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길에서)편지
2021/05/13 21:39 입력  |  조회수 :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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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순 권사(배우리한글학교장, 연합교회)

 

‘무슨 글을 쓸 것인가’ 글쟁이들의 공통적인 즐거운 고민은 생각하는 시점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이미 대단한 지식인들이 연구해 놓은 학문에 관해 공부하여 남을 가르치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지식이란 것이 금방 변하는 것도 아니니까, 계획 되어진 과정에 따라 부지런히 정리만하면 그럴싸한 학습자료가 완성되고 게다가 언변을 적당히 섞어 분위기를 살리게 되면 나름 재미있게 수업을 이끌어 가는 명강의가 되기도 하고요. 단지 문제가 있다면, 지식이나 학식적으로 정해진 과정에 따라 억지로 문학을 읽으며 감상하고, 분석하고, 이해하라고, 우겨대는 교육자의 의무와 같은 일과 때문에, 피교육자의 감정들이 때때로 무시하게 되는 일입니다. 직접 글을 써서 가르치는 일이라면 쉬울지 모르겠으나 나 아닌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읽고 작가의 의도나 목적을 알아야 하는 것이 작품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윽박지르니 때론 문학이 부담스러운 학문이 되는 것입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누구나 쉽게 접근하는 글을 써 보게 되면 작가의 흉내를 조금이나마 낼 수 있게 되어 문학의 접근이 조금은 쉬워집니다. 함부로 남에게 공개하고 싶지 않은 글이라면 써야 할 필요도 없겠지만 그래도  마음 속에 그냥 간직하기보다는내 사정과 처지를 공개하듯 누군가에게 털어 놓아 그저 내 마음을 고스란히 전하고 싶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 때에 쓰는 글이 바로 편지입니다. 편지는 특별한  형식이나 기술, 격식을 굳이 갖출 필요도 없고 미화시키려고 애쓰지 않아도 마음이 전달되어지는 글입니다. 편지를 쓰겠다는 결심을 하고나니 고민이 금방 해결됩니다.
 세상이 많이, 정말 많이 달라져 편지라는 것이 필요없다고 할 만큼 그 소용가치를 잃었가고 있습니다. 우선 개개인의 특별한 글씨체가 빌어먹을, 전자 활자로 붕어빵 찍어내듯 누구나 똑 같게 되니 필체를 보며 상대를 생각하는 마음이 없어 정겹지 않습니다. 날잡아 우체국을 들려야하는 수고 대신, 전자파의 도움으로 즉석에서 배달되니 목 빼고 소식을 기다리는 안타까움이 없게됩니다. 방안 가득 쓰다가 찢어버리는 휴지 조각도 물론 없습니다. 편리함 속에 진정한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기는 일인 것 같아 씁쓸합니다. 그래도 위로가 된다면 마음을 전하는 대상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 다행이라 여깁니다.  
 편지는 낭만이 서려있지요. 표현하기 어려운 말을 글로 대신하며 편지를 쓰고 보내고...... 언제 답장이 오려나 기다리는 마음까지도 다 포함되어 마음을 들뜨게 합니다. 내용을 압축하여 간결하고 명료하게, 함축적인 의미를 넣거나 감정을 쏟아부어 운율까지 넣는다면 편지는 훌륭한 시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편지는 문학과 같은 낭만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황동규 시인의 ‘즐거운 편지’는  서간문의 형식으로 쓰여진 시인데 제목이 그래서인지 시를 읽는다는 느낌보다 편지를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더 듭니다.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그리움과 기다림이 담긴 적막하고 쓸쓸한 내면풍경이 담겨있는 시인의 남다른 개성이 엿보이는 시입니다. 그래도 ‘시’이니까 분석해야 한다면서, 연과 행이 있고 내면에 숨겨진 함축적인 의미와 상징을 알고 운율이 어딘가에 있다며 찾아보라고 하는...... 이런 것들을 갖다 대며 분석하지 않아도 되는 좋은 시입니다. 편지 같아서 그냥 좋은 것입니다.
 오로지 한 사람만을 위하여 지우고 또 쓰기를 여러번, 갈고 다듬어 시보다 더 아름답고 곱게 쓰여진 글. 쓰는 이도 받는 이도 읽고 또 읽으며 밤을 새어도 정겹기만 한 글, 편지라는 이름입니다. 아직도 글을 써서 보내고 싶은 누군가가 있다면 행복한 사람입니다. 글을 쓸 수 있다는 마음의 여유가 있다면 더욱 행복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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