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숙자 선교사(베데스다교회)
다는 아니지만 윗 어른들에게 “가만히 계세요 모르셔도 돼요 우리가 알아서 해요”라는 말을 우리는 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보다 더 두려운 것은 “가만히 계셔요 모르셔도 돼요 우리가 알아서 해요”라는 말을 혹시 하나님 아버지께 한 적은 없는지...
육신의 부모나 윗 어른들이 나이 많아 눈이 흐리고 귀가 어둡지만 이런 말을 들을 때 그들은 잊고 살았던 나이를 다시 떠 올리며 탓할 수 없는 세월 앞에 속으로 이렇게 말할것이다. “저희들은 안 늙어? 너희들도 자식들에게 똑같이 겪어봐라”라는 말을 삼키며 어떤이는 자식에게 “너도 네 자식들에게 똑 같이 받게 될 것이다”라며 해서는 안되는 순간적인 섭섭함을 참지 못하는 모습도 보았다. 지금도 한인 교민사회에서는 그의 이름을 대면 거의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분으로 K씨 성을 가진 90이 가까운 부부를 가끔 커피집에서나 식사하실 때 만나곤 한다. 우리가 그분을 알기 시작한 40여년 전부터 자신을 낳지도 않은 어머니에게 얼마나 지성으로 섬기며 효도하는 모습을 자녀들에게 보여왔던 분이다.
우리 부부도 젊은 시절 종종 그 댁에 초청을 받아 갔을 때 그리고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할때면 그 부부의 효도하는 모습에 늘 감동을 했었다.그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지금은 90이 가까워 오는 노 부부가 된 그분들이 자녀들의 극진한 효도를 받는 모습을 보면서 자녀들에게 본을 보였던 그들의 삶이 세대만 바뀌였을 뿐 그대로 재현됨을 보면서 “나를 본 받으라”던 신앙의 선배 바울 사도를 생각나게 한다. 도덕 위에 우뚝 선 기독교이고 보면 영적 삶 또한 다름이 없으리라. 아이들을 때려서라도 그 영혼이 음부에 빠지지 않게 하라는 성경말씀이 생각난다. 우리 나이 또래들은 신혼시절에는 시 부모 앞에서 자신의 아기를 마음대로 사랑할 수도 없었고 내가 낳은 아이라도 어른이 넘겨주셔야만 품에 안고 다른 장소로 가서 비로써 아기와의 사랑에 빠져보곤 했었다.
목회 하던 중에 젊은 부부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 중에는 웬만한 일은 잘 이겨 내다가도 아이들의 다툼이 원인이 되면 아주 쉽게 등을 돌리고 교회를 떠나는 모습들을 보며 마음이 아파야 했던 일이 비일비재였다.자식은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요 세상을 사는 동안 잠깐 우리에게 맡겨주셨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알면서도 재산이든 자식이든 “내 껏이야”라는 집착에 빠져 어린 아이들 처럼 미숙의 옷을 벗지 못한 채.... 아브라함도 그의 실수 중 한 가지를 꼬집어 본다면 경수가 끊어져 죽은 태와 같은 아내 사라의 태를 여시고 이삭을 주신 하나님의 능력과 축복 앞에 얼마나 감동하며 감사했을까만 세월이 갈수록 아이가 자라 재롱을 부릴 때 100세에 얻은 아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았을터! 이삭에게 푹 빠져버린 아브라함! 후에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했던 그의 심경을 나름대로 묵상해 보았다. 100세의 아들을 얻고 입술과 마음으로 다 표현할 수 없었던 하나님을 향한 감격과 감사와 찬양이 눈에 보이는 아들 이삭과 그 사랑스런 이삭을 주신 하나님과의 저울에서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의 무개가 쳐저 버린 것을 깜빡 했던 어느날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추상같은 명령에 소스라치게 놀랬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보다 자신이 눈에 보이는 아들 이삭에게 푹 빠져있던 자신을 발견했을 것이다.
하나님 앞에 얼마나 부끄러웠을까? 남 모르는 회개의 눈물을 흘렸으리라 생각한다. 모리아를 향해 사흘 길을 가는 동안 그는 어떻게 한 마디 말도 없이 침묵할 수 있었을까? 침묵할 수 있었던 이유가 혹 잠시라도 이삭을 하나님 보다 더 사랑했다는 아픔! 그런 이유는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내 평생 사는 동안에 이와 같이 유사한 일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아버지 나는 요것 밖에 안돼요” 하면서 회개의 눈물을 흘린 때 자신을 보면 어느새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탐심으로 우선 순위는 바뀌어 있고 다시 이삭을 드리던 아브라함 처럼 모리아를 향한 사흘 길에 서 있더란 말이다. 진정한 회개의 눈물이 있는 자신의 눈에 자신이 보이는 자는 입술을 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옥합을 깬 마리아가 왜? 자신을 조롱하고 무시하고 비웃는 제자들 앞에서 침묵할 수 있었느냐고 묻는다면 그녀도 아마 이렇게 대답 했으리라.”나 자신이 보이니까...내가 어떤자인 줄을 아니까...”라고죽은 개 같은 나를 왕자의 하나처럼 회복시키신 하나님 앞에 므비보셋 처럼 그분 앞에 무슨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포기한 아브라함에게 이제야 네가 나를 경외 하는 줄을 알았다는 놀라운 칭찬도 받았지만 “이삭을 내 놓으라”는 불호령이 떨어젓던 것도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