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요한복음해설)43.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입니다.
2018/07/19 21:16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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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석현 목사(샬롬교회 담임)
 
[본문 : 요한복음 17:1~5]
 예수님은 당신의 십자가에서의 죽으심을 예고하시면서 제자들로 하여금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수많은 환난을 세상으로부터 당할 것이지만, ‘예수님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안에 있게 되면 환난을 당하더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할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세상 곧 사탄의 역사를 이겨내셨기 때문에 우리는 담대하게 세상에 대하여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마치시고 예수님은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시며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라고 하십니다. ‘영화’라는 단어는 구약에서 ‘하나님의 현현’(불로 자신을 드러내심, 모세에게 불타는 떨기에서 하나님의 목소리가 들림) 혹은 ‘하나님의 사역의 나타남’을 의미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드림(사역)이 곧 하나님과 주님 당신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생각하시는 ‘영화’가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를 제자들과 우리에게 교정해줍니다. 영화 혹은 영광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죽으심’입니다. 이 십자가에서의 죽으심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었으며, 또한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짐’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십자가는 로마인들에게는 거리끼고 유대인들에게는 창피한 것이었지만, 예수님과 제자들에게는 ‘영광의 십자가’였습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영광의 자리’ 혹은 ‘빛나는 자리’를 원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영광은 십자가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십자가는 고난과 죽음을 의미합니다. 영광은 화려한 자리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고난과 죽음을 통과한 이후에야 인정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삶 그 자체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곳이기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십자가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십자가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그 삶의 자리가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곳이 됩니다.
 계속해서 예수님은 영생이 무엇인가를 말씀하십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요한에게 있어서 ‘영생’이라는 단어는 바울 용어의 ‘구원’과 같은 개념입니다. 그래서 영생 곧 구원을 얻는 길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안다’는 개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안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적인 앎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이 단어의 헬라어의 원 뜻은, ‘알다’, ‘이해하다’, ‘인지하다’입니다. 문맥에서 ‘참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예수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메시야요 성자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구원자’라는 사실을 믿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안다’는 단어는 ‘믿는다’는 단어로 환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에서 주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독생하신 분으로서 성자 하나님이시며,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심으로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완성하셨습니다. 또한 우리를 위한 중보자가 되시어서 우리의 죄악을 용서해주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라고 고백하십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예수님은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심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세상 속에서 비록 어려운 십자가의 길이지만, 그것을 믿음으로 감당해 나아갈 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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