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용주 목사(봉헤치로 제일교회 담임)
1. 깊은골에서
성큼걸이 아라고른은 프로도와 일행을 ‘깊은골(Rivendell)’로 데려간다. 그곳은 ‘바다 동쪽 최후의 아늑한 곳(『반지의 제왕』 제 2권 1장 23쪽)’이었는데, 그 옛날 요정(엘프)와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중보 한 뱃사람 에아렌딜의 아들 엘론드가 다스리는 곳이었다. 가는 도중에, 일행은 악마 사우론이 보낸 흑기사들에게 쫓기기도 하고 다치기도 하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뜻밖에 나타난 여러 도움의 손길 덕분에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었다.
프로도는 ‘깊은골’에서 아라고른의 또다른 면모를 본다. 비로소 서부 누메노르인들의 대왕 엘렌딜의 후손다운 면모가 그에게서 드러났던 것이다. 그래서 왜 그리도 햇빛에 시커멓게 그을린 이상한 모습을 하게 되었는지, 왜 그리도 수상쩍게 보이는 행동을 하였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아라고른은 보통 사람이라면 엄두도 내지 못할 임무를 온 힘을 다하여 수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깊은골’에서 열린 마지막 백색 회의에서, 자신을 의심하는 곤도르 섭정의 맏아들 보로미르에게 자기 자신에 대해 하는 말을 들어보자.
“나로서는 당신이 의심하는 것을 이해할 만도 하오. (…) 위엄 있게 조각되어 있는 엘렌딜이나 이실두르의 모습과는 너무도 닮은 데가 없으니 말이오. 나는 이실두르의 후손일 뿐 이실두르가 아니오. 나는 오랜 세월 많은 고생을 겪었소. (…) 나는 수많은 산을 넘고 강을 건넜으며, 황야를 헤매기도 하고 별빛마저 낯선 하라드와 룬의 오지까지도 여행했소. (…)
하지만 보로미르, 이 점은 분명히 밝혀 두겠소. 외로운 사람들이오, 우리는. (…) 당신들은 찬사라도 받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하오. 우리와 맞부딪치면 길손들은 얼굴을 찌뿌리고 마을 사람들은 모욕적인 별명까지 붙여 주지요. (…) 하지만 우리는 그 이상의 대접을 바라지 않소. 순박한 사람들이 근심걱정 없이 평화롭게 살 수만 있다면 우리는 언제나 음지에서 묵묵히 일할 생각이오. 세월이 바뀌고 풀은 더 무성해졌지만, 그 일은 언제나 우리의 임무요.” (『반지의 제왕』 제 2권 2장 74쪽)
2. 고난 받는 구세주
마구간에서 태어난 천국의 왕 예수 그리스도는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는, 사람의 눈에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는 이(사 53:2)’였다. 뭇 사람들이 눈에 보여지는 아름다운 외모로 판단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하나님께서는 용모나 키를 보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눈에 보여지는 것의 아름다움을 갈망하는 것이 바로 ‘안목의 정욕’이다. 그리고 ‘안목의 정욕’에 이끌리는 것은 사탄이 지배하는 이 세상과 친구가 되는 지름길, 하나님과 원수 되는 지름길이다. 바로 그것이 마귀가 원하는 것이다. 바로 이 위험을 우리에게 일깨우기 위하여, 성경은 구세주의 외모가 훌륭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 구세주는 뭇 사람에게 사랑받는 사람도 아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사 53:3-4).” 이것이 구세주에 대한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