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그리운 어머니!
2020/05/14 20:28 입력  |  조회수 : 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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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수 목사(익산봉곡교회 원로)
 
어머니! 어머니!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으시지만 그래도 부르고 싶고 보고 싶은 분이다. 곁을 떠나신지가 벌써 수십 년이 흘렀지만 보고싶은 어머니시다.
 어려운 시대에 대 종가집 맏며느리로 시집오셔서 모든 궂은 일들을 마다하지 않고 꾸려나가셔야만 했던 어머니, 작은 체구로 그와 같은 일들을 감당하시기에 얼마나 힘이드셨을까! 시부모님과 세 명의 시동생과 10남매를 두시고 어려운 시대에 그 많은 식구들을 챙기셔야 했으니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겠는가? 전 후 대부분의 농촌은 끼니 걱정을 해야만하는 시절이었다. 가족들은 많고 그 많은 대 식구들의 먹거리를 책임지셔야 했으니 그야말로 초근목피로 생활을 하다시피 했으니 고달픈 나날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유복한 친정에서는 끼니는 걱정을 않고 지내셨는데 시집을 와서는 끼니를 걱정해야 했으니 얼마나 힘든 시집살이었겠는가? 그런 중에 종가집이니 일 년에 거의 매달 돌아오는 조상들의 제사를 준비해야 했고, 명절 때마다 가문의 사람들을 맞이해야 했고, 시부모님을 공경해야 했으니 시집살이가 만만치 않은 현실이었다.
 그런 중에 첫 째 아들을 종손이라고 어려운 시절에 힘들게 공부시켰지만 군대에 입대하여 군복무를 하다가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으니 그 충격이 얼마나 크셨겠는가? 말로다 표현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래도 남은 자녀들과 가족들이 있으니 다시 종부로서의 책임을 감당해야 했으니 삶의 고달픔이 엄청났을 것이다.
 1950, 60년 대의 농촌의 삶은 피폐하기 그지 없는 시절이었다. 더구나 어린 막내 아들이 펄펄 끓는 쇠죽솥에 빠져서 온 몸에 화상을  입었으니 그 핏덩이 아들을 살려보겠다고 병원시설도 없는 산골오지에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셨겠는가? 아마도 마음이 종이 쪽지였다면 모두다 갈래 갈래 찢어지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 어머니의 사랑과 헌신의 결과로 그 아들이 죽지 않고, 장애자가 되지 않고 살았으니 그러하신 어머니의 사랑을 받은 자로서 어찌 어머니가 그립고 보고싶지 않겠는가?
 막내 아들이라 중학교 시절까지 어머니의 품을 떠나지 못할 정도로 어머니를 의지했던 아들, 막내 아들이라고 더 사랑을 해 주셨던 어머니! 그러하신 어머니께 어머니 생전에 효도다운 효도도 재대로 한 번 하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떠나신 어머니! 어머니의 희생의 사랑 때문에 이렇게 살고 있고, 이제는 조금이라도 효도할 수 있는데 곁에 계시지 않으시니 너무 아쉽고 마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때늦은 후회는 아무런 소용이 없지만 그래도 후회를 하게된다. 어머니! 감사하고 사랑하고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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