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용주 목사(봉헤치로 제일교회 담임)
섭정 파라미르
파라미르의 자기 부인이 잘 나타나는 두 번째 부분은, 자기 아버지 데네소르의 무모한 결정으로 나간 전투에서 부상을 입은 그를 치유하는 아라고른의 부름에 응했을 때이다. 아라고른은 그의 병세를 ‘탈진과 아버지의 현 상태에 대한 슬픔, 그리고 부상과 암흑의 입김이 다 합쳐진 것 같다’고 진단했다. 그래서 일명 ‘왕의 풀’이라고 불리는 아셀라스를 비벼 끓는 물에 넣고 병에 담아 파라미르의 얼굴 아래 갖다 댔다.
갑자기 파라미르가 몸을 움직이며 눈을 뜨고 그 위에 몸을 숙이고 있는 아라고른을 보았다. 그러자 그를 알아본 듯한 표정과 그에 대한 사랑이 눈에 어렸다. 그는 조용히 말했다.
“주군, 주군께서 절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왔습니다. 왕께서 내리실 명령은 무엇입니까?”
“더 이상 어둠 속을 헤매지 말고 이제 깨어나라! 그대는 지쳤으니 이제 좀 쉬고 음식을 든 후에 내가 돌아올 때를 준비하고 있으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주군. 이미 왕께서 돌아오셨는데 누가 게을리 누워만 있겠습니까?” (『반지의 제왕』 제 5권 260-261쪽)
그는 데네소르와 다르게, 자신이 섭정이며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직책이나 상황을 내세우지 않고, 아라고른이 왕이라는 것을 알아보자 마자 곧 일어나 그를 섬기려고 하였다. 이제 파라미르가 완전히 치유된 후, 그리고 아라고른과 서부 동맹군이 승리를 거두고 미나스 티리스로 돌아왔을 때, 그의 자기부인이 다시 한 번 빛을 발한다.
파라미르는 거기 모여든 사람들 가운데 아라고른과 마주했다. 그러고는 아라고른 앞에 무릎을 꿇고 말했다.
“곤도르의 마지막 섭정이 임무를 사직할 것을 청합니다(『반지의 제왕』 제 6권 155-156쪽).”
그는 왕이 돌아오면 섭정이 사직한다는 의무에 충실했다. 자신의 지위를 잃게 된다든가, 또는 새로 시작되는 왕의 정부에 중용되지 못한다든가 하는 망설임 따위는 일절 없었다. 왕께서 다스리신다. 다른 모든 것은 그분의 처분에 맡긴다. 이것이 시종일관 그의 삶의 태도였다.
프로도의 마지막 길
이 모든 일이 일어나는 동안, 절대반지를 운반하기로 자임한 프로도와 샘은 어디쯤 가고 있었을까? 그들은 파라미르와 만난 후, 골룸의 길 안내를 받아 악마 사우론이 다스리는 암흑의 땅 모르도르로 진입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모르도르의 암흑 성문으로 들어가려고 했는데, 그것이 쉽지 않자 이번에는 ‘어둠의 탑’인 미나스 모르굴 부근의 긴 계단을 통해서 잠입을 시도했다. 그런데 계단들은 거대한 거미 쉴롭이 도사리고 있는 동굴로 이어졌다. 골룸은 영악하게도, 프로도와 샘이 쉴롭에게 잡아 먹히면, 자기는 그들에게 직접 손도 대지 않고 절대반지를 차지할 속셈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