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문학 산책)이청준의 “병신과 머저리”
2019/09/12 21:32 입력  |  조회수 :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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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광 목사(World Share USA)
 
‘나’는 화실을 운영하며 아이들을 가르치는 화가입니다. 나에게는 의사인 형이 있습니다. 형은 최근 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 형의 소설을 몰래 훔쳐본 뒤로 내 맘이 복잡합니다. 형이 소설을 쓰게 된 계기는 형이 수술한 소녀의 죽음입니다. 회복 가능성이 거의 없는 소녀를 수술했는데 소녀가 죽었습니다. 형은 충격으로 병원 문을 닫고 폭음하며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나는 형이 소설 쓰는 것을 의아하게 여기며 형의 소설이 궁금해 매일 형의 소설을 훔쳐봅니다. 형은 6.25에 참전했다가 강계 근방에서 패잔병이 된 적이 있습니다. 언젠가 술에 취한 형이 그 당시 전투에서 패배해 동료를 죽이고 탈출했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형은 그 경험을 소설로 쓰다가 중간에 멈춰 있었습니다. 소설은 6.25 직전 부대 생활로 시작했고, 소설에 “나”는 나의 형님입니다.

 “나”는 의무병이다. 우리 부대에는 ‘오관모’라는 성격이 괴팍한 이등중사가 있었다. 어느 날 부대에 ‘김일병’이 전입 온다. 김일병은 아주 유순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관모는 툭하면 김일병을 때린다. 그러나 김일병은 전혀 반항하지 않고 그 학대를 꿋꿋이 견딘다. 때리는 관모는 땀을 뻘뻘 흘리는데 맞는 김일병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매를 맞았다. 

 그런 와중에 6.25가 터지고 갑작스러운 중공군 개입으로 부대는 후퇴하고 나는 낙오병이 되었다. 피신처를 찾다 전쟁 통에 오른팔을 잃은 김일병을 만나, 동굴을 발견하고 반가워하며 동굴에 들어가려는데 관모가 있었다. 우연히도 그 동굴에 관모가 피신해 있었다. 우리 셋은 동굴에서 안전해 질 때까지 버티기로 작정했다. 부상당한 김일병을 두고 나와 관모는 마을에 내려가 식량을 구한다. 전쟁 통에 식량 구하기가 쉽지 않고 식량이 점점 떨어지면서 관모는 불안해하며 김일병을 없애야 함을 넌지시 말한다. 관모는 첫눈이 오면 김일병을 없앤다고 말한다.

 첫눈이 오는 날 관모가 없을 때 ‘나’는 김일병에게 절규하듯 말했다. ‘김일병! 눈이 오고 있어!’ 김일병 눈을 들여다보니 김일병의 눈이 휑했다. 간간이 깜빡이는 눈이 그가 살아있다는 유일한 증거였다. 그런데 김일병의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나는 이제 ‘김일병이 죽어도 좋다’라고 생각했다.
 형은 여기까지 쓰고 더 이상 쓰지 않았습니다. 나는 수시로 형의 소설 원고를 보지만 더 이상의 진전이 없었습니다. 관모는 여전히 산 아래 있었고 김일병은 형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것을 본 나(동생)는 결말이 궁금해 그림을 그리지 못합니다. 화폭 앞에서 형의 소설만 생각합니다.

 그즈음 예전에 나의 화실에서 나를 보조하며 아이들을 가르치던 혜인이 결혼을 통보해와 마음이 더 심란합니다. 그녀를 사랑했고 그녀와 입도 맞추며 애인으로 지냈지만 나의 소극적 태도에 실망해 떠났고, 어느 의사와 결혼한다고 청첩장을 보낸 것입니다. 나는 이래저래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형 원고를 들고 내 방에 들어가 형 소설을 다음과 같이 결말짓습니다.

 ‘점점 생명의 가망성이 없어지는 김일병과 식량의 부족 때문에 불안해하는 관모 사이에서 갈등하던 내가 김일병을 죽였다. 관모가 돌아오기 전에 김일병을 끌고 동굴로 나와 쏘아 버렸다.’ 형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형의 소설을 이렇게 결말지었습니다.
 형수가 형님이 다시 병원문을 열고 진료를 시작하게 될 것이라고 말해 줍니다. 이 소식을 듣고 나는 형의 방에 들어가 형의 소설 원고를 살펴봅니다. 형은 그 후 내가 쓴 결말은 지우고 자신이 스스로 쓴 내용으로 마무리 지었습니다. 형이 결말짓는 소설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김일병 상처는 점점 나빠진다. 그런데 첫 눈이 내리는 날 관모는 김일병을 끌고 나간다. 나는 만류를 했지만 관모의 독살스러운 눈길에 고개를 떨어뜨리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곧 총소리가 들렸고 정신을 차린 나는 총소리 나는 쪽으로 달려갔다. 총으로 위협하며 만류하는 관모를 총으로 쐈다.’

 소설을 결말지은 형은 다시 병원으로 복귀하여 일을 시작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형은 또다시 술에 취해 원고를 찢어서 불태워 버립니다. 그리고 나에게 와서 자신이 관모를 죽인 줄 알았는데 결혼식에서 그를 만나 놀랐는데 자신을 보고 관모가 놀라더라는 둥 이상한 말을 했습니다. 이런 형의 말을 들으면서 형의 아픔이 느껴져 나도 아팠습니다.

 이상은 이청준이 1966년에 발표한 “병신과 머저리”라는 소설을 거칠게 정리한 것입니다. 1965년 ‘사상계’ 신인문학상에 단편 “퇴원”으로 등단하였습니다. 그는 2008년 폐암으로 타계하기까지 지속적인 작품을 쓰서 10여 편의 장편을 포함해 100여 편의 작품들을 발표했습니다. 현대소설사에서 뛰어난 지성적인 작가로 인정받는 이청준은 그의 소설에서 정치·사회적인 메커니즘과 그 횡포에 대한 저항과 고뇌를 형상화하였습니다. 또 인간 사회의 상처와 아픔의 치유와 승화를 그린 작품들을 남겼습니다.

 ‘병신과 머저리’라는 작품은 이야기 속에 이야기를 삽입한 액자 소설입니다. 이 작품에서 ‘병신’은 6.25의 상처로 실존적 방황을 하는 형을 말하고, ‘머저리’는 구체적 체험 없이 관념적 혼돈을 보이는 전후세대 동생을 말합니다. 의사인 형은 자신의 상처를 이해하고 소설 쓰기를 통해 능동적으로 대처하지만 동생은 자신의 문제의 근원도 모른 채 무기력하게 살아갑니다. 

 소설 “병신과 머저리”는 치유 받지 못한 상처를 갖고 갈등하는 사람들을 그리고 있습니다. 치유된 상처는 은사(恩賜)가 되고 실력이 됩니다. 그러나 치유 받지 못한 상처는 곪아서 또 다른 상처를 낳고 갈등과 분쟁을 낳습니다. 목하 한일 갈등이나 여야 갈등은 어쩌면 아물지 않은 상처에서 흐르는 고름의 악취인지도 모릅니다. 치유되지 못한 상처는 문제입니다.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성숙입니다. 

 성경의 인물들은 상처가 치유된 사람들입니다. 다윗도 요셉도 치유된 사람들입니다. 요셉은 형들의 배신으로 온갖 고생을 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형들을 미워하지도 않고 형들을 향한 원한도 없습니다. 요셉은 고백합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창50:20~21a)” 요셉은 형들을 향한 용서가 필요 없었습니다. 요셉은 이미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면서 자신의 상처를 치유 받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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