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명 목사(대한교회 담임)
오늘은 하나님께서 다윗 왕이 솔로몬을 왕으로 삼고 마지막 유언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시면서 우리와 자손들이 이렇게 살도록 하십니다.
1. 왜 하나님께서 다윗의 다음 왕을 솔로몬으로 삼으셨을까요?
죄에 대한 용서와 축복입니다.
삼하 12:24 “다윗이 그 처 밧세바를 위로하고 저에게 들어가 동침하였더니 저가 아들을 낳으매 그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를 사랑하사”
삼하 12:25 “선지자 나단을 보내사 그 이름을 여디디야라 하시니 이는 여호와께서 사랑하심을 인함이더라”
솔로몬은 다윗의 부하 우리아 장군의 아내 밧세바 사이에 난 아들입니다. 다윗은 밧세바와 간통하고 임신하여 그 일이 탄로날 것 같아, 남편 우리아를 죽게 했고 결국 이 일로 태어난 아이는 죽었습니다. 이 일로 다윗 왕은 침상이 썩도록 눈물로 회개하여 용서받았고 두려움과 죄로 떨고 있는 밧세바를 위로하시고 선물까지 아들을 주시고 그 이름을 솔로몬 여디디야라 하셨습니다. 솔로몬은 살렘이라는 뜻으로 평화를 상징하고 여디디야는 하나님의 사랑을 입었다는 뜻입니다.
대상 22:9 “한 아들이 네게서 나리니 저는 평강의 사람이라 내가 저로 사면 모든 대적에게서 평강하게 하리라 그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저의 생전에 평안과 안정을 이스라엘에게 줄 것임이니라”
이처럼 하나님께서 다윗 왕에게 솔로몬 아들을 주셔서 죄에 대한 용서와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솔로몬을 축복하셨습니다. 이 일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셔서 우리 죄를 용서해주시고 사랑과 축복을 주신 모습입니다.
2. 다윗 왕이 평생에 갖고 있던 소원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성전을 지어드리는 일이었습니다.
사무엘하 24장을 보면, 다윗 왕이 인구 조사를 하는 범죄를 하고 그 벌로 이스라엘 백성이 전염병으로 하루에 7만명이 죽자, 회개하며 간구할 때 하나님께서 가나안 여부스 족 사람 아리우나의 타작마당에서 예배를 드리라고 하셨고 그 예배를 받으셔서 전염병을 그쳐 주셨습니다. 그 때 다윗이 외친 말이 역대하 22장 1절입니다.
대상 22:1 “다윗이 가로되 이는 여호와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이스라엘의 번제단이라 하였더라”
그리고 이 곳에 하나님의 성전을 지어드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너는 전쟁을 많이 해서 내 집을 지을 수가 없다. 그 대신 네 아들 솔로몬에게 짓게 해주겠다. 네 아들에게 내가 평안을 주고 주변 모든 나라와 화평케 해주겠다”하셨습니다. 다윗 왕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아들 솔로몬이 하나님의 집을 지을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재료를 다 준비해주며 아들에게 내 마지막 소원은 하나님 집을 지어드리는 것이니 꼭 지어달라고 유언을 했습니다.
대상 22:6 “다윗이 그 아들 솔로몬을 불러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전을 건축하기를 부탁하여”
3. 그럼 왜 다윗 왕이 하나님의 집을 지어드리려고 했을까요?
아들 솔로몬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축복받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대상 22:11 “내 아들아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며 네가 형통하여 여호와께서 네게 대하여 말씀하신 대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며”
대상 22:12 “여호와께서 네게 지혜와 총명을 주사 너로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시고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을 지키게 하시기를 더욱 원하노라”
지금 다윗 왕은 하나님께로 갑니다. 그 동안 살아온 모든 일생을 뒤돌아 봅니다. 목동이었던 자기를 왕으로 삼아주시고 죽을 죄를 지은 자기를 용서해주시고 수많은 전쟁에서 보호해 주시고 큰 나라를 만든 것이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알았습니다. 다윗 왕은 사람의 일생의 행복과 불행이 모두 하나님께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자기 아들과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않는 길은 하나님의 집을 지어드려 그 곳에서 예배하며 말씀을 듣고 후손들이 축복받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지금 한국에서는 젊은이들 사이에 미래를 어둡게 만드는 악한 일들이 번지고 있습니다. ‘이태백’이라는 말은 “이십대 태반이 백수 건달”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더니 이제는 ‘이구백’이랍니다. “이십대의 90%가 백수”라는 말입니다. 최근에는 ‘십장생’이라고 하여 “십대들도 장차 생지옥이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런 말들이 우리 자녀들을 서서히 죽게 합니다. 이런 일들이 남의 일입니까? 내 자녀는 다 커서 괜찮습니까? 손자, 손녀는 모르겠다는 것입니까? 오직 우리의 자녀들을 살리는 길은 하나님의 집에 있게 하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 성도님들께 너무 감사합니다. 교회가 모든 시설을 다 갖추어서 우리 아이들이 언제든지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고 놀고 밥먹고 참 좋습니다. 교회는 마치 산부인과 병동과 같아야 된다고 합니다. 새생명이 태어나는 소리가 여기 저기서 터져 나와야 합니다. 지금 식당 위쪽에 학생부 예배실을 새롭게 꾸미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바닥에 비닐 장판을 해달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신발을 벗고 예배드리기 원해서입니다. 때로는 기도드릴 때 바닥에 엎드려서 기도하기 위해서 랍니다. 참 내 자신이 목사로서 부끄러웠습니다. 이런 아이들을 보면서 우리는 마음이 아파야 합니다. 저는 우리교회가 이만큼 은혜를 받고 평안한 있는 이유는 우리 자녀들이 모두 믿음이 있고 진실한 기도를 드리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숨어서 하나님을 사랑하며 교회 가족들을 돌보는 성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내려놓음’이라는 책을 쓴 이용규 선교사가 2005년 몽골 베르흐 지역의 예배 처소에서 예배드리던 중에 일어난 일이 쓰여 있습니다. 벌러르라는 자매가 예배 시간에 땀으로 뒤범벅이 되어 교회에 들어왔습니다. 그녀는 기도를 통해 몇 달 전에 듣지 못하던 귀가 열린 자매입니다. 예배 몇 시간 전에 소를 잃어버려서 소를 찾으러 뛰어다니다가 예배 시간이 임박한 것을 알고 소를 내버려두고 예배를 드리려고 들판을 가로질러 달려온 것입니다. 그때 이용규 선교사는 하나님께 “그녀가 소가 아닌 예배를 택한 그 믿음의 결단을 부끄럽게 하지 말아 달라고 그 자매가 소를 다시 찾을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시며,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자기 힘을 의지하다가 안 되면 자신의 실패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다가 실패한다면 하나님의 명예에 먹칠하는 것이라고 선포하고 기도했습니다. 예배를 마치자마자 밖에서 소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잃었던 소가 집이 아닌 예배 처소를 먼저 찾아온 것입니다. 소가 아닌 예배의 기쁨을 선택한 소녀는 예배와 소, 두 가지를 함께 얻었습니다. 먼저 믿은 우리 중에는 소 대신 예배를 택하는 믿음이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묻고 싶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언제나 하나님을 선택해야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