 이런 문답이 새겨져 있다. “그대 이름이 무엇인가?” “내 이름은 시간.” “왜 그대는 발밑에 날개를 달고 있는가?” “빨리 날아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앞머리는 왜 그토록 풍성한가?” “내가 다가갈 때엔 누구나 붙들 수 있도록.” “왜 뒷머리는 대머리인가?” “내가 떠나고 나면 아무도 날 붙들 수 없도록.” 이것이 바로 “시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 격언 가운데 “시간은 그 앞머리로 잡아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그렇다. 얼마 못되는 나그네 인생길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으나 신속히 지나간다. 그 누가 지나간 시간을 붙들 수 있으며 놓친 시간을 다시 잡을 수 있겠는가? 지금이라도 빨리 모든 욕심을 내려놓자. 그리고 “오직 은혜”로 살아갈 것을 다짐하자.
땅위의 생이 얼마쯤 남았느냐?
바로 왕의 질문은 앞으로 너의 생이 얼마쯤 남았으며 어떻게 살고 싶은가를 묻는 질문이다. 사람은 나이마다 발달과정이 다르다. 태아와 유아,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거쳐 성인에 이른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성숙해진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나이에 걸맞게 행동, 품행, 인품을 지녀야 한다. 고전 13: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시편 92:12-14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하리로다. 이는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뜰 안에서 번성하리로다 그는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니” 모든 생명체의 발육은 정말 중요하다. 발육이 안 되면 미숙아가 된다. 신앙은 더욱 그러하다. 주님은 우리의 신앙이 더욱 성장하고 성숙되기를 원하신다. 신앙의 성숙은 성도의 의무이다. 육체는 청년기를 거치면서 성장이 멈추지만 영적 성장은 주님을 만나는 순간까지 계속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누구에게나 그 나이에 맞는 분명한 역할과 사명이 있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고집스러움과 편견의 틀에 자신을 가두기보다는 포용하고 받아들이는 새로운 모습으로 살아야 하겠다. 나이가 들면 왕년 병에 걸리기 쉽다. 왕년에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데 하면서 남을 포용하지 못하고 모든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고 쉽게 서운해 하고 쉽게 현재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세상에 대한 불편한 마음을 드러내기 일수이다.
세월은 광음과 같이 빨리 지나 간다. 미국의 에담스 대통령이 노년에 지팡이를 짚고 언덕을 오르다가 숨이 차서 지팡이를 허리에 대고 나뭇가지에 몸을 기댄 채 쉬고 있었다. 지나가던 청년들이 전직 대통령을 알아보고 “폐하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를 했다. 그때 에담스 대통령이 청년들에게 들려준 유명한 얘기가 있다. “이보게 젊은이들, 내가 안녕치를 못하네. 내 장막집이 무너지려고 해서 이사갈 준비를 한다네” “아니 폐하 폐하의 집이 무너져 이사를 가다니요?” “자네가 보다시피 내 집은 낡아서 지붕이 다 벗겨져 버렸고, 창은 낡아서 다 찢어지고, 기둥은 흔들거려 언덕을 오를 수 없고, 들보는 굽고, 쓰러지기 일보직전이라네.” 당황해하는 젊은이들에게 다시 얘기를 한다. “이보게 내 지붕을 보게나. 머리카락이 몇 개나 남았나. 내 눈이 창문인데 앞이 보이지 않아. 안경을 써도 이제는 더듬거리며 좁은 길을 가야 한다네. 내 인생의 기둥은 두 다리일텐데 이것이 흔들거려 내가 길을 걸을 수가 없어. 들보는 내 허리인데 쇠하여 구부러 졌어. 이 장막 집이 무너지면 저 세상으로 이사가야 할 것 아닌가? 이사할 준비를 하고 있다네.” 솔로몬은 전도서 12:1-2절에서 “젊을 때에 너는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고생스러운 날들이 오고, 사는 것이 즐겁지 않다고 할 나이가 되기 전에,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두워지기 전에, 먹구름이 곧 비를 몰고 오기 전에, 그렇게 하여라”
“네 나이가 얼마냐” 이 질문이 앞으로 네가 어떻게 살 것이냐를 묻는 질문이라면 우리는 정확하게 대답해야 한다. 지금까지 그렇다 치고 이제부터 분명한 인생의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시편 90편 12절에 “우리에게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라고 했다. 내 나이가 얼마인가를 생각할 때마다 인간은 지혜의 마음을 얻게 된다. 이제는 우리는 남은 생을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가까운 사람들을 속이고 또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며 썩을 것을 위해 살지 말고 영원한 가치관, 하늘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야 하겠다. 세상은 죄악으로 그 어느 때보다 어두워져가고 있다. 이때에 우리는 육체의 남은 때를 오직 하나님 영광을 위하여 아름답게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