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환의 추억여행)낭만과 학문의 도시 하이델베르크
2021/09/16 08:43 입력  |  조회수 :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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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역사를 간단하게 훑어보자. 오래전 로마 제국의 몰락으로 프랑크 제국이 선포되었고 신성로마제국으로 번영을 이루다 13세기에 합스부르크가의 지배하에 놓이게 된다. 그 후 신구교의 대립으로 발발한 ‘30년 전쟁’으로 국가가 전쟁터로 변하고 인구의 1/3이 사망하는 참극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던 독일. 그러나 그 와중에서 러시아, 폴란드를 침략해 동쪽으로 영토를 확장하는데 성공했고 나폴레옹 침략 이후 빈 회의에서 35개의 연방으로 이루어진 제국이 탄생했다. 그리고 1866년 비스마르크가 오스트리아를 침략하면서 독일 통합이 시작되었다. 프랑스 전쟁에서 이긴 후 곧바로 프로이센의 빌헬름 1세가 황제로 등극하자마자 제1차 세계 대전으로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하고 국가가 휘청댔다. 그 후 히틀러가 등장하면서 독일의 운명은 삽시간에 바뀌고 연합국의 서독, 러시아의 동독으로 나라가 쪼개지면서 나락의 길로 빠져들지만 1990년 10월 3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통일과 더불어 독일은 다시 세계를 향해 전진하는 계기를 맞게 되었다. 그 독일의 유서 깊은 도시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 하나가 하이델베르크(Heidelberg). 라인 강의 지류인 네카르 강변에 형성된 대학 도시이자 관광도시다. 인구는 약 15만. 1386년에 창설되었다는 하이델베르크 대학으로 유명하고 아름다운 고성(古城), 하이델베르크 성 때문에 유럽의 주요 관광 도시 중 하나로 꼽힌다. 우리 크리스천 위클리가 2004년에 처음 시작한 유럽 종교개혁발상지 문화여행을 시작한 후 하이델베르크는 그후 빼놓지 않고 방문하는 도시중 하나가 되었다. 보통 영국을 거쳐 도버해협을 건너 파리에 도착하면 파리의 역사적 유적을 둘러본 후 금방 향하는 곳이 스위스 제네바다. 제네바는 칼빈의 활동무대였기 때문이다. 제네바를 거쳐 가는 곳이 취리히다. 칼빈보다 앞서 스위스 종교개혁을 시도했던 츠빙글리가 거기 살았다. 그로스뮌스터 교회당을 둘러보며 그의 생애를 살핀다. 그리고 샤갈의 스테인드글라스로 유명한 프라우뮌스터를 둘러본 후 독일로 들어간다. ‘종교개혁의 심장’이랄 수 있는 비텐베르크를 방문하기 전에 마틴 루터가 ‘종교재판’을 받았던 곳으로 유명한 보름스로 향하다 보면 만나는 도시가 바로 하이델베르크다.

 독일의 한 시인은 ‘하이델베르크’라는 송가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고 한다. “오래전부터 난 너 하이델베르크를 사랑하고 있노라/ 기꺼이 그대를 어머니라 부르며 끊임없이 노래를 바치고 싶노라/그대, 내가 아는 한/ 조국의 가장 아름다운 도시여.”

 2차 대전 당시 연합군의 폭격기도 이 도시의 아름다움에 폭격을 포기했다는 일화를 가진 하이델베르크의 랜드마크는 ‘고성(古城)’이다. 다소 파괴는 되어 있어도 지금까지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있는 성이다.

 이 성은 13세기경에 처음 건축되었으나 라인 선제후의 거성으로 사용하면서 확장했기 때문에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등 각 시대의 양식이 뒤섞여 지금의 아름다운 모습을 만들어 냈다. 이 고성은 독일 낭만주의의 상징이며 하이델베르크 관광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다. 현재의 건물은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사이에 벌어진 30년 전쟁 때 프랑스 군대가 이 성을 점령하고 파괴한 후의 모습 그대로라고 한다. 석양에 이 고성에서 하이델베르크 시내를 바라보는 것은 낭만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이 고성의 지하 와인 저장고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술통이 있다. 이 술통은 130그루의 떡갈나무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길이가 8m, 폭이 7m, 저장 용량은 무려 22만 리터라고 한다. 이 술통은 기네스 북에 등재되어 이곳의 관광자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 성에서는 유명한 여름 축제가 열린다. 남부 독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야외 페스티벌 중의 하나로서 1926년에 처음 시작되었다고 한다. 고성 밑으로 내려오면 고풍스럽고 빨간 지붕으로 뒤덮인 구시가지가 나온다. 시민들의 고급스런 주택, 많은 카페 그리고 크고 작은 상점들이 도시의 낭만을 더해 준다. 하이델베르크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으로 알려진 마르크트 광장에는 1718년에 제작된 성모 마리아상이 분수를 장식하는 조각으로 서 있다.

 또 영화 ‘황태자의 첫사랑(The Student Prince)’에 나오는 카페 ‘붉은 황소’도 유명하다. 사실은 이 영화 때문에 하이델베르크는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황태자의 첫사랑은 독일의 ‘빌헬름 마이어 페르스터’가 1899년 자신이 직접 쓴 ‘카를 하인리히(Old Heidelberg)’를 1901년 각색하여 만든 희곡이다. 주인공인 황태자 칼 하인리히가 하이델베르크에 유학을 하면서 머문 여관의 하녀 캐티와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의 희곡으로 하이델베르크의 대학 생활을 잘 묘사하고 있다. 사랑에 빠진 황태자가 왕의 병환으로 고국으로 돌아가야 했고 왕위를 물려받은 칼과 평민인 캐티의 신분 차이는 그들의 사랑을 가로막는다는 슬픈 이야기. 이후 1954년에는 ‘The Student Prince’라는 제목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학사주점이 바로 ‘로텐 옥센’으로 지금까지 유명한 카페로 남아있다. 마리오란자가 부르는 “드링크, 드링크, 드링크”란 노래로도 널리 알려진 이 카페는 옛날 괴테도 자주 들렸던 곳이라고 한다.

 고성에서 바라보이는 가장 아름다운 다리가 카를 테오도르 다리. 네카강에 놓여 있는 가장 오래된 다리로서 다리 위에는 이 다리를 만든 테오도르 상과 여신 아테나상이 있다. 다리에서 바라보는 하이델베르크 성과 구시가지의 모습이 아름다워 사진 찍기에 좋은 곳이다. 그리고 다리의 상징인 원숭이 동상(얼핏보면 고양이 같다)의 원반부분을 만지면 행운이 온다하여 많은 관광객들은 원반을 만지며 사진을 찍기도 한다. 미국작가 마크 트웨인은 보트를 타고 네카 강을 통해 이 성에 도착했는데 그 경험이 그의 유명한 소설 ‘허클베리 핀’의 바탕이 되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현재 3만 명의 학생들이 재학하고 있는 루프레히트 카를 하이델베르크 대학교는 현재 독일 연방 공화국에서 가장 오랜 대학이다. 이 대학은 체코 프라하에 있는 카렐 대학교와 빈 대학교 다음으로, 신성로마제국의 알프스 산맥 북쪽에서는 3번째로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있는 대학이다. 1385년 10월 하이델베르크는 교황 우르바노 6세로부터 대학을 설립할 특권을 얻었으며 1386년 팔츠 선제후였던 루프레히트 1세에 의해서 설립된 이후 수세기에 걸쳐 4개의 학부, 즉 신학, 법학, 의학, 철학부로 구성되어 있었다. 1890년에 자연과학부가 5번째 학과로 처음으로 독립하여 추가되었고 그 후 2002년에 학교가 크게 개편되면서 지금의 12학부가 있다고 한다.

 독일의 시성이라고 불리는 괴테, 마크 트웨인, 임마누엘 칸트, 헤겔, 칼 야스퍼스, 막스 베버 등 수많은 인류의 거목들이 이 대학에서 교수 또는 학생으로 호흡했다. 칸트와 헤겔이 즐겨 산책했다는 네카강 너머 ‘철학자의 길’ 또한 하이델베르크의 자랑이다. 60세의 괴테는 30대의 마리안느와 사랑에 빠져 이 도시에서 사랑과 낭만을 노래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 도시는 또 개혁교회의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서’가 탄생된 도시이기도 하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은 칼빈주의 교리를 가르치기 위해 문답식으로 작성된 기독교 신앙고백이다.

 개혁 신앙의 기초적인 뼈대를 이루는 신조 중 하나가 이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인데 ‘벨직 신앙고백서’와 ‘도르트 신조’와 함께 개혁교회의 3대 신앙고백문서로 알려져 있다.

이들 고백서들은 종교 개혁 이후 로마 캐톨릭교회의 악랄한 박해 중에도 용기있게 고백되어졌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특히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서는 무시무시한 가톨릭교회의 칼날을 피해 신앙을 보존하고 또 세상을 향해서 공개적으로 이 고백을 드러낼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고백되었다는 점에서 유명한 신앙고백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금까지도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은 장로교 성서공부를 위한 중요한 문서 또는 교재로 사용되고 있다.

 

조명환 목사(크리스천위클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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