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용주 목사(봉헤치로 제일교회 담임)

 1. 나팔산성 전투

 세오덴은 헬름 협곡의 나팔산성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 자신의 공이 아니었다. 그가 죽음을 각오하고 말을 달리며 적들 앞에 나타났을 때, 그의 오른편에는 『반지의 제왕』 세계관의 메시아 중 한 명인 엘렌딜의 후계자 아라고른이 함께 있었다. 톨킨은 이 모습을, “하늘에 빛이 번지며 밤이 물러갔다”는 간략하고 감동적인 문장으로 묘사했다. “세오덴 왕과 그의 동지들은 쉴 새 없이 말을 달렸다. 그들 앞에선 적의 대장이나 병사를 가릴 것 없이 모조리 쓰러지거나 도주했다(『반지의 제왕』 제 3권 7장 288쪽).” 

 그러나 세오덴에게는 아라고른의 도움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산등성이 위로 흰 옷을 입은 기사 한 사람이 떠오르는 태양 아래 반짝이며 나타났다... 튼튼한 발걸음으로 산 속을 달리는 사슴처럼 샤두팍스가 내려왔다. 백색의 기사의 위용에 적은 공포로 미쳐버린 듯했다... 거센 바람에 몰린 검은 연기처럼 그들은 달아났다. (...) 에오메르는... 간달프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또 한번 당신은 위급한 순간에 예기치 않게 와 주셨군요.’ ‘예기치 않았다고? 하지만 난 당신들을 이곳에서 다시 만날 것이라고 말했었소.’ (『반지의 제왕』 제 3권 7장 289-292쪽).” 그렇다. 세오덴은 『반지의 제왕』 세계관의 메시아 중 다른 한 명인 ‘백색의 기사’ 간달프의 ‘예기치 않은 도움’도 받았던 것이었다. 

 이 ‘나팔산성 대첩’을 통하여, 톨킨은 우리 삶의 여정에서 경험하는 모든 ‘대승’은 우리 자신의 힘에 있지 않고, 반드시 메시아의 구원에 있음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자기를 부인하고, 승패나 생존을 생각하지 않고, 오직 당장 직면한 일에 성실하게 임하는 것이, 비록 우리 눈에는 무의미하게 보이지만, 바로 그것이야말로 구세주가 바라는 태도이며, 생각지도 못한 큰 도움이 임하는 순간이며, 대승을 거두게 되는 지점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성경이 일관적으로 우리에게 보여주는 역설이다.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8-10).”  

 2. 선파국(eucatastrophe)

 이러한 급진적이고도 역설적인 반전은 톨킨 및 기독교 소설에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개념이다. 성경,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복음이 그렇기 때문이다. ‘파국(catastrophe)’이란 급진적이고도 거대한 멸망을 지칭하는 단어이다. 그래서 모든 파국은 ‘악파국’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영문학자이자 언어학자인 톨킨은 이 단어 앞에 ‘선(eu-)’를 붙여서 ‘선파국(eucatastrophe)’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이것은 오늘날까지도 급진적인 나쁜 결말과 동일한 강도를 가진, 그러나 선한 또는 행복한 결말을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된다. 

 에덴 동산에서의 타락과 구약 이스라엘 백성의 실패는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의 파국적 멸망을 필연적으로 예상하게 한다. 하나님의 큰 일은 실패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으로 상쇄되어, 오히려 파국적 멸망이 패망하고, 파국적인 선한 결말이 도출된다. 

 그래서 이것을 복음이라고 한다. 이보다 더 큰 ‘행복한 소식’이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