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시냇가)신앙생활도 운동 경기자처럼(고전9:24-27)
2014/07/11 20:56 입력  |  조회수 :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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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목사(사랑의교회).jpg
김영수 목사(사랑의교회 담임)
 2014 브라질월드컵 본선 진출 32팀이 출전하여 총 64경기를 치루고 있습니다. 브라질 전국이 축제 분위기입니다. 성공적으로 월드컵이 마쳐 지기를 기도합시다.
 오늘 봉독한 하나님의 말씀은 신앙생활의 원리를 운동경기에 비유하여 교훈하신 것입니다. 고린도 전서는 바울 사도에 의하여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데, 바울사도가 생존했던 당시 그리스와 로마에는 여러 가지 운동경기가 성행했습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쇠로된 장갑을 끼고 한 사람이 죽을 때까지 시합을 계속하는 복싱경기가 있었습니다. 또한 그 당시 대단한 인기를 모았던 경기 가운데 하나가 레슬링입니다. 오늘날 “그레꼬 로망형”(Greco Roman Style)으로 불리는 레슬링이 곧 그리스, 로마시대에 행해지던 경기방식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 맹수와 싸우는 경기도 있었습니다. 이 경기에 동원되는 사람은 주로 죄수들이었는데, 맹수와의 사투에서 살아남을 경우 죄를 사면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로마의 박해 하에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같은 경기의 희생물로 순교를 당했습니다. 오늘날 스타디움(Stadium) 즉 경기장으로 불리는 것은, 본래 그리스어로 스타디오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스타디오란 606.75피트, 약 200m의 거리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당시 그리스에 있는 경기장들이 한 스타디오(약 200m)로 규격화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스타디오라 하면 경기장으로 인식하게 되었고, 이것이 오늘날 스타디움으로 불리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경기에서 이긴 사람에게는 월계수나 감람나무 잎으로 엮어 만든 면류관을 머리에 씌워줬습니다. 이 승리의 면류관은 곧 시들고 맙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이를 가리켜 썩을 면류관이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운동 경기자의 모습을 비유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생활의 교훈은 무엇일까요?
 최선을 다 하라는 것입니다. 
 본문 24절에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하셨습니다. 육상선수가 사력을 다해 달린 후 우승의 영광을 얻듯, 신앙인도 이렇게 믿음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운동을 열심히 하여 남다른 기량을 지닌 운동선수들의 경우 그들에게는 부와 영광이 주어지게 됩니다. 삶의 승리와 행복을 바라십니까? 하나님께서 그 방법을 말씀하셨는데,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잘 섬기라는 것입니다. 신명기 10:12-13의 말씀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되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며 순종하는 것은 행복을 위한 길이라 하셨습니다. 그리스 한 도시인 고린도에 있었던 고린도 교회 교인들은 영적으로 매우 나태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신앙생활의 노력은 없이 안일한 생활을 하면서 복을 받길 기대했습니다. 이렇게 잠자던 영혼들을 깨우기 위해 바울은 그 시대에 흔했던 운동경기자들의 모습을 예로 들어 교훈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 임하는 것입니다.“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대하 16:9)라고 하셨습니다. “은을 구하는 것 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인 보배를 찾는 것 같이 그것을 찾으면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잠 2:4-5)라고 하셨습니다. 
 절제하라는 것입니다. 
 본문 25절에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하셨습니다. 고대 그리스 운동 경기자들은 통상 10개월가량 고된 훈련을 받았다고 합니다. 음식과 오락, 수면 등에 있어서 자신을 절제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올림픽 경기장에 나가 경기하는 선수들의 경우 어떤 경기는 불과 몇 분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 몇 분 동안에 승패가 결정됩니다. 이 몇 분밖에 안되는 경기를 위해 몇 년 동안 자기와 싸우며 연습에 연습을 거듭합니다. 그 결과 영광이 있습니다. 이 날이 있기 까지 그 얼마나 많은 것을 참았겠습니까? 젊음의 온갖 욕망을 참으며 그들은 인내했습니다. 영광은 하루아침에 오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와의 싸움인 절제 뒤에 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예배, 하나님의 능력으로 기적을 일으키는 기도,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을 살리는 전도, 그리스도를 본받아 이웃을 섬기는 봉사 등, 이 모든 것은 안일을 추구하려는 육신의 욕망을 이겨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절제 후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26절에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여...”라고 하셨습니다. 육상선수가 어느 지점, 어느 방향을 향해 뛰는지도 모르고 달리는 선수는 없습니다. 삶의 방향이 잘못되어지면 웃음거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들의 삶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무엇을 위해 존재합니까? 살아가는 방법은 각각 다를지라도 우리들의 목적은 다 같습니다.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사야 43:7에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하셨습니다. 또 말씀하시기를“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하셨습니다. 목적이 분명한 삶을 살아갈 때 보람을 느끼게 되며,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여기에 하나님의 은총이 머물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타고난 재능이 다릅니다. 살아가는 방법이 각각 다릅니다. 일하는 직업이 다릅니다. 그러나 목적은 같습니다.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들림 받은 에녹에 대하여 성경은 기록하기를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 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히 11:5)하셨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세상을 떠난 두 여인이 세상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적이 있었습니다. 마더 테레사와 다이애나가 그 사람들입니다. 마더 테레사는 열 일곱 살에 수녀가 되어 칠십여 년을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다가 갔습니다. 그녀는 숨질 때까지 인도의 가난한 자들, 버려진 이웃들과 함께 살았고 그들을 사랑하며 섬겼습니다. 세계는 그의 사랑에 감동하여 노벨 평화상을 수여했습니다. 8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을 때 테레사의 장례를 힌두교와 시크교도가 대부분인 인도에서 국장으로 치르면서 그에 대한 존경과 사랑하는 마음을 극진히 표현했습니다. 장례식에는 종교는 달라도 수많은 사람들이 한 여인의 마지막 가는 모습을 보기 위하여 수만 명이 줄을 이었습니다. 마더 테레사가 세상을 떠나기 며칠 앞서 영국 왕세자비였던 다이애나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다이애나는 찰스 왕태자와 이혼하면서 수백억의 위자료로 거부가 되었습니다. 거기에 이집트 출신의 최고 갑부와 함께 생활하며, 최고급 승용차를 타고 가다가 교통사고로 죽었습니다. 테레사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 살았고, 다이애나는 자신의 욕구충족만을 위해 살았습니다. 아프리카 선교에 일생을 바친 슈바이처와 프랑스의 작가 카뮈입니다. 이 두 사람은 같은 해에 노벨상을 받은 유명인 이었습니다. 슈바이처는 평화상을, 카뮈는 문학상을 받았습니다. 둘은 모두 상금으로 10만 달러를 받았습니다. 카뮈는 그 상금으로 파리 근교에 멋진 별장을 구입했고, 고급승용차를 사서 타고 다녔습니다. 카뮈는 그 차를 타고 별장으로 가든 어느 날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슈바이처는 그 상금으로 아프리카 랑바레네 병원을 지었고, 그 병원에서 아프리카의 불쌍한 사람들을 치료하는데 여생을 바쳤습니다.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까?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은 영원합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7-9)하셨습니다.
 법대로 경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딤후 2:5절에“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무슨 경기든 경기에는 지켜할 법이 있습니다. 법을 어긴 승리는 인정되지 않습니다. 2014브라질월드컵에서 많은 오심 논란과 반칙으로 인한 끔직한 부상으로 다음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는 일들이 생겨져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생활의 법을 기록한 책이 성경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중심하여 살아가야 그의 신앙이 인정을 받게 되고, 하나님의 사랑과 복을 받아 누리게 됩니다. 기도를 하되 법대로 해야 합니다. 회개하며 하는 기도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하는 기도해야 합니다.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한 기도가 아니라 먼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봉사하되 법대로 해야 합니다. 왼손이 하는 것을 오른손이 모르도록 하는 은밀한 봉사입니다. 오직 순수하게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봉사하되 다른 사람들과 화목을 도모하며 해야 합니다. 교회는 혼자서 생활하는 곳이 아니라 여러 사람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독불장군식의 봉사는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어 화평을 깨뜨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봉사하되 겸손하게, 은밀하게 봉사할 때 하나님께서 그 봉사를 인정하시고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되 법대로 해야 합니다. 법을 무시하는 사람의 신앙생활에 대해 말씀하시기를“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롬 10:2-3)하셨습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우리는 운동경기자의 모습처럼 하나님을 섬겨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육신의 감정이나 유혹에 대해 절제하는 것입니다. 삶의 목표가 분명하야 합니다. 법을 따라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경기의 승리자에게 영광이 주어지듯, 신앙의 승리자가 되어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 가운데 거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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