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평 목사(서울기독대학교 총장/한국 예수사랑그리스도의교회 담임)
갈릴리 호숫가에서 생선이나 잡아서 생계를 유지하던 불확 무식하고 가난한 어부들이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했습니다. 그 놀라운 변화의 동인은 바로 성령의 오심, 성령의 능력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8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하신 그 성령이 약속대로 제자들에게 오신 것입니다.
첫째로 이 놀라운 사건이 생겨난 시기 언제인가를 생각해보겠습니다. 출애굽기 19장 16-18절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시는 장면은 사도행전의 성령강림의 장면과 흡사합니다.“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매우 크게 들리니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바람과 불 소리와 진동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입니다. 유대인이 율법을 받은 날인 오순절이 초대교회의 성령 강림절로 바뀐 것입니다. 오순절은 주님께서 당하신 유월절 수난과 부활에서 50일째 되는 날입니다. 주님의 승천 이후로는 열흘째 되는 날이 됩니다. 흔히들 믿는 대로 유대인들은 오순절을“유월절을 끝맺는 절기”로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더욱 중요한 의미를 생각나게 해줍니다. 만일 오순절이 유월절의 끝맺음이라면 유월절에 당하신 우리 주님의 희생이 성령 강림절로서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찍이 요한복음 기자는 1:16에서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고 하신 말씀 속에서 우리가 한 성전에 마음과 뜻과 정성으로 모여 기도할 때 하나님의 임재가 충만해지고, 우리 모두가 성령을 받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는 우리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저들의 영의 눈이 열렸음을 생각해보겠습니다. 본문 3절에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라는 이 말씀은 제자들이 바로 하나님의 성령의 임재를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을 보았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 말은 문자적으로는 “스스로 갈라지는 불의 혀 같은 것”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보다 정확합니다. 확실히 이 장면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처음에는 불의 혀같이 보이는 것이 일체로 나타났다가 순간적으로 여러 개로 갈라지며 그 자리에 모인 각 사람들 머리 위에 머무는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성령님이 불로 묘사된 것은 성경에 자주 나타나는 일입니다. 일찍이 세례 요한은 회개의 세례를 외치면서 예수님을 “불과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자”로 설명한 일이 있습니다. 에스겔 1장 13절의 타오르는 촛불이나 이사야 6장 7절의 “입술에 닿은 숯불”로도 표현하고 있습니다. 바람과 같이 터질 것 같은 충만함이 성령의 임재를 나타내는 것이라면 불로 나타난 이것은 그 성령의 강력한 Power, 능력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혀의 모양으로 나타난 것은 지혜와 지식의 성령이 우리의 입을 열어 그가 원하시는 것을 말씀하게 하는 성령의 역사를 표현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낙심하고 지친 이웃들에게 하나님의 권능과 위로와 사랑을 나눠 주는 일을 해야 합니다. 자신만 있고 사랑이 없는 성도는 마치 열기 없는 차가운 빛이 없습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을 세상에 베푸는 존재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죄악으로 오염된 세상을 정결케 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불은 태우는 속성이 있습니다. 즉 더러운 것을 태워 정결케 하는 것이 불입니다. 말라기 3:2-3에 그리스도가 강림하면 세상을 불로 정결케 하시리라고 예언했습니다. 성도들은 세상의 불의와 악을 허용하거나 방치하거나 그것들과 타협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불처럼 태우고 정결케 만드는 일을 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정으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성도들 치고 이런 류의 영적 경험을 크게 혹은 적게, 강렬하게 혹은 약하게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음을 명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성령충만할 때 일어나는 성도의 마음의 상태를 생각해보겠습니다. 주님께서 성령으로 우리 마음에 찾아오실 때 먼저 우리 마음속에 터질 것 같은 충만한 평화와 기쁨과 은혜를 경험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가슴은 불같이 뜨거워지는 감격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그 뜨거워진 가슴과 감격은 우리로 하여금 입을 열어 그리스도의 복음을 외치게 합니다. 믿음을 간증하게 합니다. 영혼을 사랑하여 구원하겠다는 열정을 갖게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령 충만의 참된 개념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충만하다’는 말은 마치 우리가 마시는 컵에 물이 찰랑찰랑 넘칠 정도로 차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오순절 날 성령 세례를 받고 성령 충만한 성도들이 각 나라 방언으로 그리스도를 전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그 영혼에 예수 그리스도와 진리로 충만하게 차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유대교의 핍박과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 속에 충만한 그리스도와 복음의 진리를 각 나라에서 온 유대인들에게 담대히 전한 것입니다. 즉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상태가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곧 성령충만의 참모습입니다. 나의 정욕과 세상에 대한 탐심 대신 그리스도와 그 진리가 내 영혼에 차고 넘치도록 충만한 상태가 바로 성령 충만한 상태입니다. 그리스도와 그 진리를 전하고 행하려는 강렬한 의지에 붙들려 있는 것이 성령충만한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성령을 성도에게 부어 주신 궁극적인 목적은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게 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성령충만한 풍성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능력 있는 삶을 살기 원하십니다. 승리하는 삶을 살기 원하십니다.
넷째로, 성령충만함이란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가를 생각해보겠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이르되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하더라”는 본문 13절은 어떤 이들이 성도들이 방언하는 것을 보고 술에 취한 것이라고 조롱하는 내용입니다. 이 ‘어떤 이들은’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과 유대 땅에 사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제자들이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외국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알아듣지 못했으므로 그들은 방언을 하는 제자들을 술에 취해 지껄이는 사람들로 오해하여 조롱한 것입니다. 이렇게 유대 사람들이 제자들로 하여금 술 취했다고 조롱한 것은 그들의 마음의 강팍함을 드러낸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외국 방언을 말하는 것을 술 취했다고 오해한 것은 히브리말이나 헬라어 정도만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당연했는지도 모릅니다.
성령은 인격이십니다. 성령은 우리를 지배하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성령은 우리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어 우리의 전 존재와 인격과 삶을 인도하시고 변화시키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에게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얼마나 놀라운 경험인지 모릅니다. 그것은 얼마나 감격적인 능력인지 모릅니다. 이 놀라운 성령의 충만한 삶이 여러분들 매일의 생활 속에서 풍성하게 이루어지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오순절 무리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결과로 나타난 첫 번째 은사는 무엇입니까?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고 4절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방언의 특별한 은사가 저들에게 나타났습니다.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저들은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당장 나가서 복음을 전해야 했습니다. 저들이 성령 충만을 받은 것은 바로 주님의 말씀대로 “땅 끝까지 증인이 되기 위한”것이기 때문입니다. 오순절의 경험은 바로 오늘 우리 교회와 우리 성도들의 경험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교회가 이 세상의 그 어느 교회보다 더 능력 있고, 변화를 이루고, 승리를 경험할 뿐만 아니라 세계를 향한 그리스도의 교회의 선교적인 사역을 감당하는 복된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