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 목사(한마음사랑의교회)
사람들 가운데는 유쾌 지수를 최고로 높여주는 사람 그 사람 때문에 모두가 즐거워할 수 있고 상쾌하고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능률적으로 잘되는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반면 불쾌지수를 높여주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목욕탕처럼 덥게 하는 사람, 추수할 것은 많고 시간은 없고 날씨는 더운데 오히려 일하는 사람들의 불쾌지수를 높여주는 사람, 기분이 좋았다가도 그 사람만 보면 갑자가 더워지고 열 받게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더운 여름을 더욱 덥게 하는 그야말로 불쾌지수를 최고로 높이는 사람입니다.
1. 보내신 자를 위해 추수하는 날에 얼음냉수 같은 충성된 사자들이 되라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속에서 우리는 이 땅에 하나님의 자녀들로 보내졌고 교회의 일군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하나님의 사랑을 만끽하며 보내신 이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하는 소명의식이 있을 때 비로소 헌신할 수 있고 충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조선 영조 때의 암행어사 박문수는 겉보기에는 행색이 초라하고 남루하기 때문에 때로는 사람들이 무시하고 조롱하기도 하고 했지만 그 가슴 속에 있는 마패를 꺼내드는 순간 모든 사람이 그 앞에 엎드릴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우리에게 남들이 가지고 있는 재산이 없어도 남들이 가지고 있는 학식과 명예가 없어도 우리의 가슴속에 새겨진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너는 내 사람이다. 너는 내 사자이다. 너는 내 자녀이다. 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마패가 있기 때문에 보내신 자를 위해 충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기독교 역사를 이끌어왔던 수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조건이 화려하고 외모가 뛰어난 어떤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지금까지 2000년 기독교 역사를 이끌어 왔던 믿음의 사람들은 그 심장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가 새겨져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마패를 가졌던 용기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하나님의 어사로서 지금까지 뿌린 피와 땀과 눈물로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이 복음이 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2. 자기 직분에 충성하라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4:2)고 했습니다. 자기가 맡은 일을 충성해야 합니다. 교회에는 직분이 있고 그 직분에는 반드시 직무가 있습니다. 목사와 교사, 장로, 집사, 권사 등의 직분이 있습니다. 각각의 직분과 직무에 충성을 다해 그 직무를 감당할 때 우리 주님께 충성된 사자가 되는 것입니다.
다윗왕이 아둘람 굴에 있었을 때의 일입니다(대상11:15~19). 그곳은 물이 좋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왕은 블레셋 군대가 진치고 있었던 자기 고향 베들레헴 성문 곁에 있는 시원하고 맛있는 우물물을 마시고 싶어 했습니다. 그때에 다윗을 모시고 있던 세 용사는 블레셋 군대를 돌파하고 지나가서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길어가지고 다윗에게로 왔습니다. 다윗왕은 그들의 목숨을 건 충성스러운 행동을 보고 그 물을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다윗은 “이 사람들의 피를 어찌 마시리이까”(대상 11:19) 하면서 하나님께 부어드렸습니다. 세 용사는 충성된 사자들이었습니다.
3. 좋은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 되라.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사52:7) 영혼 구원의 열매를 바라보며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 구슬방울 같은 땀을 온 몸에 적시며 충성하는 사람들. 이들이 충성된 사자들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말에 동요도 되지 말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지도 말고 오직 말씀을 따라 흔들림 없이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 가운데 아버지가 나귀를 타고 아들이 고삐를 잡고 가는 것을 보고 동네사람들이 뭐라 그랬어요? “아이고, 어린 아들을 고삐를 잡게 하고 자기가 떡 타고 가는 저런 나쁜 애비가 다 있냐?” 그 다음에는 애를 태우고 자기가 고삐를 잡았더니 “저런 불효자가 있나, 아버지를 저렇게 고삐를 잡게 하다니”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했을까요? 할 수 없이 둘 다 나귀를 탔더니 “저런 나쁜 놈들이 있나, 저 어린 나귀를 두 사람이 타고 가다니” 그래서 할 수 없이 나귀를 둘러메고 갔다고 하잖아요. 여론이란 항상 이런 것입니다.
진정한 평가는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평가입니다. 충성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판단하시는 대로 그것만이 옳은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 할 것도 아닙니다. 남보다 땀을 더 흘렸다고 그것가지고 내가 하나님 앞에 충성을 논하려고 하지 말아야합니다. 다른 사람보다 좀 더 많은 시간을 바쳤다고 그것만으로 내가 스스로 충성을 평가 받으려고 하지 말아야합니다. 그 모든 것들이 충성으로 인정받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억울하다 생각지도 말아야합니다. 하나님만이 판단하실 일이기 때문입니다. 주님만 바라보시고 충성을 다하십시다.
결론
본문의 시원하다는 말은 ‘딱 좋다’는 뜻입니다. 뜨거운 온천물에 몸을 담그며 시원하다고 말하는 것은 물의 온도가 차다, 뜨겁다는 말이 아니라 ‘좋다, 딱 좋다’는 표현입니다. 답답한 마음이 풀릴 때 ‘시원’이요, 간지러운 곳을 긁어주는 것이 ‘시원’입니다. 더부룩 하던 속이 뻥 뚫림이 ‘시원’이고, 미뤘던 일들이 잘 끝마쳐지는 것이 ‘시원’입니다. 앞에 가림이 없이 전망이 확 트임이 ‘시원’이요, 거칠 것이 없이 달리는 것이 ‘시원’입니다. 더울 때는 차가운 것이 ‘시원’이고, 추울 때는 따뜻한 것이 ‘시원’입니다. 바울의 서신에 보면 시원하게 하는 사람에 대한 언급이 있다. “그들이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하게 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사람들을 알아주라”(고전16:18)고 하였습니다. 답답하고, 짜증나고, 열 받는 일이 많은 세상, 연일 계속되는 무더운 날씨 속에서 얼음 냉수 같은 사람이 그립습니다.
주님은 세상에서의 자신의 존재 이유를 섬김을 받으려 하심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왔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그 분의 모습을 본받아 서로 섬김으로 서로에게 기쁨이 되고 우리를 보내신 이에게 모든 영광을 돌려드리십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