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사회 읽기:한인의 미래)봉헤찌로 포어? 언어와 이민자의 정체성
2017/10/05 04:32 입력  |  조회수 : 1,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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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중 선교사(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박사수료)
 
봉헤찌로 포어
‘봉헤찌로 포어’라는 말이 있다 (봉헤찌로는 브라질 상파울로에 위치한 한인 밀집 의류산업 중심지다). 적지 않은 한인들이 말하는 이상하게 들리지만 의사소통에 별 문제가 없는 포르투갈어를 가리키는 말이다. 많은 언어가 그렇지만, 포어는 특히 ‘학습의 축적’이 수준을 결정한다. 어린아이가 말하는 것과 학생, 대학생, 그리고 전공 교수의 언어 수준이 현저하게 다르고 특정 분야에 쓰이는 어휘가 고도로 발달 되었다. 예를 들면, 서른이 넘어 브라질에 온 이민자는 앞의 학습 단계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금방 한계에 부딪힌다. 포어는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와 같은 라틴계통 언어 중 그 뿌리에 가장 가깝고, 특정한 상황과 사물을 지칭하는 풍부한 어휘, 복잡하고 예외가 많은 문법과 구문, 그리고 다채로운 표현 때문에 현지인들도 정확하게 구사하기 힘든 언어다.
 언어와 이민자의 정체성
 전문가들에 따르면 현지 언어 수준이 이민자 삶의 질과 범위를 결정한다고 한다. 이미 10대가 넘어서 브라질에 오면 완벽한 포어가 거의 불가능하다. 가깝게 지내는 1.5세 한인 목사님들도 2세들을 대상으로 설교할 때는 통역을 쓴다고 한다. 얼마나 어려우면 ‘봉헤찌로 포어’라는 말이 생겨난 걸까. 정말 제대로 말을 못하면 불행한가. 우리는 언어습득을 단지 표현적인 영역, 즉 단어와 구문을 알고 반복 연습을 통해 성취되는 ‘말’로서 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많은 학자들은 언어 학습을 단지 ‘아는 것’을 넘어 ‘정체성’을 형성하는 사회적 현상으로 보고 이는 개인과 집단의 삶을 설명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평가한다.
 캐나다 브리티시 콜롬비아 대학의 보니 노튼(Bonny Norton, 1956~) 교수는 남아공 출신의 세계적인 언어학자이다. 노턴의 2006년 연구에 따르면, 정체성은 “사람이 어떻게 세상과의 관계를 이해하고, 그 관계가 시간과 공간에 걸쳐 어떻게 구성되어 있으며,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이해하는 방법이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학습자는 단지 ‘아는 것’을 통해 습득하는 수용자일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정보를 교환하고 그 말이 쓰이는 사회와 지속된 관계를 만들고 재구성함으로써 ‘정체성을 형성’하는 능동적 주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이민자의 언어학습은 두 개 이상의 정체성이 충돌하며 재구성되는 사회화 과정이다. 보통 10살이 넘어서 온 이민자는 특히 말을 배울 때 기존의 정체성과 새로운 정체성의 충돌을 경험한다고 한다.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의 포어
 어제 말했던 것이 오늘을 만들고 내일의 역사가 된다. 지금 한인 2세, 3세들은 포어를 외국어로 여기지 않는다. 언어 습득 과정에서 정체성이 충돌할 여지가 좁다. 미래세대는 브라질 사회가 요구하고 가르치는 정체성을 자연스럽게 수용한다. 하지만 1세와 1.5세는 다르다. 이미 체험한 문화를 가지고 새로운 사회로 들어왔다. 그들은 말을 배우며 두 개 이상의 정체성의 출동을 경험하며 그것을 사회 안에서 재구성한다. 이는 브라질에서 한인들이 생존해온 짧은 역사의 지울 수 없는 아름다운 흔적이다. 이민자들의 언어구사는 ‘말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들이 현지언어를 배우고 말하는 것은 사회를 이해하며 사는 방식이고, 시간과 장소를 통해 소통한 발자취이며, 미래의 가능성을 보는 눈이다. ‘봉헤찌로 포어’는 한인들이 이민 역사를 거치며 브라질 사회, 한인 사회, 그리고 나를 이해하며 살아가기 위한 ‘정체성’을 형성한 소중한 경험이자 자산이다. 그러므로 1세와 1.5세가 브라질 말을 못한다고 자책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완벽하진 않지만 소통이 가능하며 정체성을 잃지 않은 포어를 통해 삶을 유지했고, 아이들을 교육시키며 한인 사회를 굳건하게 지켰다. 이 과정을 통해 완벽한 언어를 구사하는 1.5세 2세가 배출되어 두각을 나타내는 한인들로 열매 맺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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