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찬성 목사(브라질선교교회 담임)
유권사님, 한국의 봄은 짧지만 화려합니다. 성실, 겸손, 사랑이란 꽃말처럼 보라색의 앉은뱅이 꽃은 시멘트 바닥 틈새에서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제비꽃은 제비가 돌아오는 음력 삼월 삼짓날 즈음에 피는 꽃이어서 제비꽃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요즘 그 제비꽃을 비롯해서 벚꽃, 진달래, 목련, 개나리가 세상천지입니다. 보라색꽃을 피는 현호색과 노란색의 양지꽃도 요즘이 제철입니다.
봄꽃들이 어머니 무덤가를 장식합니다
유권사님, 지난 2월에 세상을 떠나신 어머니의 무덤에 가는 날 바람에 가로수 벚나무 길에 꽃비가 쏟아지고 있고 노란색 개나리 울타리를 지나서 선산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진달래가 활짝 핀 얼굴로 가로막습니다. 진달래가 외로운 봉분 두 기인 납골묘에 아들이 왔노라고 나름 큰 키로 주변에 전파합니다. 그러면 무덤가 잔디 사이에 앉은뱅이로 핀 제비꽃이 알았다고 고난의 색 보라를 겸손하게 추스르며 수난주간을 공지하고 있습니다.
고난주간, 한 주간에 있었던 죽음으로 가면서 생긴 사건들을 요일별로 나눠서 교회 말씀방에 묵상자료를 올리는 일도 한국에서 목사가 해야할 일입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보라색입니다. 유권사님, 앉은뱅이 제비꽃을 밟을까봐 잔디를 조심스럽게 밟으며 납골묘에서 어머니를 만나 한참서 있습니다. 아내가 사진 찍어 남기는 것에 정신을 차려 집으로 갑니다. “아버지 저희들 왔어요.” 크게 인사하고 건강은 어떠시냐고 안부를 묻습니다. 내일 아버지 모시고 병원에 가기로 동생과 일정을 이야기하고 있었기에 더 조심스럽게 묻습니다. “괜찮다”며 우릴 안심시키시며 하시던 일을 계속하십니다. 아마 옥수수를 심는 날인 모양입니다. 비닐 하우스 온실에서 미리 모를 부어 한 뼘 이상 큰 찰옥수수 모입니다. 옥수수 모가 한 경운기 바닥에 잔뜩이라서 걱정이 되었습니다. 심는 것도 문제지만 키우고 옥수수를 따고 넉걷이 할 때는 일이 또 많아집니다. 베고 걷고 갈아야 김장배추를 심게 되기 때문입니다.
일거리가 힘겹게 많은 거 아니냐고 쉬엄쉬엄 하시라고 참견을 좀 했습니다. “그래 알았다, 그래도 바빠야 잡념이 없어지지”라는 말에는 더 이상 할 말을 잃습니다. 먼저 가신 어머니, 함께 일을 맞들며 농사를 돕던 어머니 생각을 잊으려고 더 고난한 길을 택하시는 것입니다. 집앞 텃밭에는 넝쿨강낭콩이 대가리를 바짝 세우고 몸살 끝난 모습이고, 앙상하게 전지한 복숭아나무도 꽃을 달았습니다. 굵은 가지만 남기고 다 잘라준 포도 넝쿨이 겨우 시렁에 불안하게 붙어 있습니다. 겨울 지나고 그해에 나온 새줄기에만 포도가 달린다는 것을 아는 농부들의 포도사랑 법입니다.
지키고 지지하는 자녀들의 부모님 사랑하기
늘 두 분이 평생 일군 살림살이가 이제는 혼자만 남은 아버지에 대해서 자녀들이 초긴장입니다. 수시고 전화로 확인하고 안부를 물어 관심을 표명합니다. 장손인 아들 용기가 자주 할아버지를 찾아뵙는다고 동생이 대견해합니다.
아버지는 금년에 겨울에도 얼지 않는 온실 하우스를 지으시겠다고 말씀하셔서 우리 모두를 감사하게 했습니다. 커피나무도 심고 바나나도 심으시겠다고 했습니다. 파인애플 무화과를 심어서 겨울에도 자랄 수 있는 온도인 17도 이상을 유지하시겠다는 것이 당신 구상입니다. 삼중비닐하우스 온실입니다. 어머니의 가신 빈 자리를 메우고 두 분이 함께 사랑하던 자녀사랑이 이제 자녀들의 부모사랑으로 승화되는 날들이 계속 이어지길 기도했습니다. 자녀세대인 우리들도 그렇지만 손자녀 세대가 한마음이 되어 여섯 녀석이 매달 백여만원씩 통장에 보내고 어떻게 쓰셨는지를 확인하고 있다고 하니 돈이 아니라 손자녀 들의 관심에 대해서 감사하고 또 감사한 요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