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동순 권사(배우리한글학교장, 연합교회)
9월이면 다섯 살이 되는 쌍둥이 손자가 있다. 우리 가족에 큰 기쁨이고 팔불출 자랑이기도 한 이 애기들이 학교에 들어갔다. 오고 가는 등하교 길에 거의 매일 애벌래 무리들을 만난다. 이들은 벽이나 혹은 나무에 붙어 기어오르기도 하고 잠자듯 조용히 그 자리에 머물기도 하는 애벌레들이다. 어느 날, 그냥 그대로의 모습이어야 하는 애벌레들이 없어졌다고 울먹이며 속상해 한다. ‘얘들아 애벌레는 더 나은 세상을 향해 나비가 되어 날아간 거야’ 알아듣지 못할 걸 알면서도 나만의 세계에서 혼자 말로 중얼거렸다.
한 해가 시작된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사분이 일이 지나가고 있다. 또 한 번 다짐하고 새해를 맞이하며 뚜렷한 목표는 없어도 그저 살아가는 일에 충실하다 보면 그게 유익한 삶이겠지 하면서 쉬는 것이 마치 죄를 짓는 것 같아 한 시도 몸을 가만두지 못하고 있다.
오래 전에 읽었던 [꽃들에게 희망을]이 떠올랐다. 어쩌면 애벌레를 신기해하고 그들의 행보를 궁금해하는 손자 녀석들의 궁금증이 글을 쓰게 된 동기를 부여했는지도 모른다. 언뜻 보면 동화책 같은 소설이지만 주는 메시지는 강렬하다. 애벌레들의 얘기다. 더 나은 삶을 꿈꾸는 호랑 애벌레가 수많은 애벌레들이 뒤엉켜 쌓아 올린 애벌레 기둥을 발견하고 이유도 목적도 없이 기를 쓰고 그 기둥에 올라가길 멈추지 않는다. 문제는 기둥을 오르려면 다른 애벌레들을 밟고 올라가야 한다. 아니면 또 다른 뒤의 행렬에 자기가 밟히기 때문이다. 힘겹게 막상 오르고 보니 사실상 최후의 그 꼭대기에는 아무 것도 없다. 그 곳의 광경에 실망을 하고 호랑 애벌레는 추락한다.
남이 오르면 나도 못 오를 일이 없다고 경쟁하고 무너뜨려 버리려는 신개념 주의의 현 세대의 실상을 애벌레를 통해 작가는 고발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있다고 보인다. 이게 끝은 아니다. 호랑 애벌레는 사랑하는 노랑 애벌레와 함께 기둥에서 내려와 각각 고치를 만들고 들어가 마침내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나비들이 된다. 독자들에게 새로운 세계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계속되는 전쟁의 위기 속에 수많은 자연 재해의 소식이 한 몫을 더해 세상은 불안하다. 어쩌면 이런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무언가를 향해 돌진하고 싶은 욕망이 우리 모두에게 있는 건 아닐까? 그러니 남이 하는 일에 한 번 도전해 보고싶고 다행히 그 일이 잘 되기 위해서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으니 거짓이 동반된다. 그 거짓도 먹히는 이 세상이 참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우리 모두는 알게 모르게 속이고 또 속는다.
오늘도 어김없이 하교 길에 애벌레 둥지를 지나야 한다. 오늘도 물으면 어떻게 말하지? “할머니. 애벌레가 나비가 되어 없더졌떠요(없어졌어요)” 와우! 그림책에 애벌레가 나비가 되어 날아가는 글을 읽어 준 일을 기억하는 구나!...... 더 나은 세상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