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석현 목사(샬롬교회 담임)
I. 서론
사람들은 어떤 음식을 먹으면서 지금 좋은 것을 누리면 되는데, 자꾸만 언제 먹었던 것이 좋았다... 등의 이야기를 하다보면, 지금 주신 은혜는 작게 되고 마음속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바로 이러한 이야기 속에 빠져 있는 모습이라면, 그 사람이 가장 불행한 사람 중의 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현재 주어진 삶에서 ‘주신 은혜’를 생각하면서 그 자체를 누리고 살아가시면 좋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제자들의 모습에서 발견할 수 있는 모습들이 많이 있는데요. 그 가운데서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하신 모습을 보고서도 여전히 사명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들을 나무라시지 않으시고 또다시 일으켜 세워주시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들이 세상의 삶에서 지쳐있고 실망감 속에서 넘어져 있다면, 주님께서 제자들을 여러분들에게 다시 새로운 소망과 비전을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II. 본론
1. 사람은 무엇을 결단하고 나갈 때 누구든지 실망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자신의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1~3절)
우리말에 “사람이 마음먹기에 달렸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어떤 마음자세로 임하느냐에 따라서 환경이 바뀌어 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가 만나는 제자들은 그 마음 자세가 그리 든든하게 서 있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실망감 속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실망감 속에서 고향으로 낙향해 있는 모습을 우리는 지금 만날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주님께서 부활하신 당신의 모습을 분명히 보여주셨는데도 이럴 수가 있는가? 하고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좀 더 세밀히 생각하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너무나도 큰 기대감 속에 있다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실망감에 빠져버리면 그 속에서 헤어 나오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제자들의 모습은 단순한 실망감을 넘어서 절망감 혹은 모든 세상을 잃어버린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슬픔에 잠겨 있고, 공황증세에 빠져 있는 이들에게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간다”라고 하자, 다른 제자들도 우르르 “나도 나도 ...” 하면서 따라갔습니다. 이렇게 어떻게 해서든지 그 우울하고 공황상태에서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치는 모습들을 보였지만, 그들에게는 아무런 수확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분명히 어부들이었기 때문에 전문가였습니다. 그들은 실망감과 좌절감으로 인하여 비전을 잃어버리고 그냥 경험에만 의지하였고, 심지어 성의없는 그물질을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아무런 소득이 없었습니다. 사람이 너무 낙망된 상황에서 무엇이라고 몸을 움직여 해보려고 했는데, 아무런 소득이 없을 때는 더욱 큰 실망감에 빠지게 됩니다. 어떻게든지 그 상황을 탈피해보려고 하는데 잘 되지 않는 상황이 되면 더욱 마음이 무거워지고 더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됩니다.
2. 주님의 제자들이 바로 앞에서 말한 그런 사람들이었는데요.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들을 실망한 삶의 모습 그대로 버려두지 않으시고 찾아오셨습니다(4~7절).
우리 주님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가장 실망하고 가장 피곤한 시간인 ‘날이 새어가는 새벽녘’에 찾아오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실망감으로 인하여 3년 동안이나 목숨을 내어놓고 좇아 다녔던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멀리서 그들을 보시면서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 있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들은 대답하기를 “없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서 그물을 들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서 그물을 들어 올리면서 생각하니, 어디선가 들어본 목소리입니다. 그리고 멀리서 희미하게 보이는 모습이 잘 아는 분의 모습입니다. 여기에서, 우리 주님께서는 가장 실망감에 빠져 있고, 인생의 피곤함에 빠져 있는 이들을 결코 내버려 두시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실망과 좌절과 삶의 희망을 다 잃어버린 이들에게 작은 희망의 기적을 보여주시면서 새로운 힘을 얻게 하셨습니다.
3. 주님께서는 실망한 그들에게 물고기를 잡게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이 잡은 물고기를 세어보았습니다. 그러면 이 물고기를 잡은 의미가 그들에게 무엇이었을까요?(8~14절)
예수님께서는 피곤에 지친 제자들에게 먼저 숯불을 펴놓으시고 물고기를 굽고 계셨습니다. 바로 그때 제자들이 도착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셨습니다. 그랬더니, 그들이 생선을 세기 위해서 그물을 끌어 올렸는데, 놀랄만하였습니다.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 쉰 세 마리’였습니다. 그에 대해서 사도 요한은 한 가지 정보를 주고 있는데요.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당시에 그물로 이렇게 큰 물고기를 가득히 잡아본 경험이 없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어부들이었기에 이 정도로 가득 찬 물고기가 든 그물은 반드시 찢어지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자들에게는 굉장히 놀랄만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어부출진이 아니셨습니다. 그런데도 어부들이었던 그들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큰 물고기 153마리를 잡을 수 있도록 하심으로 해서 제들로 하여금 깊은 실망의 잠에서 깨어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이 여성복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전문가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잘 안됩니다. 실망과 좌절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어느 날 누가 나타나서 “이렇게 해보세요”라고 한다면, 어떤 생각을 하시겠습니까? “내가 전문가인데... 뭘 안다고 그래....” 이런 반응이 나오지 않을까요? 그런데, 우리가 한 가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전문가라고 하지만, 깊은 절망감에 빠져 있으면 큰 그림을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방향과 흐름을 잘 읽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는 말입니다. 스스로는 잘 아는 사람, 전문가라고 하지만, 오히려 전문가적인 느낌이 더욱 어렵게 하는 경우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어렵고 힘든 절망 속에서 여러분들에게 주님께서 어떤 한 수의 ‘훈수’를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무리 전문가라고 할찌라도, 자신의 경험을 의지해서 그물을 던졌다 할찌라도 아무 것도 얻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한마디의 훈수를 주시면 여태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수많은 큰 물고기를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이 거둘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단순히 물질적인 풍요함을 주셨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런 물질의 풍성함의 축복을 통해서 주님께서 제자들의 사명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셨다는 것입니다. 즉, 자신들을 부르셨던 주님의 말씀 곧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는 것을 기억나게 하셨습니다.
III. 결론
자신들의 힘으로는 결코 하지 못했지만, 주님께서 도와주셨더니 인생 중에 한 번도 들어 올려보지 못한 큰 물고기들을 들어 올렸습니다. 주님의 제자가 되어 사람을 낚는 어부로 살기로 다짐했지만,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좌절과 실망감 속에서 패배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한 번의 사건으로 인해서 제자들은 더 이상 패배자가 아니었습니다. 주님이 도우시기 때문에 여태까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큰 일을 경험하였습니다. 이처럼, 주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면, 우리를 부르신 놀라운 은혜와 기적을 경험할 수 있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실망감과 좌절 속에서 주님의 만지심과 인도하심을 통해서 큰 물고기들을 거두시기 바랍니다. 이에 아울러서, 주님이 함께 하시면 당신의 비전과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