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광 목사(World Share USA)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는 빅토리아 여왕 시대 가장 성공한 극작가로 뽑히는 작가입니다. 그는 시와 소설 그리고 동화까지 다양한 분야에 걸작들을 남긴 좋은 작가입니다. 그는 좋은 집안에서 태어난 엄친아입니다. 그의 아버지, 윌리엄 와일드 경은 아일랜드의 대표적인 안과, 비과, 외과의사이며, 고고학과 민속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졌습니다. 또한 그는 박애주의자로, 트리니티 칼리지 뒤에 위치한, 링컨 플레이스 내, 도시 빈민을 위한 무료 진료소를 운영한 것으로 유명하였습니다. 그의 할머니 제인 프란체스카 엘지는 성공적인 작가이며, “스페란차’로 유명한 아일랜드 민족주의자였습니다. 어머니도 당대 아일랜드의 유명인사였습니다.
이런 명문 가문 출신에다 걸출한 글 솜씨를 자랑했던 오스카 와일드는 외모조차 탁월했다고 전해집니다. 191cm에 달하는 큰 키에 준수한 외모를 가진 오스카 와일드는 교만한 문학인으로 오해 받을 정도로 늘 자신감에 차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오스카 와일드는 자신을 남과 다른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해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자신에게 ‘평범’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1855년 6월 와일드 집안은 그 당시 유행하던 거주 지역인 1번 에리온 스퀘어로 이사하였습니다. 오스카 와일드는 9살때까지 집에서 교육을 받았고 그 이후는 페르마냐, 에이스킬렌에 있는 포토라 왕립 학교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포르타 왕립학교를 졸업한 후, 와일드는 1871년부터 1874년까지 더블린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고전 문학을 공부하였습니다. 그 후 1874년부터 1878년까지 옥스퍼드 대학의 모들린 칼리지에서 수학했습니다. 재학 중에 페이터(Pater)의 유미주의와 러스킨(Ruskin)의 예술관에 강한 영향을 받아 탐미파의 주창자가 되었고, 뛰어난 기지와 재기를 마음껏 구사하는 시인으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와일드는 문학의 여러 분야에 걸쳐 작품활동을 했습니다. 그는 시인으로, 극작가로 그리고 소설가로 다양한 작품을 남겼고 그 작품들로 두각을 나타낸 탁월한 작가입니다. 시(詩)에서는 옥스포드 재학시절부터 재기 넘치는 작품을 발표했고, 극작(劇作)에서는 1891년에 “살로메”를 발표해 소위 ‘세기말’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인정받습니다. 살로메는 지금까지 자주 무대위에 올려지고 아주 호평을 받습니다. 물론 살로메 외에도 호평 받는 좋은 작품들을 많이 남겼습니다.
그러나 오스카 와일드는 소설가로서 가장 큰 명성을 떨쳤습니다. 소설(小說)에서는 1891년 출간한 장편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이라는 걸출한 장편 소설을 남겼습니다. 줄거리는 주인공이 쾌락주의를 실천에 옮기며 타락과 악행을 거듭하다가 파멸을 합니다. 동성애를 조장하는 듯한 뉴앙스가 선명하게 보이는 문제작입니다. 훗날 비평가들이 쾌락주의와 유미주의를 고취하는 소설로 정리하지만 아주 맹랑한 소설입니다.
소설가로서 오스카 와일드는 그 외에도 많은 단편 소설들을 남겼습니다. 와일드는 1888년에 “행복한 왕자와 다른 이야기” 1891년에 “석류나무의 집”이라는 두 종류의 단편집을 냈는데 전자에 5편, 후자에 4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오스카 와일드의 단편집을 흔히 동화라고 부릅니다. 감동과 교훈을 주기 위한 작품들로 이해되기 때문입니다.
1888년에 오스카 와일드는 “행복한 왕자와 다른 이야기”라는 단편집을 냈었고 ‘행복한 왕자’는 그 단편집의 대표작입니다. 행복한 왕자는 평이한 내용으로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달하는 탁월한 작품입니다. ‘행복한 왕자’는 19세기 말 물질주의가 만연한 영국 사회에 사랑의 고귀함을 강조하는 이상주의를 아름다운 문체로 그려낸 작품입니다. 비평가 월터 페이터는 이 작품을 동화 중의 최고의 걸작이라고 격찬합니다.
“행복한 왕자(Happy Prince)” 내용은 이렇습니다. 어느 가난한 도시 중앙에 왕자의 동상이 서 있었습니다. 이 왕자의 동상은 아주 화려했습니다. 몸은 금으로 입혔고, 두 눈동자는 사파이어, 허리에 찬 칼자루에는 커다란 루비가 박혀 있었습니다. 행복한 왕자 동상 전신이 보석들이 가득했습니다.
어느 늦가을 밤, 남쪽나라를 향해 가던 제비 한 마리가 날아와 왕자의 발 사이에 잠시 쉬고 있었습니다. 친구들은 이미 6주 전에 남쪽으로 떠났지만 실연의 아픔 때문에 떠나지 못하고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제비는 여름에 갈대와 사랑에 빠졌었는데 실연하고 남쪽으로 향하는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동상 발아래 앉은 제비 머리 위로 물방울이 떨어졌습니다. 제비는 그것들이 왕자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임을 발견합니다. 제비는 의아했습니다. 그래서 “왕자님, 왜 울고 계세요?”라고 묻습니다. 왕자는 “내가 궁전에서 살 때는 눈물을 몰랐는데 내가 죽어, 이곳에서 세상을 보니 불쌍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비로소 알게 되었단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서있으니, 그들을 도울 수가 없구나.”
왕자는 칼자루에 있는 루비를 빼어 가난한 엄마와 병든 아들의 집에 갖다 줄 것을 제비에게 부탁했습니다. 제비의 동료들은 이미 남쪽으로 떠난 늦가을입니다. 제비는 갈 길이 바빴지만, 왕자의 간곡한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제비가 심부름을 합니다. 심부름을 마치고 돌아온 제비에게 왕자는 또 눈동자에 박혀 있는 사파이어를 가난한 예술가에게 갖다 주라고 부탁합니다. 제비는 또 다시 왕자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예술가에게 사파이어를 주고 돌아옵니다. 돌아온 제비에게 왕자는 또 다시 자신의 다른 눈동자를 가난한 성냥팔이 소녀에게 주라고 부탁합니다. 제비는 또 갑니다.
왕자의 부탁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왕자는 자신의 몸에 입혀진 금을 벗겨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라고 부탁합니다. 이에 제비는 왕자의 몸에 입혀진 금을 벗겨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줍니다.
어느덧 거리에는 눈이 내렸지만 제비는 왕자를 홀로 두고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기력을 다한 제비는 추운 날씨를 이기지 못하고 왕자의 볼에 입을 맞추고 왕자의 발밑에 떨어져 죽었습니다. 그 순간 왕자의 몸에서도 무엇인가 깨지는 소리가 났습니다. 그것은 납으로 된 왕자의 심장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흉물이 되어버린 왕자의 동상을 무너뜨리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 깨진 왕자의 심장과 죽은 제비를 하늘나라로 가져오도록 했습니다. 하나님은 왕자와 제비를 인정하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