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명 목사(대한교회 담임)
우리는 “인디아나 존스”라는 영화에서 하나님의 언약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언약궤가 없어서 이런 것이 언약궤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만든 거북선을 연구하는데 참여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북선은 분명히 있었는데 진짜 거북선은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와 같이 분명히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만든 성막과 증거궤는 있었는데 지금은 진짜 모습을 볼 수가 없습니다. 왜 지금은 그 모습을 볼 수 없을까요? 지금은 진짜 언약궤이신 예수님이 오셨기 때문에 그림자인 언약궤는 필요가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럼 이 언약궤가 하는 역할이 무엇이고 왜 하나님은 모세에게 언약궤의 크기와 들어가는 재료를 자세히 알려주셨을까요? 우선 언약궤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맺었다고 해서 언약궤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그 안에 십계명을 넣었다고 하여 법궤라고 하기도 하고 하나님이 말씀을 증거하셨다고 해서 증거궤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직접 주문하신 언약궤의 모습을 보겠습니다.
첫째, 조각목으로 궤를 만들라 하셨습니다.
출 25:10 그들은 조각목으로 궤를 짓되 장이 이 규빗 반, 광이 일 규빗 반, 고가 일 규빗 반이 되게 하고
여기서 규빗은 치수를 말합니다. 한 규빗은 대개 45cm정도입니다. 성인 남자 가장 긴 가운데 손가락 끝에서 팔이 굽혀지는 곳까지입니다. 그래서 궤의 크기는 가로 길이가 약 112cm, 세로 폭이 67cm, 높이가 67cm의 크기이며 모양은 직사각형의 모양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언약궤의 재료를 조각목으로 하라고 하셨습니다. 조각목은 싯딤 나무라고 부르는 일종의 아카시아 나무입니다. 목재로서 제일 나쁜 나무입니다. 이 나무는 주로 시내산 아래 광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잡목입니다. 빼빼 마른 나무이고 모양이 뒤틀리고 그리고 사막의 모래 바람을 맞으면서 자라서 칼도 잘 안 들어가는 딱딱한 나무입니다. 거기다가 가시가 있어 나무에게 찔리고 하여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나무인데 하나님이 이 나무로 하나님이 계신 언약궤를 만들라고 하십니다. 무슨 뜻이 있을까요?
이 조각목은 바로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광야라고 합니다. 광야는 정말 사람이 살 곳이 못 됩니다. 지난번 이스라엘을 갔을 때 광야에서 예배를 드리는 계획이 있었는데 도착해보니 눈을 뜰 수 없는 모래 바람이 몰아쳐서 예배를 못드렸습니다. 이런 곳에서 자란 나무이니 얼마나 볼품이 없습니까. 하나님은 이런 죄 많고 볼품없는 가시같은 사람들을 불러 하늘나라의 일꾼으로 쓰시겠다는 뜻입니다. 바로 이 조각목의 모습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를 뽑아 쓰시는 모습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그 당시 누가 보아도 아카시아 같은 나무입니다. 고기잡는 어부 베드로, 야고보, 요한, 로마 사람에게 세금 바친 세리 마태 등 세상에서 멸시 받는 사람들을 뽑으셔서 영혼을 구원하는 하늘나라 일꾼들로 쓰셨습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불러 쓰시는 사람들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고전 1: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고전 1: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고전 1: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고전 1:29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래서 우리는 모두가 조각목임을 알고 “나는 가난하다. 늙었다. 병들었다. 무식하다. 나는 집사도 아니다.”하며 교회 봉사나 헌신에 이리저리 피하지 말아야 합니다. 정말 내가 조각목인 걸 하나님이 불러서 쓰시는구나 생각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아멘
둘째, 궤를 순금으로 싸라 하셨습니다.
출 25:11 너는 정금으로 그것을 싸되 그 안팎을 싸고 윗가로 돌아가며 금테를 두르고
순금은 귀한 대접을 받습니다. 순금은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순금은 불순물이 없는 깨끗한 것입니다. “오늘 언약궤를 순금으로 싸되 그 안팍을 싸라”고 하셨습니다. 밖과 안을 정결케 하신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아무 쓸모없는 조각목같은 땔감용이었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가 믿음으로 순종할 때 우리는 정금같이 귀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상처, 부끄러움, 열등감, 비교, 모자람, 우울증들을 하나님이 다 치료하셔서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깨끗하게 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아주 교만하고 성격이 까다로워 사람들과 잘 타협을 못하고 세상 자랑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만나고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주님의 은혜를 날마다 받기 때문에 우선 마음이 넓어집니다. 감성이 풍부해지고 이해의 폭이 넓어집니다. 그리고 기다릴 줄 압니다. 멋있는 사람이 됩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은혜를 받고는 아주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빌 3: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빌 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갈수록 사람이 고상하게 되고 멋있게 됩니다. 이렇게 안되면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지식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조각목인 우리를 금으로 싸고 입히셔서 안도 번쩍 번쩍, 밖도 번쩍 번쩍하게 해주셨습니다. “나는 금이다.”라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값지고 귀한 존재인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아멘
셋째, 조각목으로 채를 만들라 하셨습니다.
출 25:12 금고리 넷을 부어 만들어 그 네 발에 달되 이편에 두 고리요 저편에 두 고리며
출 25:13 조각목으로 채를 만들고 금으로 싸고
출 25:14 그 채를 궤 양편 고리에 꿰어서 궤를 메게 하며
출 25:15 채를 궤의 고리에 꿴대로 두고 빼어 내지 말지며
이 말씀을 읽으면서 왜 고리를 만들라고 하실까? 왜 채는 긴 막대기인데 그것을 만들라고 하셨을까? 또 왜 막대기를 고리에 끼워서 빼내지 말라고 하셨을까? 하는 의문을 가져야 합니다. 그 이유는 이 법궤가 이동하기 위한 것입니까? 아니면 그대로 그 자리에 고정되기 위함입니까? 이동하기 위함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다니시겠다는 뜻입니다. 고리를 만들고 그 고리에 법궤를 운반 할 때 사람이 들어야 되니 긴 막대기를 만들어 이스라엘 백성이 움직이는 대로 하나님도 같이 다니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막대기를 고리에서 빼지 말라고 하십니까? 법궤는 하나님이시니 가까이 가서 만지면 죽습니다. 삼하 6장에 보면 다윗 왕이 아비나답의 집에 계신 법궤를 수레에 싣고 다윗 성으로 옮기다가 나곤의 타작 마당 앞에서 소가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는데 하나님이 진노하사 그가 죽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법궤를 옮길 때는 만지지 말고 채로 들어 옮기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이 왜 움직이시려는 것입니까? 우리와 함께 동행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하신다.”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십니다. 만지기만 해도, 보기만 해도 그 거룩함 때문에 우리는 죽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셔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다시 그 분이 성령님으로 아예 우리 마음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구원을 잊지 않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얼마 전 한국 신문에 “구원받은 유병언 왜 도망다니나”라고 쓰였습니다. 구원파의 교주인 유병언은 죽는게 무서워서 도망다닙니다. 그건 가짜 구원이지요. 하나님을 이용한 사기극이지요.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놀랍고 세밀한 계획으로 이루신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구원이 되게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은 우리가 꼭 구원받아야 하기 때문에 가만히 앉아있을 수가 없어서 움직이시는 법궤가 되셔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