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용주 목사(봉헤치로 제일교회 담임)
1. 죄를 지적당하다
처음부터 기독교적 관점에서 쓰여진 소설 『반지의 제왕』 전체에 흐르는 중심 주제는 바로 ‘죄’의 문제이다. 그리고 이 삼부작 소설 내에서 ‘원죄’의 기능을 하는 것은 바로 ‘절대반지’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골룸의 동굴에서 얻은 것이 절대반지인지 몰랐었다. 심지어는 마법사 간달프도 몰랐었다. 그런데 그 반지에 대해 말할 때마다, 그토록 낙천적인 빌보가 이상하게 고집을 부리는 것을 보고 눈치를 챈다.
그래서 그는 빌보에게 어서 그 반지를 내어버리라는 촉구를 한 것이다. 즉, 회색의 간달프는 - 앞으로 더 자세히 보겠지만 - 원죄의 문제를 해결해주려는 ‘구세주’인 것이다. 그 구세주가 섬광이 번뜩이는 두 눈을 치뜨며, ‘너는 지금 죄를 지니고 있다’고 지적하고, ‘그것을 빨리 벗어버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2. 죄의 속성
하지만 빌보는 짜증을 냈다. 그의 목소리는 불신과 분노로 날카로워졌다. “당신은 왜 자꾸 재촉하는 거죠? 항상 내 반지를 가지고 괴롭히잖아요!” 그런데 빌보의 이 짜증은 그만의 것이 아니다. 사람은 구세주로부터 죄를 지적당하면 먼저 짜증부터 내게 되어 있다. 그가 자신의 죄에 대해 만들어내려는 거짓 변명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는 통용될 수 없음을 잠재의식적으로 감지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분명 자기가 의롭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대한 신적 지적에 대해서 짜증으로 반응하는 법이다.
그리고 이 ‘짜증’은 불신과 분노와 날카로움을 동반한다. ‘왜 내가 내 죄에 대한, 내 불의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아야 하는가, 왜 굳이 내가 변명해야 하는가, 어차피 그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을 것 같은데, 그 어떤 이유로도 나의 지금 이 상태에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을 것 같은데, 계속 나를 불편하게 할 것 같은데’와 같은 마음에 기인한 것이다.
3. 죄 가운데 거하려 하다
간달프는 빌보에게, 그에게 더 이상 반지가 필요 없다고 말한다. 그러자 빌보는 얼굴을 붉혔고, 두 눈에는 분노의 빛이 번득였으며, 악을 써 댔다.
“그 반지는 내 겁니다. 내가 발견했어요. 내 손에 들어온 거라니까요.”
“그렇지, 알겠네. 하지만 화낼 필요는 없지 않나?”
“모두 당신 때문입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이건 내 겁니다. 내 소유, 내 보물이란 말입니다. 그래요, 내 보물입니다.”
마법사도 정색을 하고는 얼굴이 굳어졌다. (…) 그가 말했다.
“예전에도 누군가 그렇게 말한 적이 있지. 자네는 아니지만.”
“하지만 지금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안 될 게 뭐가 있습니까? 비록 전에 골룸이 먼저 그렇게 말했다 하더라도 이젠 그의 것이 아니에요. (…) 따라서 분명히 못박아두는데, 이건 내가 보관하겠습니다.”
간달프는 일어서서 엄하게 말했다. “
(...) 반지의 힘이 이제는 자네를 압도할 지경이 된 거야. 반지를 놓게. 그러면 자넨 자유를 얻을 수 있어.”
(…) “흥! 내 반지가 탐이 난다면 솔직히 그렇게 말씀하세요.”
(…) 그의 손이 옆구리에 있는 단검의 손잡이께에 가 멈췄다.
- 『반지의 제왕』 제 1권 1장 89-9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