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복 목사의 복음과 삶)위로 받기 보다 위로하며
2024/04/19 02:31 입력  |  조회수 : 1,8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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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복 목사(시온성장로교회 담임)

 

 요즈음 시대를 일컬어 스트레스 시대라고 말을 합니다. 한국의 경우 동네 병원과 같은 1차 의료기관을 찾는 75%~90% 환자가 스트레스로 인한 질병이라는 조사발표가 되었습니다. 즉, 신체적으로는 이상이 없는 신경성 질환이라는 말입니다. 통계에 따르면 심장병의 경우 75%, 심장마비의 50%가 스트레스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 밖에 스트레스로 인해 야기되는 질병의 수가 무려 2백여 가지나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스트레스가 우리를 짓누르고 있습니다.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찾아내기가 힘들다고 말을 합니다. 왜냐하면, 삶 자체가 스트레스투성이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못생긴 감이 있었습니다. 이 감은 마음이 착했지만, 얼굴의 피부가 거칠어서 친구인 고구마가 항상 감자라고 놀렸습니다. 감은 너무 상처를 많이 받아서 나중에는 감자 노이로제에 걸렸습니다. 심한 노이로제에 걸린 감은 치료를 받으려고 병원에 갔습니다. 그런데 감을 진찰하던 의사는 감에게 말했습니다. “감 씨. 당신은 아주 심각한 노이로제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이제 한 번만 다른 이들이 당신을 감자라고 부르면 당신은 죽게 됩니다. 그러니 당분간 외출하지 말고 집에서 조용히 쉬세요.” 감은 태산 같은 걱정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친구들에게 알려졌습니다. 친한 친구인 고구마는 그 이야기를 듣고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자기가 감을 놀려댔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다시는 감을 감자라고 부르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는 감을 위로하기 위해서 감의 집에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감을 불렀습니다. “감아!” 그러나 감은 대답이 없었습니다. “감아…. 감아…!” 그러나 감은 계속 침묵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고구마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말했습니다. 고구마는 감이 자고 있으므로 듣지 못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큰 소리로 감을 불렀습니다. “감…. 자냐? 감…. 자냐?” 그 소리, 감자라는 말을 듣자마자 깜짝 놀라 스트레스를 받아 결국 감은 죽고 말았습니다. “감…. 자냐?”고 물었던 것인데 “감자냐?”로 들렸기 때문에 “아 또 감자라고 하네” 하면서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상대방을 생각하지 않고 말함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아프게 할 때가 있습니다. 위로하러 간다고 하지만 위로는 못 해주고 오히려 더 스트레스를 받게 하고 화를 나게 합니다. 결국은 그 말들 때문에 죽이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잘 알려줍니다. 그럼 다른 사람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것이 아니라 스트레스 받는 사람들에게 위로자의 삶을 살 수는 없을까요?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삶, 죽이는 방법이 아니라 살리는 방법으로 살 수는 없을까요?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위로자의 삶을 살면 됩니다. 위로자는 살리는 사람입니다. 위로자는 세워주는 사람입니다. 위로자는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는 사람입니다. 

 그럼 위로(慰勞)란 무슨 말입니까? 위로라는 말의 의미를 살펴보면 1) 수고를 치하하여 마음을 즐겁게 해준다. 2) 괴로움, 슬픔을 잊도록 마음을 편하게 해 준다. 3) 고달픔을 풀도록 따뜻하게 대하여 준다. 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나의 관심은 위로라는 글자 중에 “로(勞)”자입니다. 이는 수고로울, 일할, 위로할 로(勞)자 입니다. 위로(慰勞)에 로(勞)자가 있다는 것은 위로하는 데 수고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말하는 것이 아닐까요? 직접가든 아니면 전화를 하든 먼저 찾아가고 함께 마주 앉아야 하는 수고, 가지고 있는 아픔과 슬픔과 고통과 어려움을 덜어주고자, 풀어주고자 애쓰고 함께 나누는 것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수고와 노력을 기울여서 사람들에게 다가가 위로해 주는 사람들이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1962년 미국 캔 사스 주립병원 칼 박사와 밀 링커 박사는 어느 고아원 아이들이 원인 모를 병에 걸려 죽어가고 있음을 알고 조사한 결과, 에로스 무슨 병(사랑의 결핍증)으로 진단했습니다. 이 병이 들면 아이들이 마르고 사나워지면서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갔습니다. 두 박사는 치료방법으로 고아원 보모들에게 고아 아이들을 안고 직접 자기 뺨을 대며 비벼주고 손을 잡아주고 스킨쉽을 해주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이들이 유순해지면서 죽는 아이들이 적어지고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에로스무스병의 치료를 T.L.C 방법으로 성공했습니다. 즉 Tender(어루만짐), Love(사랑), Care(보살핌, 돌봄)라는 방법입니다. 이것을 누군가가 해 주어야 하는데 이 글을 읽고 있는 우리가 해 보면 어떨까요? 

 현대인 모두가 에로스 무슨 병에 걸려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마음 치료 약방”이 생겼다고 합니다. 이것은 자판기 마음 치료 약방입니다. 돈을 넣고 자기 증상의 버튼을 누르면 거기에 처방전이 나오고 그 처방전대로 하면 마음의 병이 낫는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곁에 위로자가 없으면, 어루만져 주고 사랑해주고 돌보아 줄 사람이 없으면 이같이 자판기로 해결을 받아야 할까요? 

 이처럼 안타까운 이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너도나도 모두가 다 위로받아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성경 고린도후서 1장 4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가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위로하시는 하나님에게 위로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 다가와 우리의 손을 잡아주시고 우리를 안아 주시고 우리를 위로해 주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나와 같은 힘들고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그들을 안아 주고 위로해 주라고 먼저 우리를 위로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위로받은 우리는 환난 중에 있는 사람들, 고통 가운데 사는 사람들, 마음이 아픈 사람들에게 다가가 마음 치료 약방의 약사가 되어주면 어떨까요? 이제는 위로받기보다는 위로자의 삶을 살아보는 것 어떨까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런 사람이 되라고 불러주시고 위로하여 주셨습니다. 이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받은 자로 위로하며 살아가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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