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 목사(한마음사랑희교회)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온 생애를 두 마디로 압축한다면 ‘감사’와 ‘후회’일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감사는 있었어도 후회는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마지막 하신 말씀이 “다 이루었다”(It is finished)입니다(요19:30). ‘내가 몸을 찢기고 보혈을 흘려서 내 몸으로 너희 죄 값을 다 치러 주었다. 내가 완성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뿐이겠습니까? 그 말 속에는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이 땅에 와서 유감없이 살았다’는 뜻도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후회 없이 사신 주님입니다. 그런데 그 분이 부자라서 후회가 없으셨고 세상 권세를 누렸기에 다 이루었다고 하셨겠습니까?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들을 온 몸과 마음과 영혼을 기울여서 모두 이루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들은 주의 은혜로 구원 받고 이 땅에서 천국시민으로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진정 주님을 본받기 원한다면 이제부터라도 후회 없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1. 깊은 신앙으로 살아갑시다.
신앙은 연조나 태생이나 배경이나, 예배에 참석한 횟수와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본질은 깊이입니다. 예배도, 주님과의 관계도, 주님을 섬기는 마음도, 신앙의 인격도, 진리의 깨달음도 다 깊이에 속한 일들입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잎사귀가 마르지 않고 과실을 맺는 것은 주의 말씀의 생수에 깊이 뿌리내려 영성이 깊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히3:1).하셨습니다. 바울은 “십사 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가서... 말 할 수 없는 것들을 들었으니”(고후12:2-4). 그는 표현할 수조차 없는 놀라운 일들을 들었고 눈으로 보았습니다. 영적 체험의 깊이가 얼마나 깊었던지, 자기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도 몰랐다고 두 번씩이나 괄호를 열고 닫아가며 강조하지 않습니까? 믿음의 본질은 깊이에 있습니다. 주님을 아는 것도 깊이이고 주의 진리를 깨닫는 것도 깊이입니다. 우리 삶의 전체를 넓이로 살지 아니하고 깊이로 산다면 우리들은 감사가 늘어나 결코 후회가 늘어나는 인생으로 마감하지 않을 것입니다.
2. 깊은 사랑으로 살아갑시다.
주님을 본받아 후회 없는 인생을 살고자 하면 주님의 사랑의 깊이를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은 “내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내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기 위해 왔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신 까닭에 우리 위하여 죽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주님이 세상에 오신 까닭을 다 이루시는 그 십자가의 현장에서 마지막 그의 영혼이 떠나시기 전에 ‘다 이루었다’ 하신 말씀은 엄밀히 말하면 우리를 향해 퍼부어주신 그의 사랑에 대한 마지막 종결장입니다. “내가 너희를 이렇게까지 사랑했노라” 하는 사랑의 깊이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원하고 사랑이 필요한 존재들입니다. 지금 이 땅의 문제는 사랑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랑의 깊이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만나 결혼하고 사랑을 위해서 한 가정이 되었는데 왜 그렇게 문제가 많습니까? 사랑의 깊이 문제입니다. 저도 목사로 일생을 살면서 많은 양의 무리를 섬겼지만 ‘정말 주님처럼 목숨을 다하여 양 한 마리 한 마리를 사랑해 왔는가?’ 라는 질문에 할 말이 없어집니다. 결국 우리는 사랑에 실패한 사람들이기보다는 사랑의 깊이에 실패한 사람들입니다. 모든 관계 속에서 사랑이 떠나면 그 관계는 아픔으로 변할 뿐입니다. 주님을 본받아 사랑의 깊이를 다시 회복할 때 비로소 우리는 후회가 없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3. 온전한 순종으로 살아갑시다.
주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깊이 중의 깊이는 순종의 깊이입니다. “다 이루었다”는 말씀은 “유감없이 살았다, 받은 삶을 후회 없이 살았다,” 즉 하나님이 자기를 보내신 그 뜻을 다 이루어드렸다는 뜻입니다. 순종의 깊이까지 들어갔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그 유명한 기도를 기억하십시오. “나의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순종입니다. 특별히 순종의 깊이입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의 기질에는 순종이 잘 안 맞는 것 같습니다. 순종의 훈련은 잘 받는데 정작 “주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이 땅에서 나를 통하여 이루어지기를 원하나이다.” 이 대목에 가서는 잘 안 맞습니다. 심지어 서울 같다 온 사람과 같다 오지 않은 사람이 싸우면 안 갔다 온 사람이 이긴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구역예배 후 음식을 먹으면서 두 집사님이 ‘세계에서 제일 긴 강이 무엇이냐?’며 성경공부나 구역예배와는 아무 관계없는 아마존강과 양자강을 두고 언쟁을 부립니다. 결국 백과사전에 힘을 빌려 아마존강이 제일 길다고 해도 양자강이 제일 길다는 것입니다. 이런 순종은 입으로만 하는 순종이지 정작 나와 내 마음과 내 성질을 꺾는 순종은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님께 순종하지 못한 채 순종의 깊이 없이 살다가 훗날 주님 앞에 섰을 때 가장 뼈아플 부분이 바로 후회입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주에게 순종할 걸...” 순종은 깊이 들어갈수록 신비한 영적 차원으로 끌어올려주고 하나님 앞의 영광이 어떠한 것인지 알게 해주십니다. 영국의 조지 윗필드 목사님은 주님을 위해 자기 몸을 있는 대로 다 쓰며 순종하며 살다보니 주님처럼 지칠 대로 지쳤습니다. 친구들이 몸을 잘 보전하라고 권했을 때 그가 유명한 대답을 하였습니다. “나는 내 몸을 잘 보존했다가 녹이 슬어서 없어지기 보다는, 주를 위해 쓰고 쓰다가 닳아서 없어지기를 원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존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넓이보다도 중요한 것이 깊이인 것처럼, 속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방향인 것처럼, 우리에게 정말 의미 있는 것은 우리의 존재를 잘 위하는 것보다 우리의 존재가 이 땅에 있는 동안에 이루어드려야 될 이유입니다.
결론
여러분과 제가 브라질 땅에 존재하는 이유를 주님 앞에 깊이깊이 묵상해보시기를 바랍니다. 한번은 7.1도짜리 지진이 LA 북쪽 한국 사람들이 많이 사는 마을에 발생했습니다. 집집마다 금이 가거나 물건들이 쏟아지고 파괴되었습니다. 집집마다 이민에 성공하고 자리 잡은 부인들은 마치 성공을 과시하듯 찬장을 하나씩 사다놓고 고가의 접시들을 멋진 조명아래 전시해 놓고 있었습니다. 평소에 남편에게 조차 커피를 담아 주지 않고 아끼던 이 그릇들이 지진에 몽땅 넘어져 깨졌습니다. 그러나 집집마다 깨지지 않은 것이 있었는데 이는 물 뿌리고 설거지할 때 쓰는 플라스틱바가지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