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용주 목사(봉헤치로 제일교회 담임)
1517년 10월 31일, 신학박사 마르틴 루터는 비텐베르크(Wittenberg) 성 교회에 『95개조』를 게재하였다. 이것은 509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종교개혁의 기준점으로 삼는 큰 사건이었다. 이 문서에서, 그는 당시 널리 유행하던 면죄부 판매의 유해성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이론적 근거의 허구성을 지적한 후, 이 논제들에 대한 공개 신학토론을 통하여 이로 인하여 발생하는 수많은 부작용 및 해악이 시정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로마 교황청이나 신성로마제국 황제와 같은 권세자들은 그것을 현 제도 질서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였고, 오히려 그를 핍박하기에 이르렀다.
이 사건의 이미지가 워낙 강렬한 탓에 루터의 신학사상이 이 무렵에 형성되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는 이미 2년 전인 1515년 무렵에 오늘날 로마 카톨릭 또는 천주교라 불리는 그 때까지의 기독교가 큰 잘못 가운데에 있다는 것을 뚜렷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제도적 잘못이나 성직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보고 그런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기준으로 보았을 때 교회가 그러한 상태에 있다는 것을 분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오늘 글에서는 1517년 10월 31일 이전의 루터의 신학사상을 간략하게나마 보려고 한다. 그러나 신학사상이라 하더라도, 이것은 우리 신앙생활에 큰 유익을 주는 내용이며, 더 나아가 지금 기독교의 현실에 대한 시사점도 던져주는 기준이 될 만한 내용이다.
1. 1514년 시편 51편 주해
1512년에 신학박사 학위를 받고 비텐베르크 신학교의 교수가 된 루터는 곧 시편을 강해하기 시작하였다. 시편 51편은 1514년에 강의하였는데, 이 때 이미 그는 본문으로부터 개혁신앙 그리고 개혁신학의 주요 명제들을 도출한 것을 볼 수 있다. “첫째, 하나님 앞에서 사람은 모두 전적으로 타락한 죄인이다.” 여기서 ‘하나님 앞에서’는 유명한 라틴어 표현인 ‘코람 데오(Coram Deo)’이다. 또 사람이 ‘전적으로 타락한 죄인’이라 했는데, 이것은 당시 신학과 정반대이다. 중세 신학은(또한 지금도 천주교에서는) 사람이 중립적으로 태어나며, 단지 그 의지가 악으로 기울어질 수 있다고 가르쳤다. 아담이 타락할 때, 인간의 영적 생명은 타락했지만 자연적 생명은 그대로라는 것이다. 이것은 물론 인간의 자유 의지를 주장하는 그리스-로마 철학자들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죄를 선지자들을 통하여 이미 증언하셨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이러한 사람의 죄를 속하시려고 고난을 받게 하시고 죽임을 당하게 하셨다.”
이 역시 당시 신학과 반대된다. 중세 신학은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신 영광 가운데의 그리스도에 대하여 관상하는 것을 주류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셋째, 하나님의 의는 자기 내적일 뿐만 아니라 그 말씀과 우리 안에서 나타난다. 말씀대로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셨기 때문이다.” 이것도 중세 신학과 대치된다. 당시에는 하나님의 의가 단지 신의 내적 속성이라고만 가르치고, 성경과 그것을 통한 사람의 구원에서 그 의가 드러난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넷째,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전적으로 타락한 죄인이므로, 오직 이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는 자가 구원을 받는다.” 즉, 자기부인이다. 자기에게 의는 조금도 없고 오직 죄만 가득해서, 구원을 하나님 안에서만 찾는 고백이 없이는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