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찬성 목사(브라질선교교회 담임)
브라질에 온 지가 지난 11월로 6년이 지났다. 배타고 이민 와서 평생 산 교포들에 비하면 별것 아니지만 그래도 일 세대 최장수(?) 주재원이었던 황재오 집사가 간 후 이제 ‘에헴’할 정도의 기간을 산 셈이다. 한국과 달리 모계중심사회의 흔적을 지닌 사회에서는 부모(父母)중에 어머니의 권한이 서류에도 고스란히 반영된다. 영주권에도 그렇다. 손자 보고도 남을 나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서류에 어머니 박아무개 하고 적는 난이 있고, 온갖 서류에도 그것을 요구한다. 다인종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참 매년 서류를 다시 하느라고 돈과 시간 그리고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었다. 일 년 파리 목숨과도 같은 기간만 허락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서류를 만드는데 몇 개월이 걸리니까 돌아서면 서류 만들기에 돌입하게 된다. 그것 때문에 안 가본 곳이 없다.
운전면허, CPF 그리고 영주권
매년 회의 때문에 한국에 나가면 이 일로 며칠은 허비해야 했다. 너희 나라에 와서 살지만 난 본래 범죄 경력 없는 선한 시민이었다는 무범죄 증명을 경찰서에서 발급받는다. 혼인관계 증명, 목사의 교단 파송증명, 졸업증명, 학위증명, 가족관계증명 등등 떼다보면 두터워지는 서류를 번역하고 공증 받는 절차는 돈과 시간이 많이 드는 과정이다. 그리고 양재동의 외무부에 가서 서류를 발급받고 아래층에서 공증 받는 시간도 만만치가않다. 그렇게 만들어서 브라질로 들고 오면 다시 포어로 번역공증과정을 밟아서 연방경찰서에 서류일습을 확인해서 제출하고 접수증을 받는다. 이 접수증은 대단한 효력을 지니고 있어서 마치 영주권을 대신하는 권세가 있다. 브라질에 오자마자 운전을 할 수 있도록 국제 면허를 브라질면허로 바꾸는 과정도 만만치가 않았다. 면허시험장에서 신체검사와 정신과 소견의 약식 시험을 치렀고 그 면허증은 대부분의 생활을 의존할 수 있는 증명이 되었다. 은행일도 마찬가지다. 면허증과 CPF를 갖고 통장 하나 개설하는 과정이 만만치가 않았다. 보증인도 필요하고 현금 없이 물건을 사고 결재하는 그런 카드와 할부를 할 수 있는 은행카드를 받는 과정도 힘이 들었다. 박동주 선교사가 프리미엄 고객이어서 우리에게도 프리미엄 고객이 되도록 도왔고 우릴 보증했다. 그래서 은행거래가 가능하게 되었다. 브라질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운전면허도 갱신했고, 은행거래도 프리미엄 고객이 되었고, 개인이름으로 핸드폰도 개설되어 사용 중이다. 그리고 최근에 영구영주권이 나와서 귀찮은 서류 만들고 공증받는 일은 이제 안 해도 이 나라에서 사는데 문제가 없어졌다.
선교사의 기본 덕목 영주권 만들기
내가 가족과 함께 브라질에 온 목적은 선교하는 일이다. 브라질에서 한인사회와 현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다. 한국인교회와 현지인 교회에서 복음의 역사가 일어나도록 선포하고 안내하고 인도하며 함께 할 수 있도록 공유하는 일이 목사의 역할이다. 이 일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한 여러 가지 과정 중에 영주권이 필요한 것이다. 영주권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의 파송장, 브라질교회의 위임장, 심지어는 병원에 심방할 때 접수처에 내면 환자를 면회할 수 있는 그런 증명도 있다. 그런 모든 서류나 증명은 사실 영주권이 기본이다. 그 영주권 중에 기간이 무한대인 영구 영주권(INDETERMINADO)을 오늘 받았다. 오늘 연방 건물 옆에 있는 화원에서 축화화분과 담쟁이 모를 샀다. 그리고 서류 만들기를 늘 돕고 후견인 노릇을 하는 정 집사에게 고맙다는 문자를 보냈다. 또한 아래층 담 벽에 담쟁이를 심으며 교회 담이 풍성해지길 기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