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문학 산책)최인훈의 “광장(廣場)”
2019/08/15 22:31 입력  |  조회수 : 471
트위터로 기사전송 페이스북으로 기사전송 구글+로 기사전송 C로그로 기사전송
강태광목사.jpg
강태광 목사(World Share USA)
 
분단된 조국에 태어나 자라나 분단은 잔인한 현실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모든 교육과 놀이가 분단의 현실을 담고 있었습니다. 학교 각종 대회가 각종 반공 대회였습니다. 반공웅변대회, 반공 포스터 그리기 대회 그리고 반공 표어 대회는 늘 있었습니다. 학교 행사는 말할 것도 없고 동네에서 친구들과 놀았던 놀이마저 간첩 잡는 병정놀이였습니다. 우리나라 문화에 담겨진 분단의 현실은 다양한 모습입니다.

 문학계에 표현된 분단의 아픔도 만만치 않습니다. 분단과 이념을 다룬 문학 작품들이 많습니다. 소설들 중에 관심을 끄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장편 소설들이 한국 전쟁을 다룬 홍성원의 ‘남과 북’과 이념갈등의 결과를 그린 최인훈의 ‘광장(廣場)’이 있습니다. 두 소설 ‘남과 북(홍성원)’과 ‘광장(최인훈)’은 중요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 공통점은 이념 갈등과 이념 전쟁은 결국 모두 패자를 양산한다는 것입니다. 홍성원의 ‘남과 북’은 전쟁을 통해서 모두가 패자가 되는 아픔을 그리고 있습니다. 최인훈의 ‘광장’은 이념 갈등의 희생양이 된 젊은이의 아픈 삶을 다룹니다. 광장(廣場)은 이념의 갈등에서 젊은이를 잡으려 했던 남과 북도 결국 패배한 것을 보여줍니다.

 최인훈 자신이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나 살다가 6.25 동란 중에 월남하여 남북 이념 갈등의 한 복판을 살았습니다. 최인훈은 서울법대를 중퇴하고 장교로 근무하던 중에 문단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1957년부터 1963년 7년간의 군생활 중에 최인훈은 많은 작품을 발표합니다. “그레이 구락부”, “광장”, “구운몽”, “라울전”, “회색인”, “가면고” 등이 이 때 발표된 소설입니다. 

 법관이 되라는 아버지의 간청을 물리치고 서울법대 4학년에 자퇴하고 작가가 된 최인훈은 수많은 작품들을 남겼습니다. 그중에 걸출한 작품 중 하나가 광장입니다. 1960년이 한국 정치사적으로 4.19의 해라면 1960년은 문학사적으로 “광장”의 해라고 할 만큼 한국 문단사에 길이 남을 중요한 작품입니다. 광장은 이데올로기 문제를 다루면서 남북을 모두 비판적으로 다룹니다. 광장은 여러 가지 면에서 한국 현대소설의 기념비적 작품입니다.

 이렇게 문단의 주목을 받았던 소설 “광장”은 청년 이명준의 방황과 아픔을 그려냅니다. 이명준은 중국에서 소년시절을 보내다 해방과 더불어 서울에 돌아옵니다. 해방되던 해에 이명준의 아버지 이형도는 월북을 했습니다. 이형도는 박헌영과 함께 남로당으로 활동하다가 박헌영과 함께 월북을 했습니다. 박헌영은 김일성과 다툴 정도로 공산주의 실력자였습니다. 박헌영의 지원을 받은 이형도는 북한에서 승승장구하며 고위관리가 되었습니다.

 1947년 이명준은 아버지의 월북과 어머니의 죽음으로 거의 고아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명준은 아버지 친구인 은행 지점장 변 선생의 집에서 기거합니다. 북에서 아버지 이형도가 승승장구할수록 이명준의 남한의 삶은 잿빛으로 물들어갔습니다. 철학과 3학년 이명준은 자신의 삶에 대한 특별한 목표도 정하지 못한 채 가난한 책벌레로 무기력한 젊은 날을 보냅니다.

 이명준은 그 무렵 고고학자이자 여행가인 40대 노총각 정 선생과 대화하며 남한의 정치를 노골적으로 비판합니다. 이명준이 비판했던 남한사회의 모습은 광장과 밀실이라는 단어가 설명합니다. 이명준이 진단한 한국 정치란 추악한 탐욕과 배신과 살인의 광장이었습니다. 경제의 광장에는 사기와 협박과 허영이 가득했고, 문화의 광장도 헛소리와 아편과 부정한 돈이 뿌려진 추악한 사회였습니다. 남한은 개인의 삶인 밀실도 없는 세상이었습니다. 

 1948년 아버지 이형도가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에서 대남 방송을 하게 되면서 이명준은 경찰서에 두 번 소환되어 모진 심문을 당합니다. 남한에 대한 이명준의 비판적 인식은 경찰서에서 고문을 받으면서 극에 달합니다. 이명준은 1948년 7월 인천 윤애의 집에 기거하며 사랑을 나누지만 ‘불온인물’이 된 자신의 삶을 비관하다가 단골 술집 주인의 안내를 받아 북으로 가는 배편을 알게 되고 그 배를 타고 북으로 가고 맙니다.

 1948년 월북하여 북한에 도착한 이명준은 아버지 이형도의 힘으로 노동신문 본사 편집부에서 기자로 근무하며 공산 사회를 공부합니다. 그런데 북한 사회를 알면서 이명준은 크게 실망합니다. 그래서 아버지 이형도와 심각한 논쟁을 벌입니다. 결국 그는 아버지의 모습에 실망하고, 북한의 모습에 더 크게 실망합니다. 이명준의 눈에 비친 북한은 혁명의 정신은 사라지고 혁명의 자취만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가 본 북한은 이데올로기와 허위에 가득했습니다. 공개적인 광장만 있고 개인의 삶은 없는 허망한 곳이었습니다.

 1949년 이른 봄 이명준은 국립극장 의용봉사원으로 자원하였습니다. 그런데 일을 하다가 지붕에서 떨어져 허벅지를 다치고 치료 중에 국립극장 소속 발레리나의 위문을 받고 거기서 만난 무용수 은혜와 사랑에 빠집니다. 그러나 명준과 은혜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유는 은혜가 약속을 어기고 모스크바로 떠났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명준은 남쪽과 북쪽 두 여인과의 사랑(꿈)을 이루지 못합니다.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고 인민군 정치보위부 장교가 되어 서울로 남하한 이명준은 점령군의 장교로 간첩 혐의로 잡혀온 친구 태식과 영미 그리고 태식의 아내가 된 옛 여인 윤애를 만납니다. 태식을 구하기 위해 찾아온 윤애를 겁탈하려고 하다가 맘을 고쳐먹고 그들을 탈출시킵니다.

 그 후 이명준은 치열한 낙동강 전투에 배치를 받습니다. 거기서 명준은 간호요원으로 참전한 은혜를 만납니다. 은혜와 동굴 속에서 밀회를 나눕니다. 이때 이명준은 은혜로부터 자신의 아이를 임신했음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그들은 큰 이별을 합니다. 왜냐하면 은혜가 곧 전사하였기 때문입니다.

 밀리는 전투 속에서 포로가 된 이명준은 포로교환이 있을 때에 남한도 북한도 아닌 중립국을 선택합니다. 남한과 북한은 이미 모순 투성이어서 환멸만이 넘칠 뿐이었습니다. 그는 결국 인도로 향하던 도중 날아다니는 갈매기 두 마리를 보고 자신이 사랑했던 은혜와 자신의 아이의 환영이라고 생각하고 푸른 바다로 몸을 던집니다.

 작가 최인훈은 이 작품에서 갈등과 투쟁관계였던 남과 북이 모두 패배한 것을 지적합니다. 남의 밀실도 북의 광장도 이명준을 만족 시킬 수가 없었습니다. 이념이 지배했던 1960년대에 이런 작품을 세상에 내어 놓았다는 것은 실로 놀랄만한 일입니다. 아울러 이념경쟁의 소모적인 갈등은 이명준으로 대표되는 국민을 패자로 만들고 갈등의 당사자인 양국도 결국 패배자가 된다는 것을 웅변하고 있습니다.

갈등은 갈등을 낳고 서로 물고 뜯으면 모두 망합니다. 미국의 보스턴 대학의 교수이자, 1986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엘리위젤(Elie Weisel; 1928~)박사는 그의 저서『21세기 예측』에서 “인간의 미래를 망하게 하는 가장 무서운 악(惡)은 싸움과 분쟁, 미움과 증오이다.”라고 경고했습니다. 성경은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갈5:15)”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한일 양국은 물론 보수와 진보로 싸우는 한국 사회가 귀담아 들어야 할 메시지입니다. 한국 보수의 위기도 친박(親朴)과 친이(親李)의 싸움과 갈등에서 시작된 것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images (1).jpg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nammicj@hanmail.net
"남미복음신문" 복음선교 인류구원 신앙보수(nammicj.net) - copyright ⓒ 남미복음신문.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 많이본기사
  • 화제의 뉴스

화제의 포토

화제의 포토더보기

  • 회사소개
  • 광고안내
  • 제휴·광고문의
  • 기사제보
  • 정기구독신청
  • 고객센터
  • 저작권정책
  • 회원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 RSS
  • 남미복음신문(http://nammicj.net) | 창간일 : 2005년 12월 2| 발행인 : 박주성 
    주소 :
    기사제보 및 문서선교후원(박주성) : (55-11) 99955-9846  | 광고문의(하고은) : (55-11) 99655-3876 | nammicj@hanmail.net
    Copyright ⓒ 2005-2018 nammicj.net All right reserved.
    남미복음신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