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평 목사(서울기독대학교 총장)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어려움을 겪을 때도, 넘어질 때도 있습니다. 이런 때에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주님의 종들에게 상담도 하지만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예수 믿어도 별거 아니구나, 낙심하고 하나님께 실망하고 시험에 빠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을 우리의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우리보다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세 가지의 교훈으로 볼 수 있음을 깨달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로, 우리의 인생사에는 순간순간마다 하나님의 섭리가 역사하고 있음을 생각해보겠습니다. 11절을 보면 “모세의 장인 호밥의 자손 중 겐 사람 헤벨이 떠나 게데스에 가까운 사아난님 상수리나무 곁에 이르러 장막을 쳤더라”라고 했습니다. 헤벨이라고 하는 사람이 자기 족속을 떠나 게데스에 가까운 곳으로 이주해 온 스토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헤벨이 자기 종족의 정착지인 유다 황무지를 떠나 이곳까지 이주해 오게 된 동기는 분명하지 않지만, 본문 17-24절에 기록된 이스라엘 백성과 가나안 백성과의 전쟁이 헤벨의 아내인 야엘에 의해 결말지어지는 것을 보면서 성경의 기록이 얼마나 치밀하며 동시에 하나님의 섭리가 얼마나 위대한가를 깨닫게 됩니다. 헤벨의 이주는 결국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성취하는 방편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헤벨의 거주와 헤벨의 이주가 우연이 아니었다면 우리의 현재 거처도 역시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우리의 삶 또한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아래 있음을 믿습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하나님의 임재 속에 하나님의 섭리 속에 살아왔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남은 생애도 하나님의 임재의 확신을 가지고 담대하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전도서 7:14에 전도서 기자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장래사를 알지 못하게 하셨으므로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인생사에서 어떤 일을 만나든지 로마서 8:28의 바울의 고백처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라는 말씀을 믿으면서 항상 선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가운데 소망을 품고 주어진 길을 열심히 걸어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우리 성도들은 우리의 겉모습이 아무리 초라해도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자들임을 알아야 됨을 생각해보겠습니다. 사사기 4:12-13을 보면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이 다볼 산에 오른 것을 사람들이 시스라에게 알리매 시스라가 모든 병거 곧 철 병거 구백 대와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백성을 하로셋학고임에서부터 기손 강으로 모은지라”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이스라엘 군대는 다볼 산에 시스라의 군대는 기손강 유역에 각각 진을 치고 대치하고 있는 양쪽 군대의 모습을 상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군대의 모습은 지난 이십 년간 가나안 왕 야빈의 압제 속에서 착취와 고통을 받아온 사람들이므로 그들의 옷은 남루할 대로 남루해졌을 것이고, 갖은 노역으로 인해 군사훈련은커녕 변변한 무기조차도 없는 오합지졸이었을 것입니다. 반면 시스라가 이끄는 군대는 지배 국가의 군대답게 훈련도 잘 받았을 터이므로 질서 정연했을 것이고, 빛나는 갑옷에 무기 또한 최고의 수준이었을 것입니다. 당시 이 전투적 상황을 역사가 요세푸스는 ‘포위당한 바락이 낙심하여 안전한 장소로 도망갈 길을 찾기에 고심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14-15에 보면 이때 드보라는 바락에게 “일어나라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네 손에 붙이신 날이라”고 명령합니다. 바락이 여사사 드보라가 전해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일만 명을 데리고 다볼산을 내려가니 여호와께서 바락의 앞에서 시스라와 그 모든 병거와 그 온 군대를 칼날로 쳐서 패하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음으로 순종할 때에 오합지졸의 무리를 가지고도 천하무적의 철병거로 무장한 시스라의 군대를 완전히 격파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 성도들도 언제나 세상을 육신의 눈이 아닌 영적 눈으로, 볼 수 있는 믿음을 지니고 우리보다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봄으로써 이 땅 위의 육적으로 초라한 우리가 영적 싸움에서 늘 승리하는 삶을 사시는 우리 예수사랑교회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성도는 이 세상을 살면서 사람들과의 관계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먼저 생각해야 함을 생각해보겠습니다. 17절을 보면, 이스라엘과의 기손 강가 전투에서 대패한 시스라는 간신히 목숨만을 건져 겐 족속 헤벨의 아내 야엘의 장막으로 피신하였습니다. 시스라가 헤벨의 장막을 도피처로 삼은 이유는 평소 헤벨이 가나안 왕 야빈과 친분관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야엘이 난처한 처지에 빠졌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남편인 헤벨은 이스라엘의 대적인 가나안 왕과 친분 관계가 있었던 반면 남편의 동족인 겐 족속은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과 친분 관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21절을 보면, 시스라가 우유를 마시고 깊이 잠이 들었을 때, 야엘이 장막의 말뚝을 취하여 그의 관자놀이에 박으매 시스라가 죽었습니다. 어떻게 야엘은 적군의 장군을 죽일 용기가 있었겠습니까? 대답은 앞서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야엘의 담력은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환경이나 여건에서 용기가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용기와 담력은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가능합니다. 주님이 주신 믿음과 신앙에서 용기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태초부터 지금까지 진행되어 온 인류의 역사는 이렇게 선언된 하나님의 결정을 한 치도 벗어나 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사단은 그동안 하나님의 이러한 결정을 뒤집고자 온갖 방법을 동원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이제 사단은 잠시 후면 최후 승리를 위해 이 땅에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결박되어 영원한 멸망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땅에서 잠시 어려움을 겪고 순간적인 패배를 경험한다 할지라도 결코 좌절하거나 낙심하지 맙시다. 우리 성도의 승리와 사단의 패배는 그 무엇보다도 번복할 수 없는 하나님의 결정 즉 하나님의 섭리로써 언젠가 돌에 새겨진 말씀처럼 일점일획도 변화 없이 완전히 성취될 것임을 믿고 하나님의 섭리 속에 순종하므로 이 세상에서 복 받고 영적 전쟁에서도 승리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결론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신앙적 결단과 정비례 합니다. 그런데 신앙적 결단이 없이는 내일이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의 본문은 하나님께서 한 여인을 통해 압제자를 제거하심으로 이스라엘에 완전한 승리를 주신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말씀들을 읽으면서 우리가 대적을 이기지 못하는 것은 그 어떤 강력한 무기나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불신앙 때문임을 알아야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야엘과 같이 확고한 신앙을 가지고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순종하는 자를 일으켜 세우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통해 형통하는 삶, 승리하는 국가를 건설하도록 최선을 다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